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최초의 현대미술관 ‘마깐’에 전시된 하딤 알리의 작 ‘정체성의 단편’. |
서부 자카르타에 위치한 미술관 ‘마깐’. 이 곳의 별칭은 인도네시아 최초 국제적 규모의 현대미술관으로 통한다. 마깐은 (MACAN)은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Nusantra(누산트라 현대미술 박물관)의 약자다. 여기서 누산트라는 인도네시아 고대 지명이고 약자만 추려 발음한 마깐은 인도네시아어로 호랑이를 뜻한다. 이름 하나에도 여러가지 의미가 고려된 점이 꽤 흥미롭다. 특히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닌 기업가이자 컬렉터인 하란토 아디코소에모(Haryanto Adikoesoemo)라는 개인이 국가 최초의 현대미술관을 만들었다는 점은 왠지 모를 세련미를 더한다.
마깐은 본격적으로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동남아 도심이 내려다 보이는 로비의 통창과 트랜디한 카페, 굿즈 숍을 통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2017년 11월 개관해 인도네시아 근현대 및 동시대 유럽, 북미, 중국, 아시아 세계적 작가들의 컬렉션을 갖추었으며 호박 작가로 불리는 일본의 세계적인 아티스트 야요이 쿠사마 등의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치뤘다. 개관 1년만인 2018년에는 타임지가 뽑은 세계 최고 100대 미술관 리스트에 선정되면서 동시대 인도네시아 미술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평가받고 있다.
현재 마깐에서는 호주, 방글라데시,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싱가포르, 대만, 태국, 베트남의 24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그룹전시 ’이성에 저항하는 목소리(Voice Against Reason)’가 진행되고 있다.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이 아시아 지역의 역사와 현재를 회화, 조각, 영상 등 다양한 작품으로 은유한 전시다. 서구열강에 의한 수탈과 침탈로 점철된 근대화 시기의 이성, 서남아시아 국가 등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종교전쟁의 폭력적 이성, 동남아시아 국가 등 독재정권의 강압적 이성, 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가부장적 이성에 반대하겠다는 의미다.
여러 작품 중 대형 양탄자가 가장 눈에 띈다. 파키스탄 출신의 작가 하딤 알리의 페브릭 자수 작품 ‘정체성의 단편’이다. 페르시아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세계를 대형 양탄자 직물을 화폭 삼아 그려 넣었다. 이 곳에 그려진 여러 그림 중, 파란색 텐트 안에 화살을 든 한 남자가 쓰러진 부처상을 둘러싸고 혼란에 빠진 사람들 위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 중에는 몸은 물고기, 얼굴은 사람이 생명체도 보인다. 자세히 보니 피가 튀긴 자국이 선명하다. 바로 부처를 자처한 탈레반 창건자 ‘물라 오마르가’를 가르키고 있는 작품이다.
갤러리 ‘로 프로젝트’에 전시된 일본 출신의 케이 이마주 작가의 설치 작. |
로 프로젝트 전시장은 그렇게 넓지 않은 크기에 세련되고 섬세한 조명 디렉팅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 갤러리에서는 일본 출신의 작가 케이 이마주의 개인전 ‘unearth(발굴)’가 열리고 있다. 필리핀 출신의 큐레이터 카를로스 퀴종이 디렉팅을 했다.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이 집약된 공간이었다. 10개 안팎의 몇 안되는 작품이었지만, 회화 대작, 3D페인팅, 조각 등 다양한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작품 대부분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산물들 사이 동식물 등 자연의 대상물이 잔상처럼 남아 있는 형태였다. 인도네시아는 과거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국가다. 아시아 유일한 제국 침략 국가였던 일본 출신의 작가는 현재 인도네시아에 남아있는 식민 흔적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