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쓴 한국 추상회화 1세대 김보현의 미적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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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다시 쓴 한국 추상회화 1세대 김보현의 미적 서사
조선대 김보현&실비아올드 미술관
추상작가 6인전 ‘추상을 잇다’ 개최
정명숙 등 후속세대 작가 6명 참여
무의식과 상상이 교차된 화폭 눈길
  • 입력 : 2023. 09.11(월) 09:58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김보현&실비아올드 미술관이 오는 11월 24일까지 진행하는 ‘추상을 잇다-추상작가 6인전’에서 감상할 수 있는 김보현 작 소품연작. 조선대학교미술관 제공
조선대학교는 본관 1층에 있는 ‘김보현&실비아올드 미술관(관장 장민한 교수)’에서 김보현과 추상작가 6인전 ‘추상을 잇다’를 오는 11월 24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한국 추상회화 1세대인 고 김보현 화백의 작품과 우리 지역 출신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는 추상화가 백미리내, 송유미, 윤준성, 장승호, 정강임, 정명숙의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추상화의 흐름을 감상하고 추상화가 갖는 의미구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김보현 화백은 조선대 미술대학 창설을 주도하고, 초대 학과장을 지낸 재미화가다. 김 화백의 작품들은 한국의 추상 회화가 줄 수 있는 두 가지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먼저 그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은 마치 낙서하듯 큰 붓을 사용해 빠르게 즉흥적으로 캔버스에 칠하거나 흘러내려 얼룩지게 한 묘사가 특징이다. 이를 통해 내면의 고통과 자유를 향한 외침을 즉각적으로 느낀다. 작가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붓질은 인간 내면의 고통과 환희를 표현한 흔적이 된다.

또 김 화백의 80년대 이후 작품은 상징적인 형상이 순수하고 화려한 화면 속에 율동적으로 배열된 것이 특징이다. 감상자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미지 세계에 빠진다. 그가 희망했던 비가시적 세상은 작가 자신만의 형태와 색채로 화려하게 전유된다.

이번 전시에서 김보현 화백의 추상예술을 두 파트(수행적 행위·자연의 미적 전유)로 나눠 표현한다. 첫번째 파트 ‘수행적 행위’에서는 백미리내, 송유미, 장승호의 작품이 전시되며 이들은 본인의 내적 자아에 대한 감정, 혹은 내면의 에너지를 캔버스에 그려 나간다.

백미리내 작가의 작품 속 먹의 흩날림은 동그란 형체를 이루고 이 형체가 또다시 흩날리는 반복적인 형태로 구성된다. 백 작가는 이렇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이러한 의문들을 자연 순환 과정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송유미 작가는 매일 수 없이 연필 또는 색연필의 여리고 가는 선으로 드로잉 작업을 반복한다. 송 작가는 결과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선의 에너지가 가장 넘쳐나는 역동적인 순간을 관람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장승호 작가는 과감한 붓의 움직임과 넘치는 에너지를 화폭에 그대로 표현한다. 순간의 감정과 호흡으로 추상작품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색과 붓의 터치가 서로 뒤섞이고 엉켜진다. 화면 속 풍경은 자연에 대한 관조적 태도로 일상의 풍경과 맞닿아 있다.

두번째 파트 ‘자연의 미적 전유’에서는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 환경 등 무수한 대상을 관찰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구축해 나가는 윤준성, 정강임, 정명숙의 작품을 선보인다.

윤준성 작가는 비슷한 형태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구조(프랙탈)로 이뤄진 작은 조각들을 그린다. 이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관계)에 의해 변화하고 쌓여가는 자신의 빛깔을 보여준다.

김보현&실비아올드 미술관이 오는 11월 24일까지 진행하는 ‘추상을 잇다-추상작가 6인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정강임 작 존재들. 조선대학교미술관 제공
정강임 작가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느껴지는 ‘나’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마티에르 기법을 캔버스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재질감에 의해 음률이 느껴지며 자연에 의한 감정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따라가게 된다.

김보현&실비아올드 미술관이 오는 11월 24일까지 진행하는 ‘추상을 잇다-추상작가 6인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정명숙 작 대나무 잎사귀는 색이되어 쌓여간다. 조선대학교미술관 제공
정명숙 작가는 자연이 주는 순리를 받아들이며 작품 활동 중이다. 땅은 종이가 되고, 잎사귀는 색이 되어 삶의 흔적, 감정의 흔적을 캔버스에 모내기하듯 그려 나간다. 작품에 겹겹이 올라가는 종이와 색의 조합은 화면 속 일렁이는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번 전시작들은 의식, 무의식, 상상과 잠재의식이 교차되어 작가들만의 스토리가 담겨있다. ‘그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라는 말처럼 예술 작품은 작가의 ‘집’ 같은 존재이다. 본 전시는 추상작가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추상으로 표현된 집을 만나볼 수 있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격동치는, 때로는 무념무상의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음을 함께 공감하고자 한다.

장민한 관장은 “오늘날은 생성 AI 로봇이 자유롭게 이미지를 추출할 수 있는 시대이다. 추상 회화는 AI 이미지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둘은 형태가 비슷할 수 있지만 추상 회화는 한낱 물감의 배열이 아니라 작가가 바라본 자아와 세계를 축약하여 보여주는 행위이다”며 “이번 전시에서 AI 시대에 추상 회화의 가치와 의미를 김보현 작가와 여섯 명의 젊은 추상 작가의 작품으로 대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조선대학교 본관 1층에 위치한 김보현&실비아올드 미술관에서 관람 가능하다. 주말 및 공휴일은 휴관한다. 김보현&실비아올드 미술관은 조선대 미술대학 창설을 주도한 김보현 화백과 그의 부인이자 조각가인 실비아올드(Sylvia Wald)와 함께 기증한 400여 점의 작품을 영구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해 조성한 공간이다. 소장품으로는 김보현·실비아올드 기증품 외에 재일본 사업가이자 수집가인 하정웅 기증품 460여 점, 이 대학 1회 졸업생인 김영태 화백의 기증작, 그 외 재직·퇴직교수들과 동문들의 작품이 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