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108-3> ‘관습이냐 원칙이냐’… 마을 민원에 지자체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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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108-3> ‘관습이냐 원칙이냐’… 마을 민원에 지자체 골머리
귀촌인 증가… 원주민과 충돌 늘어
공무원 “갈등 조율이 가장 힘들어”
시설 보완 등 악취 민원 해소 노력
시·군, 마을 분쟁 ‘상생 중재자’로
  • 입력 : 2023. 09.10(일) 18:16
  • 송민섭·정성현 기자
영광 가축분뇨 공동자원화 시설 전경. 정성현 기자
“같은 도시라도 여러 분위기가 있듯이 시골도 그만의 정서가 있어요. 귀농인들의 민원을 들어 보면 대부분 이 ‘관행과 정서’를 몰라서 발생해요. 어떻게 판단해야 할 지 참 난감한 사례들이 많죠.”

귀농귀촌 관련 업무를 보는 공무원들은 시골 내 관습과 원칙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 타 지역서 살아온 귀농귀촌인들은 새로 옮긴 마을에서 나름의 ‘낭만’을 꿈꾼다. 그러나 이 생각은 이따금 기존에 살던 원주민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한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선 지자체 축산·분뇨 담당 공무원 김모(30)씨는 보직를 맡은 지 3개월 만에 업무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 가축 통계·관리 등의 역할만 할 줄 알았던 이곳에서 되레 원주민과 이주민들의 민원 처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탓이다.

김씨는 “최근 한 귀촌 주민이 집 주변에서 분뇨 냄새가 난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행정조사를 위해 현장에 나가보니 마을 축산주가 자신의 분뇨 보관창고가 넘쳐 임시로 축사 인근 밭에 분뇨를 뿌린 것이 화근이었다”며 “해당 밭주인은 부모님 세대부터 축산주와 알고 지내던 사이로, 과거부터 이런 비슷한 문제가 생기면 서로 돕고 지냈다고 한다. 귀촌인은 이걸 알 턱이 없으니,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현장에서 악취 포집 등을 진행해 결과를 축산주에게 전달했다. 민원이 제기된 밭에서는 기준치 이상의 악취가 발생, 그에 따른 행정절차가 이행됐다. 축산주는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관례’라고 반발했지만, 김씨는 ‘절차상 어쩔 수 없다’는 답변밖에 할 수 없었다.

김씨는 “귀촌인들이 거의 없던 시기에는 이런 사건들을 대부분 마을에서 자체 해결했다. 그러나 최근 귀촌인이 많아지면서 관련 민원이 급증했다. 관리부서에서는 민원이 들어온 이상, 원칙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은퇴 귀촌인들이 많아지다 보니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결국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해결되는 문제인데, 그 사이에서 갈등을 조율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씁쓸해했다.
영광 가축분뇨 공동자원화 시설에서 만들어진 액비가 운송·살포차량에 옮겨지고 있다. 정성현 기자
각종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가장 많은 수의 민원이 발생하는 악취 민원과 관련해 전남지역에서는 지난 2002년부터 꾸준히 자연 순환농업을 추진해 온 영광이 우수 사례로 꼽힌다. 영광은 매해 평균 악취 민원이 40여 건 발생, 지자체 평균 55건보다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영광은 과거부터 가축분뇨 퇴비·액비를 사료용 청보리 재배에 사용해 수량을 높이고 비료값·분뇨처리비용을 절감하는 등 지역 농가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자연순환농업을 추진해 왔다. 2008년에는 지역 최초로 하루 분뇨 100톤가량을 처리할 수 있는 ‘가축분뇨 공동자원화 시설’을 설치, 이듬해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전국 가축분뇨 자원화 우수 지자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동자원화 시설은 가축 배설물을 분리한 뒤 ‘분(糞)’은 수분조절제인 톱밥과 함께 후숙시켜 퇴비로 사용하고, ‘요(尿)’는 액비화 시설에서 충분하게 발효시켜 냄새가 나지 않는 양질의 액체 비료로 만드는 시설이다. 최근에는 미생물을 활용해 축산냄새·분뇨처리 문제를 해결하는 에코프로바이오틱스 사업(19억원)도 지역 최초로 진행하고 있다.

영광군 관계자는 “지역 내 갈등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지자체는 그 본질적 원인을 찾아 해결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며 “평소 축사 악취 민원이 많기에 해결을 위해 힘을 쓰고 있지만, 기타 마을 분쟁에서도 ‘상생의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다. 시골서 발생하는 민원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건마다 다 답을 낼 수는 없다. 이를 최소화 하고 예방하는 게 결국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지역 마을활동가는 “요즘에는 귀농인을 배척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다만 최근 발생한 ‘해남 작은 학교 살리기’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원주민들의 텃세가 여전히 심한 곳이 더러 있다”며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서) 지자체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농촌의 새 삶을 꿈꾸는 도시민들이 낯설고 폐쇄적인 농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각도의 사회·정서적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고 전했다.
송민섭·정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