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범종 작가 |
설도 있고 정월 대보름도 있는데 명절 가운데서는 추석에 가장 많은 추억이 있다. 물론 내 경우이다.
왜 그런 걸까?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았던 나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에 있는 명절이어서 추석을 가장 좋아했던 것일까? 그런 만큼 추억이 많이 만들어졌고? 이런 질문을 하다가 알았다. 추석의 추억 가운데 하나는 ‘콩쿨대회’였다는 것을.
지난 세기 7, 80년대에 전라도에서는 추석 무렵 면 단위나 리 단위로 콩쿨대회를 열었고 내 고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타지에서 일하는 사람, 타지로 나갈 사람,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 어울려서 흥겨운 한마당을 이루었다. 보름달은 무대의 간접 조명이자 배경이었다.
사실 콩쿨대회에서는 무대에서 노래로 맞서는 경우보다 무대 아래서 말로 맞서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내가 노래를 딱 해분께 남진이가 입을 팍 다물어불드란께. 어이, 내 말 못 믿어? 옆에서 하춘화가 봤어. 하춘화 데려오까?”
“올벼쌀 밥 좋게 묵고 나서 귀신 씻나락 까묵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너는 콩쿨대회 무대에 올라가지 마라. 이 성님이 나설 무대를 또랑광대도 한참 비웃을 너 같은 놈이 더럽히면 안 된께.”
‘‘어이 동상들, 나는 말이여, 이 오춘삼이는 말이여, 노래 안 해. 춤으로 쌈빡하게 끝내불란마. 알제, 내 고고?”
“그건 고고가 아니라 보리때춤이제. 아야, 나락이 익은 이 가을에 뭔 보리때춤이냐?”
콩쿨대회에서 많이 불린 노래에 ‘목포의 눈물’이 있었다. 내 고향은 목포 아닌 보성인데도 어른들은 고향의 노래라도 되는 듯이 그 가요를 불러댔다.
나는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게 됐다. 콩쿨대회의 ‘콩쿨’이 프랑스어 콩쿠르(Concours)라는 건 알았지만 고향 사람들이 왜 ‘목포의 눈물’을 자주 불렀는지는 몰랐다.
‘목포의 눈물’은 목포 사람만이 아니라 전라도 사람 대부분이 좋아하는 노래이다.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도 좋아하지만, 그들은 전라도 사람처럼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주 좋아하는 게 신명이고 조금 좋아하는 것은 흥미이다. 신명은 예술 창작으로 이어지고 흥미는 예술 감상으로 이어진다.
일제강점기에, 그러니까 전라도 사람이 힘들었을 때 ‘목포의 눈물’이 나왔다. 시인 문일석이 노랫말을 지었고 이난영이 불렀다.
이 노래는 3절로 돼 있는데 각 절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목포의 설움, 목포의 노래, 목포의 사랑. 그러니까 ‘목포의 눈물’ 각 절에서 마지막 단어는 설움, 노래, 사랑이다. 이걸 한데 모으면 이런 문장이 만들어진다.
-목포의 눈물은 설움이지만 노래를 거쳐 사랑에 이른다.
나는 이 문장을 얻고서야 고향 사람을 비롯한 전라도 사람이 왜 그토록 ‘목포의 눈물’을 좋아하는지 알았다. 전라도 사람은 지금 설움을 겪지만 노래를 불러서 사랑에 이르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래이다. 노래는 예술이라고 할 수도 있고 놀이라고 할 수도 있다.
‘목포의 눈물’이 알려주는 것은 일차적으로 전라도 사람은 설움에서 시작해도 끝내 사랑에 이른다는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거기에 신명 나는 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움을 사랑으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신명이 솟구치는 판, 바로 이것을 전라도 사람은 원했다. 이 때문에 전라도에서 일찍이 판소리가 만들어졌고 여러 명창이 나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명창들 옆에는 수많은 귀명창들이 있었고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올가을에도 판소리 공연이 많다. 판소리 대회도 있고 명창들의 공연도 있으며 창극도 무대에 오른다.
물론 판소리만이 아니라 멀리는 서유럽의 클래식 교향악부터 가까이는 최신 트로트까지 가을의 공연 무대를 풍성하게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추석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는데, 풍성한 가을 공연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을만 같아라.’
하지만 외면당하는 노래도 있다. 무대에서는 신명이 넘쳐도 객석은 반 너머 비어 있다.
왜 이러는가를 따지는 말들은 많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따지니까 문외한까지 덩달아 따진다. 이러기보다는 소리판에, 놀이판에 가서 함께 노래하고 노는 게 우선이다. 소리판과 놀이판은 따지는 데가 아니고 함께 즐기는 데이니까.
이 가을에 ‘목포의 설움’이 ‘목포의 사랑’이 되도록 하는 많은 ‘노래’가 펼쳐진다. 이 노래를 전라도 사람들이 함께 즐길 때 ‘전라도 사랑’이 펼쳐진다. 나락이 익은 전라도 들판처럼 밝고 풍성한 사랑이.
노래가 사랑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