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공옥진의 춤은 오장육부 비틀어 균형을 잡고자 했던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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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공옥진의 춤은 오장육부 비틀어 균형을 잡고자 했던 몸부림
368) 공옥진이 오늘 여기 우리에게
“몸으로 풀어 쓴 역사는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간 이 땅의 수많은 민중의 몸짓에 광범위하게 스며들어 있다. 이를 먼저 알아차리고 극단적으로 몸 비틀어 춤이라는 예술로 화시켰던 이가 공옥진이다.”
  • 입력 : 2023. 10.26(목) 13:08
공옥진 공연 장면-영광군청 제공
공옥진 공연 장면2-영광군청 제공
병신춤이라 부르지 마오/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 장애자들/ 내 동생/ 어린 곱사 조카딸의 혼이/ 나에게 달라붙어요/ 오장 육부가 흔들어 대는 대로/ 나오는 춤을 추요



역설적이다. ‘병신춤’으로 유명해졌고 우리 사회와 교감했으며 'ᄆᆞᆷ'(몸과 마음의 합성어로 내가 사용하는 용어) 비틀어 한 시대의 역사를 써 내려간 분인데, 정작 ‘병신춤’을 입에 올리기라도 하면 화부터 냈다. 왜 그랬을까? 백승남이 진솔하게 집필한 단행본 제목에 그 이유가 들어있다. 『춤은 몸으로 추는 게 아니랑께』(주/우리교육, 2006)가 그것이다. 몸으로 추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으로 춘단 말인가? 위 구술에서 그 내력을 톺아볼 수 있다. 오장 육부를 흔들어 대는 대로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무엇이 공옥진의 몸 비틂이자 춤이었기 때문이다. 인고의 춤사위, 나는 이를 한마디로 “'ᄆᆞᆷ'으로 비틀어 새긴 남도의 역사”라 호명해왔다. 이 칼럼을 시작한 10회째(2016. 9. 23) ‘몸으로 비틀어 쓴 남도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공옥진을 소개했다. 몇 가지 바로잡아둘 게 있어 기회 닿는 대로 언급해두려 한다. 예컨대 고향을 전남 승주군(순천시) 송광면 추동리라고 소개했으나 사실은 광주시 서구 양동이라든지 하는 점이다. 물론 연구자들에 따라 영광군으로 소개하는 등 다른 견해들이 있다. 출생연도가 호적에는 1933년이지만 1935년에서부터 1937년까지 등장한다. 이 부분도 여러 연구자가 교차 추적하여 1931년생이 맞다고 확인하였다. 내가 광주MBC 유트브 얼씨구당 ‘훤한 이박사의 문화재 이야기’를 3~4년 진행하면서 100여 분이 넘는 명인 명창들을 다룬 바 있다. 대개 고향이나 출생연도 심지어는 가족관계들이 분명치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호적을 보면 될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일제 강점기를 전후한 호적은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또 한 가지 언급해 둬야 할 것은 ‘병신’이라는 용어다. 장애인들이 극도로 싫어하고 경계하는 용어이자 금기어이다. 예컨대 ‘문둥병’이라고 하면 큰 실례다. ‘한센인’이라고 호명하는 것이 맞다. 한센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번역어 ‘문둥병’에 대해서도 ‘한센인’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물론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등에 ‘문둥춤’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고 그 연행의 맥락도 존중되고 있다. 따라서 학술 목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에 대해 오해 없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상황을 덧붙여 둔다.



