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김병조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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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김병조의 전성시대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3. 09.21(목) 17:21
이용환 논설실장
2015년 5월, 한때 방송계를 휘잡았던 원로 코미디언 김병조가 책 한권을 펴냈다. 명심보감을 완역한 ‘김병조의 마음공부’.유·불·선의 핵심 가치가 담긴 명심보감을 통해 이 땅의 민초들에게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싶었다는 게 김병조의 이야기다. 김병조에게 명심보감 완역은 의미가 특별하다. 오랫동안 잘못 계승 돼 왔던 번역을 수정하고, 뒤엉킨 문맥을 바로 잡는 일은 지난하고 장대한 작업이었다. 더욱이 그는 당시 시신경을 잘라 한쪽 눈을 잃은 상태였다.

장성에서 태어난 김병조는 광산 김씨 종갓집 장손으로 어려서부터 한학자였던 부친 길재공으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김병조. 육사에 들어가기 위해 광주고에 입학했지만 담임의 권유로 중앙대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바꿨다.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대학을 선택했다’는 게 그의 회고다 그리고 그는 80년대 톱스타 중의 톱스타가 됐다. 그의 프로그램은 폭발적인 시청률을 자랑했고 그를 대체할 인물도 없었다. 그야말로 김병조 전성시대였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87년 6월 10일. 잠실에서 열렸던 민주정의당 대통령후보지명대회에서 반 강제로 했던 대사 한마디는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이어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가 나오고 바로 그날, 6·10 민주항쟁으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하늘을 찔렀던 시기 김병조는 “민정당은 국민에게 정을 주는 당, 민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라고 했다. 그냥 코미디였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김병조는 방송을 떠나야 했고 어쩌면 ‘본업’인 ‘한학’으로 돌아왔다. ‘사람 팔자 아무도 모르듯 운명이었다’는게 그의 회상이다.

김병조가 지난 14일 전남일보가 마련한 소울프드아카데미에서 40년 방송 생활을 회고하고, 인생 2막으로 선택한 ‘명심보감’을 강의했다. 유교에서 말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라는 오상(五常)이 주제였다. 참다운 리더를 위해 불쌍한 것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 자신을 낮추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당부도 했다. “노원구 월계동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 평생 술 담배를 안 해본 사람, 돈보다 줏대 있는 가난을 선택한 사람… 나 같은 사람 한 명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당당히 말하는 김병조. 코미디언 김병조의 시대는 과거가 됐지만, 한학자 김병조의 전성시대는 지금부터 시작인 것 같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