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108-1> 원주민·이주민 ‘갈등’… 무너진 ‘농촌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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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108-1> 원주민·이주민 ‘갈등’… 무너진 ‘농촌 공동체’
악취민원 제기에 후속 행정지도
보성 돼지 농장주 ‘극단적 선택’
전남 귀농귀촌 매년 2000명 이상
가축분뇨 악취 민원 덩달아 급증
  • 입력 : 2023. 09.10(일) 18:17
  • 송민섭·정성현 기자
대한한돈협회가 지난달 16일 환경부 앞에서 보성 한돈농가 추모제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한돈협회 제공.
농산어촌 지역에서 귀농귀촌한 이주민과 원주민들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지속적인 악취 민원을 받은 돼지 농장주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이주민과 원주민 간의 대립이 표면으로 드러났다. 전남지역에 불고 있는 귀농·귀촌 열풍의 이면에는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문화 차이, 이해관계 등에 따른 심각한 갈등이 잠재돼 있다.

지난 7월 보성의 한 돼지 농장주 정모(63)씨는 지속적인 악취 민원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수십년을 마을 주민들과 문제없이 지냈지만, 최근 제기된 수많은 민원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축산업계는 주변 마을로 귀촌한 일부 외지인들이 정씨 농장에 대한 민원을 넣기 시작했으며 정씨가 지자체의 후속 행정 지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지난 1999년부터 20년 넘게 축산업에 종사해 오던 정씨는 유서에 ‘이제까지 열심히 살아왔는데 민원 제기로 너무 너무 힘들다’며 ‘주변 주민분들 그동안 정말 죄송했습니다’고 적었다.

정씨의 농장은 지난 1999년 5월 돼지사육시설 허가를 받았고 같은해 9월 준공 인가를 받았다. 처음 1개동으로 시작한 축사는 5개동으로 확대됐다. 축사 특유의 냄새가 발생할 법한 규모지만 그동안 ‘악취 민원’이 접수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23년간 양돈업을 하며 주민들과 잘 어울렸던 덕이었다. 정씨는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면 자신이 기르던 돼지 수백만원어치를 직접 도축해 싸들고 가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이 악취 등을 이해해주니 자신도 그만큼 베풀어야 된다는 이유에서다.

인근 주민들은 “비가 심하게 내리면 한번씩 냄새가 날 때가 있는데, 지금까지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정씨가 워낙 주민들에게 잘하기도 했다. 서로 이해해주면서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20여년간 10건도 채 접수되지 않았던 민원은 올해 5월 이후에만 5건이 집중됐다. 지난 5월 30일 접수된 악취 민원을 시작으로 7월에만 4건이 더 접수됐다. 민원을 집중 제기한 이들은 최근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로 추정된다.

이들의 민원 제기에 의해 보성군은 정씨에게 행정지도와 함께 사육두수 감축 등을 안내했다. 보성군은 과도한 행정 규제를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애써 키운 돼지들을 30% 가량 줄이라는 안내를 받은 정씨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다.

귀농귀촌 인구가 늘면서 원주민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전남도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전남 귀농귀촌인은 △2018년 2039명 △2019년 2020명 △2020년 2358명 △2021년 2579명 △2022년 2523명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다.

농어촌 마을로의 인구 유입과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선순환도 있지만,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우리나라 농촌의 사회통합 실태’ 보고서를 보면, 현재 농촌에서 가장 사회 갈등이 심한 집단·영역으로 ‘귀농·귀촌인과 지역 원주민간의 갈등’이 꼽혔다.

흔히 알려진 갈등은 ‘텃세’다. 대체로 원주민들이 귀농인들에게 하는 갑질문화다. 마을공동기금 명목으로 입주금을 요구하는가 하면 농작물에 쓸 상수도를 막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귀농인들이 원주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할 때다. 귀농인들은 “시골 공기가 좋아서 내려왔더니 가축분뇨 냄새만 하루종일 맡고 있다”고 토로한다.

전남 축사 악취 민원 건수는 △2019년 549건 △2020년 486건 △2021년 499건 △2022년 724건이다. 이 중 무안과 나주를 중심으로 매년 100여 건 이상의 축사 악취 민원이 집중됐다.

과거엔 마을 주민들이 축사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취 등을 이해해주던 분위기였지만, 귀농귀촌인들의 증가로 지역 정서가 바뀐 것이다.

보성에서 만난 한 축산업자는 “많은 축산업주들은 몇십년 동안 한곳에서 축사를 운영하며, 나름대로 마을 주민들과 상생하는 방법까지 잘 터득해 원만하게 지내고 있었다”며 “그러다 갑자기 새로 이주한 이들이 냄새난다며 무작정 민원을 넣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거냐”고 하소연했다.
송민섭·정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