환장(換腸)할 세상에서 기우뚱한 균형 잡기



우리 말에 환장(換腸)이라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창자가 뒤집혀 마음이나 행동 따위가 비정상적인 상태로 달라진 상황을 말한다. 실성이나 열광 혹은 단장(斷腸)의 뜻에 가까운 표현이다. 창자가 뒤틀리고 꼬이며 종국에는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겪는 상황이다. 김지하의 담시, 지금은 임진택이 창작판소리로 부르는 ‘소리내력’에는 안도라는 놈이 세상을 향하여 울부짖는 대목이 나온다. “이 개 같은 세상!” 환장할 세상이라는 뜻이다. 김지하는 이를 ‘안도라는 놈’을 등장시켜 우리 사회를 신랄하게 고발했던 것이고 공옥진은 스스로 몸을 비틀어 이를 고발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눈알이라고 제대로 있겠는가 정신이라고 온전히 있겠는가. 혼미한 마음을 부여잡고 흐느적거릴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공옥진이 비틀어 추는 춤사위에 대한 어쩌면 가장 내밀한 평가이지 않을까? 공옥진이 마치 환장한 창자처럼 자신의 몸을 비틀어 그려내고자 했던 것은, 장애를 가진 가족들의 비애에서 출발한다. 이 생각이 점차 농후해져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고 몸 비틂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단계로 나아간다. 그들의 죽음에 얽힌 개인사에서부터 꽈지고 뒤틀린 이 사회의 어두움을 드러내 올곧음의 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일념에 이르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몸이 팔려 일본에 스며들었다가 돌아오자마자 함께 생활했던 각설이 패들과의 동거에 이 점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 또한 정읍 호남고등학교 아래편 일명 대양다리 밑이나 광주의 배고픈 다리로 소개한 바 있지만, 사실관계나 함께 생활한 기간이 칼로 두부 자르듯 명료한 것은 아니다. 공옥진의 몸 비틂은 김지하가 얘기했던 ‘기우뚱한 균형’같은 것이다. 예컨대 유홍준이 남도의 그림을 강의할 때 늘 예로 드는 풍경이 있다. 남도의 한 아낙이 아기를 업고 물동이를 인 채, 양손에는 또 작은 항아리를 들고 사뿐사뿐 걸어간다. 뒤뚱뒤뚱한 듯한데 물동이의 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낭창낭창 흐느적거리는 듯한데 발걸음은 매우 빠르다. 몸짓은 오히려 흔들거림을 통해 균형을 잡는 기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를 춤사위라 하지 않으면 그 무엇을 춤이라 이르겠는가. 내면에 깃든 그윽함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면 그 무엇을 춤이라 부르겠는가. 나는 이를 진도북춤의 명인 박병천의 춤사위를 들어 설명해왔다. 그의 춤사위 중 ‘갈둥말둥’ ‘올둥말둥’ 사위가 있다. 왼편으로 돌아서는 듯한데 오른편으로 돌고 오른편으로 돌아서는 듯한데 왼편으로 돈다. 몸은 왼쪽으로 향하는데 발은 이미 오른쪽을 향한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해매는 갈팡질팡이 아니다. 오래전 인기를 끌었던 영화 ‘취권’에서 성룡의 몸동작들, 그런 균형 잡기라고 하면 설명이 좀 되려나? 명료하게 드러내지 않지만 명료하고 기우뚱하지만 올바르다. 이것이 남도사람들이 생각하는 미학의 정점이다. 이 정점에 ‘귄’이 있다. 흐리멍텅함이 아니라 온전함이다. 환장할 세상, <소리내력> 안도의 단말마처럼 ‘이 개 같은 세상!’에 오장육부 비틀어 균형을 잡고자 했던 몸부림이 공옥진의 춤이다.



남도인문학팁

<레전드 인 광주 아카이빙>, 공옥진이 오늘 여기 우리에게

내가 국민학교 다닐 적에 간질을 앓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매번 발작을 일으키면 온 학급이 난리소동이 나곤 했다. 하필 바로 내 앞이거나 뒷자리였기에 내가 받은 충격이 컸다. 땀을 뻘뻘 흘리며 비틀어 대는 온몸과 뒤집힌 눈동자, 뻣뻣하게 굳어져 가는 전신을 대할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나이가 들고서야 간질이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간질의 요인을 분석하는 견해인데, 몸을 비틀고 쥐어짜지 않으면 오히려 생명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몸을 비튼다는 것, 뒤집힌 창자를 바로 잡는다는 것, 기우뚱한 균형 잡기는 물동이 이고 내닫는 여인의 풍경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소소한 몸놀림에서부터 장애인들의 극단적 몸짓까지 몸으로 풀어 쓴 역사는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간, 아니 이름도 빛도 원하지 않았던 이 땅의 수많은 민중의 몸짓에 광범위하게 스며들어 있다. 이를 먼저 알아차리고 극단적으로 몸 비틀어 춤이라는 예술로 승화시켰던 이가 공옥진이다. 'ᄆᆞᆷ'으로 비틀어 쓴 남도의 역사, 사람이란 존재의 불균형과 우리 사회의 불균형을 고발하고 깨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몸짓과 맘짓의 장대한 서사를 써 내려갔던 춤의 성자, 그이가 공옥진이다. 마침 공옥진의 내력을 톺아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공옥진의 생애에 비하면 턱없이 서툰 글이지만 발표는 내가 한다. 2023 전일빌딩 245 시민문화체험특화 프로그램 일환이다. 시민들에게 5.18 문화 유적지로만 각인되어있는 전일빌딩245의 고정된 이미지를 벗겨내고 복합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마련되는 자리다. 광주시민들, 남도 사람들,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 2023년 11월 25일(토) 오후 전일빌딩, 관련 문의는 전일빌딩245 사업단으로 하면 된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