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서석대> ‘낭만 소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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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서석대> ‘낭만 소비’의 시대
곽지혜 경제부 기자
  • 입력 : 2023. 09.18(월) 16:23
곽지혜 기자
어릴적 외할머니댁에 가면 아궁이로 불을 때던 방이 있었다. 아랫목에 깔린 두툼한 솜이불을 들추면 군데군데 새까맣게 그을린 장판 위로 뜨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광’이라고 불리던 창고 같은 방에는 온갖 잡동사니들과 함께 할머니가 사둔 사탕이나 젤리 상자가 있어 발이 시린 줄도 모르고 동생과 함께 저녁 내내 들락거리기 바빴다.

고작 30년도 채 되지 않은 기억이지만, 아마 나는 이런 시골 외할머니댁의 추억을 갖고 있는 마지막 세대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어느 날 ‘촌캉스’라는 단어가 생겼다. 올여름에도 인스타그램에는 ‘전남 촌캉스 명소’라는 제목이 붙은 게시글이 인기를 끌었다. 젊고 예쁜 인플루언서들은 밀짚모자와 몸빼바지를 입고 시골집 마당에서 불을 피우며 인증샷을 찍어 올렸고, 아늑한 시골 감성을 담아낸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트렌디함을 한껏 풍겼다. 지금은 우거진 풀숲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을 외할머니댁을 떠올리며 리모델링을 해 숙박시설로 활용해 봐야 하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제주도 한 달 살기의 열풍이 일고 #촌캉스, #논밭뷰, #불멍, #들멍, #물멍 등 해시태그가 상위 노출되는 시대다. 로컬 문화를 즐기는 방법이 지속적으로 트렌디해지고 있는데, 이 로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또 지역 전통시장이다.

촌캉스를 떠난 시골집에 호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낭만과 힐링이 존재한다면, 분명 전통시장에도 대형마트나 어플에서는 갖출 수 없는 정겨움과 따뜻함이 있다. MZ세대가 촌캉스에서 트렌디함을 느끼고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여름휴가를 시골로 떠나는 것처럼 전통시장도 조금은 불편하지만 가보고 싶은 곳으로 변해야 한다.

MZ세대들은 이미 과거 산업화 시대의 정취를 갖고 있는 골목인 을지로나 문래동, 성수동을 누비고 인기 있는 맛집이 자리한 지역 전통시장을 찾는 등 로컬 콘텐츠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소비하는 것만이 아닌 그 지역에 켜켜이 쌓인 스토리와 생경한 풍경을 마주하며 느끼는 색다름일 것이다.

문화관광형 특성화 시장을 만든다며 어설픈 축제와 행사로 소비되는 전통시장의 움직임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는 전통시장도 그들만의 스토리와 트렌디함을 찾아내야 함은 물론 계획도시를 건설하듯 촘촘하고 방향성 있는 ‘기획’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