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108-2> 귀농인 “입주금 강요” vs 원주민 “마을문화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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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108-2> 귀농인 “입주금 강요” vs 원주민 “마을문화 이해”
“10년 살아도 외지인 취급 ‘텃세’
반강제 기부금·농업용수 막기도”
“상부상조 마을 전통 수용해야
시골서 비료냄새 나는 건 당연”
  • 입력 : 2023. 09.10(일) 18:17
  • 송민섭·정성현 기자
영광의 한 축사 현장에 쌓인 분뇨들. 정성현 기자
자신이 사는 마을로 귀농·귀촌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원주민들의 이른바 ‘마을 텃세’가 농촌사회 새로운 갈등 유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10년 전 고흥군에 정착해 고추 농사를 짓고 있는 김한진(가명·52)씨는 “10년을 이곳에서 지냈지만, 여전히 외지인 취급을 받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텃세는 마을로 이주할 때부터 시작됐다. 김씨는 “마을 입주금이라는 명목으로 많게는 3000만원까지 요구했다. 이사를 왔으니, 인사치레로 떡 등을 돌리라고 하면 이해하는데 액수가 너무 커 당황했다”며 “부담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귀농인은 재산의 대부분을 농사짓는데 투자해 지역경제에 크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귀농인들을 잘 활용하면 이점이 많은데, 입주금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텃세는 계속됐다. 마을 행사 때마다 젊다는 이유로 불려 가기 일쑤였고, 라면과 쌀 등을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행사에도 반강제로 참여했다.

텃세는 지난해 가뭄 때 특히 심각했다. 김씨는 “동네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도 많이 대접하고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가뭄이 심해지자 원주민들이 먼저 물을 써야 한다며 농수로 관로를 막았다”며 “물이 없어 작물이 다 말라 죽을까 발만 구르고 있었는데, 다행히 차례가 돌아와 겨우 위기를 넘겼었다. 그 이후로는 큰 기대를 안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악의적으로 괴롭히는 문화는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일손이 필요하다고 해서 도와줄 때는 많지만 반대로 도움을 받은 적은 손에 꼽는다”며 “마을의 대소사를 정할 때 발언권도 없다. 의견을 제시해도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과의 마찰도 큰 걸림돌이라고 했다. 그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귀농인이 제기하는 민원은 골치 아픈 민원이라는 인식이 있다. 환영받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며 “민원 처리도 뒤로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들도 다 그 지역 사람들인데 안 그럴 수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영광에서 축사를 운영 중인 한 축산주가 악취 민원 등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며 담배를 태우고 있다. 정성현 기자
반면 원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농어촌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 존재하고, 귀농귀촌인들은 해당 공동체가 정한 약속을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마을에 ‘상부상조’의 분위기가 이뤄지지 않으면 상생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영광에서 수십 년간 축산업을 해왔다는 한 돼지농주는 “농장을 운영하다 보면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하곤 한다. 한참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는 데 난데없이 악성 민원 등이 들어오는 경우다”며 “알고 보니 축사 인근에 이주민들이 집을 짓고 살게 된거다. 가축을 키우다 보면 당연히 냄새·소음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광은 민가 주변 2㎞ 안에는 축사 허가가 나지 않는다. 반면 민가는 축사가 인근에 있더라도 건축 허가가 난다. 결국 이후에 들어오는 민원은 농장주가 감당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축산농가들은 자신들의 농장을 옮길 수 없으니 결국 상생을 위한 타협점을 찾게 된다.

마을 축제가 열릴 때면 자신이 기른 가축을 내놓는다든지, 뷔페·버스 등을 대절해 준다든지 등의 행위들을 한다. 냄새 저감 시설을 확충하고 마을 청소 등의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농주는 이어 “시골은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온 동네 사람들이 서로 알고 지낸다. 그렇기에 봉사 등을 통해 불편을 해소하려고 한다”며 “문제는 이따금 이를 고려하지 않은 이들이 들어오는 경우다. 대화하려고 해도 ‘악취 냄새 못 버티겠다’고 민원을 넣는다. 지자체는 민원이 들어왔으니 현장 조사를 통해 행정조치를 취한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 나가떨어지는 건 원주민들이다. 시골에서 비료 냄새가 나는 게 무슨 문제인가”라고 씁쓸해 했다.

손성민 광산구 마을활동가는 “이주민들은 거주지를 옮기기 전에 마을 정서와 환경 등을 고려해야 한다. 기존 주민들 또한 열린 마음으로 이들을 대해야 한다”며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거치지 않고서는 갈등의 골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공동체 분쟁을 없애기 위해선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민섭·정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