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서석대> 올드 머니(Old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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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서석대> 올드 머니(Old Money)
곽지혜 경제부 기자
  • 입력 : 2023. 10.29(일) 17:25
곽지혜 기자
한동안 개성있고 화려한 스타일의 Y2K가 패션계를 장악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올드머니 룩’으로 트렌드가 바뀌어 있다. 대대로 내려온 유산이나 상속받은 자산으로 부유한 삶을 영위하는 상류층을 뜻하는 올드머니. 올드머니 룩은 이들이 입을법한, 말 그대로 ‘고상한’ 패션이다. 화려한 브랜드 로고나 디자인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소재 등 좋은 질과 옷의 완성도가 높은 것에 의미를 둔단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주식이나 코인, IT 기술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부를 이룬 신흥 재벌에 대한 불만과 극심해진 인플레이션 등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어 좌절감을 맛본 사람들이 결합하면서 ‘조용한 럭셔리’를 추구하는 올드머니를 선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결국 올드머니나 그 패션을 지향하는 것은 좋게 말해 자수성가, 나쁘게 말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졸부나 뉴머니에 지탄을 보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차피 부(富)를 좇는 것은 같지만, 그와중에도 좀 더 고상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엿보인다.

안타까운점은 이러한 올드머니 룩이 유행하면서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고 그만큼 트렌드에 민감한 세대는 과거보다 더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불과 몇 년 전 학생들이 선호했던 브랜드네임이 가슴에 새겨진 패딩이나 명품 로고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가방, 운동화 등이 인기를 끌며 ‘등골 브레이커’라는 대명사가 만들어졌고, 많은 지탄을 받기도 했다. 당시 아이들은 부모님을 조르기도 했을 것이고 허용되지 않는다면 아르바이트를 불사하며 당시 유행을 따라가고 싶었을 것이다. 문제는 최근 유행하는 올드머니 룩에는 비싸고 좋은 소재의 옷이라는 물질적인 가치뿐만이 아니라 ‘원래부터 부유했다’는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없는 가치가 함께 담겨 있다. 이건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이 집집마다 놓여버린 기분이다.

너나 할 것 없이 큼지막한 로고를 새겨 제품을 내놓았던 브랜드들은 올드머니 룩의 인기에 갑자기 겉으로 봐서는 무슨 브랜드인지 알 수 없는 ‘조용한 명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 누구나 소비하는 초보적인 명품은 그만 사들이고 이렇게 조용한 명품을 사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그동안 올드머니는 고사하고 명품 하나 없이 잘만 살아오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도 반짝이는 즐거움 뒤에 어떤 선망이 자리잡고 있는지 보이기 마련이다. 올드머니 룩의 우아하고 찬란한 모습도 결핍에 대한 욕망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휘둘리지 않을 힘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