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취재수첩>가로주택정비사업과 구순 노인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취재수첩
[전남일보]취재수첩>가로주택정비사업과 구순 노인
송민섭 취재2부 기자
  • 입력 : 2023. 11.26(일) 14:57
송민섭 기자
광주 동구 산수동이 시끌벅적하다. 산수동 553-24 일원에서 진행중인 가로주택정비사업 때문이다.

현재 지하 2층~지상 27층 높이 아파트 196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시행사가 치매 노인 A씨에게 동의서를 받아 문제가 불거졌다.

A씨는 치매환자로 2년전 병원에서 중증치매인 피질하 혈관성 치매(F2) 진단을 받았다.

치매 증상은 거의 매일 발현되는 질병이다. 지난해 10월 8일도 마찬가지였다. A씨는 이날 조합측 현장 설명회에 참가해 조합설립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당연히 A씨의 기억에는 없었다. 왜 서명 했는지, 누구 이야기를 듣고 동의 했는지 조차 모른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A씨 자녀들은 조합측과 구청을 찾아 몇달간 동의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구청은 A씨가 조합을 탈퇴하면 가입률이 80%에 못미쳐 동의 철회가 불가능하다고만 답했다.

이후 자녀들이 민원을 제기했지만 구청은 요지부동이었다. 변호사 자문 결과 치매 진단 받았다는 이유만으로는 의사 능력을 부정할 수 없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안돼 설립인가를 내줬다고 답했다.

가로주택 정비사업은 주민 80%가 동의하면 조합을 꾸릴 수 있다. 조합 측은 80.2% 동의를 확보했다. 사업에 찬성하는 이들이 절대다수라는 의미다. 사업에는 엄청난 이권이 오갈 뿐 아니라 주택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있어 주민 대다수가 재개발 등 사업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반면 이 과정에 상가 권리금이나 원주민의 재정착률과 같은 문제도 나온다. 이익 실현을 반대할 수 없지만 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역할이다.

A씨 상황은 어땠을까. A씨는 가로주택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구역 해당 주택에 40년간 살았다. 사고로 고관절을 다쳐 주변 도움이 없으면 걷지 못하는 90대 A씨 아내도 살고 있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당장 3년 후부터 자리를 내주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 구순의 노인이 과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국가는 A씨를 보호했을까. 재개발 관련 수많은 시위에서 사람들이 국가에 던지는 질문은 ‘국가는 누구의 편인가’이다. 산수동 553-24 일원에서 벌어지는 가로주택 정비사업과 관련해서 동구에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 80.2%가 동의하면 나머지 19.8% 희생은 강요 받아도 되는가에 대한 질문도 있다.

구민 생활권이 바뀌는 사업인만큼 시행과정을 더 살필 필요가 있다. 동구는 이 사업과 관련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있음을 잘 살펴봐야 한다. 개발이익에 눈이 멀어 주민들의 희생만 강요하거나 일을 간과해선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