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고·이진>쪽지예산의 이유 있는 항변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기고·이진>쪽지예산의 이유 있는 항변
이진 광주광역시의회 운영수석전문위원
  • 입력 : 2023. 11.28(화) 12:57
이진 수석전문위원
지방자치법상 지방의회는 매년 2회 정례회를 개최한다. 그중 제1차 정례회는 6월 1일에 열어 결산의 승인을, 제2차 정례회는 11월 1일에 열어 행정사무감사의 실시 및 예산안의 심의·의결을 진행한다. 현재 광주광역시의회는 제2차 정례회 중이다. 이번 주 29일(수)부터는 상임위별로 2024 예산안을 심의한다. 7조에 달하는 예산을 놓고 의회와 집행부 간 치열하고도 팽팽한 접전이 예상된다.
시카고 대학의 정치경제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는 한정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권위적 배분’이란 공동체 내에서 시민으로부터 위임된 권위를 바탕으로 정치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다. ‘집행부의 의사결정과정과 의회의 의결’을 통해 형성된 민주적 배분이야말로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분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쪽지예산’이다. 쪽지예산은 예산심의 과정에서 의원들이 예산심사를 맡은 위원들에게 지역구 사업을 예산에 편성해 달라고 쪽지로 부탁한 예산을 말한다. 2000년대 초에는 ‘포스트잇예산’, 요즘은 ‘카톡예산’이라고도 한다.
쪽지예산은 매년 반복돼서 나타난다. 언론에서는 의회를 비난한다. 사업 타당성 검토 없이 선심성으로 불쑥 끼워 넣어 예산의 낭비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국회의 경우, 실세 정치인들이 막강한 힘을 써서 예산의 지역적 불균형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쪽지예산은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한국의 예산제도를 보면, 집행부는 편성권과 거부권을 갖고 의회는 심의권과 의결권을 갖는다. ‘편성권과 심의권’의 대결이다. 의회의 심의권에는 한계가 있다. 헌법 제57조에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법 제142조도 마찬가지다.
집행부가 제출한 예산안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올까? 권위는 선출된 권력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례와 법령이 정하는 예산과정’의 민주성과 투명성이다. 즉 예산이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배분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면 예산의 완성도는 높아지고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예산편성권자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편성된다면 스스로 권위를 상실할 수도 있다.
반면 의회나 시민은 예산편성에 있어 참여할 수 있는 과정이 거의 없다. 의회는 공식적·비공식적 의견개진을 통해 일부 편성에 참여할 수 있지만 거의 미미한 수준이다. ‘시민참여예산’도 아직은 걸음마 상태다.
집행부가 제출한 예산이 완벽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보완할 기제가 필요하다. 의회의 예산심사과정에서 보완할 수 있다. 쪽지 예산도 그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의 예를 살펴보자. 연방의회에서 쪽지예산은 오랜 관행이다. 세출예산 중 재량지출의 1% 안팎에서 이어마크지출(earmark spending)이나 포크-배럴 세출(pork-barrel spending)을 세출법안에 추가해 예산수정안을 제출한다. 이러한 관행을 지지하는 의원들의 주장이다. ①세출법안 통과와 개별 프로젝트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 ②주(State)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원의 일이다. ③행정부로 귀결되는 엄청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 ④의회와 백악관 균형이 중요하다. 이 주장의 맥락에는 예산에 대한 결정권을 공무원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미국의회의 쪽지예산이 전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예산심사 시 세출예산의 탄력적 운영에는 관심이 간다.
2024 광주광역시 예산심의 과정에서 세출예산 증액에 관한 탄력적 운영을 제안한다. 너그럽게 보면 쪽지예산도 그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 의회에서도 쪽지예산을 의원의 전유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예산심사과정에서 사업예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집행부의 동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예산서는 숫자로 표시된 정책보고서이며, 1년의 정치과정을 미리 설명하는 해설서이다.
2024 광주광역시 예산서에 보다 많은 의견과 좀 더 합리적인 배분이 망라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