[전남일보] 기획특집>“후손에 빌린 땅, 친환경으로 가꾼 뒤 돌려 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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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기획특집>“후손에 빌린 땅, 친환경으로 가꾼 뒤 돌려 줘야죠”
전남을 농촌융복합산업 실리콘밸리로 만들자
15) 프랑스 외르 주 파튀르 혼농임업 농장
1981년 가업 이어받아 운영
농약·화학비료 오남용 자제
밀농사에 나무·목축업 겸해
농업학교 교사로 40년 활동
아들 부부에 농장관리 넘겨
  • 입력 : 2023. 09.06(수) 10:03
  • 글·사진=프랑스 외르주 박간재 기자
파튀르 농장 가는 길
파튀르 농장에서 키우고 있는 양과 소
혼농임업 농장
디디에(오른쪽)씨가 혼농임업 하고 있는 밭을 보여주고 있다.
디디에씨 부부가 판매하고 있는 치즈를 시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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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씨 아들 부부 메간&휴고씨
 "혼농임목축업을 하고 있어요. 임업에 농+축산업을 혼합한 개념이죠.”

 낯선 용어다. 두번 놀랐다. 6차산업, 농촌융복합산업이란 말은 들어 봤지만 농업과 임업과 목축업을 결합한 혼농임업이 있다는 데 놀랐고, 80세 넘은 평범한 농업인의 전문가 포스 넘치는 설명에 또한번 놀랐다. 프랑스가 왜 농업강국 인지 알 것 같았다. 그 혼농임업 농장을 찾아 파리에서 새벽 일찍 길을 나섰다. 파리 북쪽 100㎞에 있는 외르주 르 발도레(생 피에르 오르보 10번지) 들녘 ‘데 파튀르(대표 디디에) 농장’이다.

 가는 길 내내 대평원이 펼쳐진다. 6월쯤 밀, 옥수수 등 농작물 수확이 끝난 탓에 텅빈 들녘이 황량하다. 추수 끝난 11월 전남 농촌 들녘을 닮았다. 밭 사잇길 구불구불 숲길을 지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매장을 찾은 한 두명 손님 외 국내 여느 시골마을처럼 조용하다.

●80년대 농업 종사, 2019년 가족농장 정착

 파튀르 농장은 디디에(80)씨가 지난 1981년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아 그의 부인 코린씨와 함께 키워온 업체다. 84㏊ 농장에 밀과 곡물, 젖소, 양, 돼지 등을 키우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은 평균 69㏊를 경영하고 있다.

 지금은 그의 아들 부부(메간&휴고)가 가업을 이어 받았으며 전형적인 가족농 경영에 나서고 있다. 농사를 지으며 밭에 나무를 심고 그 안에서 젖소와 양, 돼지, 염소 등을 키우고 있다. 부산물로 치즈와 고기, 시리얼 등을 판매하고 있다.

 “혼농임업이라는 단어를 듣고 감탄하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여러 농업을 접목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네 영어로 ‘어그로포레스트(AgroForest)’ 라고 하는데 농업(Agriculture)에 숲 즉 임업(forestry)을 접목한 형태죠.” 사전 취재 요청을 한 때문인지 설명할 자료를 만들어 놓고 차분히 설명을 이어간다.

“혼농임업이란 농업과 임업, 경우에 따라 축산업까지 도입해 식량·과실·풀사료·땔감·목재 등을 생산하고 토양보전을 실천해 지속가능한 농업·임업을 가능하게 하는 복합영농 방식을 말합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단순한 농장주인 같지 않다. 농업 관련 지식과 철학으로 무장한 전문가 포스가 느껴진다. 얘기 도중 질문을 끊고 젊은시절 직업이 궁금하다고 물었더니 “40여 년간 농업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화학비료 오남용 탈피 친환경농 전환

 프랑스가 처음부터 친환경 농업이나 혼농임업을 시도하진 않았다. 2차대전 이후 생산량 증가를 위해 화학비료와 농약 등 과다사용으로 오염이 심각했다고 한다. 생산량이 늘고 수요가 증가하자 이같은 악순환은 수십년간 이어졌다. 농사로 인한 오염이 심각했고 수돗물까지 먹을 수 없게 되자 그제서야 농업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인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자제하면서 농업과 목축을 병행하며 과다생산보다 적정생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곡물을 심은 밭에 나무를 심고 그늘에서 가축들이 쉴 수있도록 조성해 갔다.

 마침내 30~40년이 흐른 지금 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프랑스 정부도 생산량을 줄이도록 권장하고 있다. 과다생산으로 가격폭락을 막고 농가소득 하락에 따른 농민피해를 사전 차단해 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디디에씨는 농민들도 늘 농업관련 공부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농업에 임업과 목축업을 접목한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토양과 조경, 동식물 관련 지식을 쌓아야만 한다”며 “농민들도 공부하는 농업인이 돼 기업인들처럼 기업가 정신을 갖춰야 한다. 농업은 농민들이 깨어나지 않으면 변화가 없고 발전도 없다는 점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곡물+나무 조성, 생산량 증가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다보니 멀리, 길게 내다보며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나무도 남북 방향으로 심는다. 그렇게 되면 가축들이 쉴 수있는 나무그늘이 만들어 진다. 50년 단위로 나무와 곡물이 어우러지도록 조성하는 게 기본컨셉이며 생산량 역시 30% 이상 늘어난다.

 얘길 듣다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디디에씨 혼자만의 생각인 지 아니면 프랑스 농민들 공통적인 생각인지. 그는 “프랑스 농민들은 실패한 농민이 되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나무 한그루를 심더라도 비록 가성비가 없더라도 당장의 성과보다 장기간, 멀리 내다보며 농장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EU통합에 불만…외부문제 극복 가능

 프랑스 농업도 마냥 전망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농사 기피현상이 늘고 있어 가족농 형태가 붕괴되고 있다. 인구감소도 한 요인이며 EU통합으로 일관성 없는 정책 역시 한 몫하고 있다. 무작정 소득증대 보다 매년 일정수준의 생산 만을 장려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만도 농사기피 요인으로 꼽힌다. 포기농가가 늘다보니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지고 각 농가당 떠맡게 되는 경작면적이 매년 증가 추세다. 하지만 외부 장애요소에도 극복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 마을엔 최근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와 농업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전남지역 농업인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했다. 그는 멀리 내다보며 포지티브(긍정적)한 자세로 임할 것을 당부했다.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경제논리를 쫓다보면 농업의 종말이 올 뿐입니다.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야겠지요. ”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가져 온 메모장을 슬쩍 봤다. 마지막 줄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생텍쥐페리-우리는 이 땅을 조상에게서 물려 받은 게 아니라 후손에게서 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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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튀르농장 가는 길
파튀르 농장
디디에씨 아들 메간씨가 치즈를 살펴보고 있다.
파튀르 농장안에 있는 양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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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래 쉬고 있는 젖소
유기농 고기
글·사진=프랑스 외르주 박간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