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 에세이·탁인석>‘인생은 짧고 약속은 못 지키고…’ 그러니 걸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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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작가 에세이·탁인석>‘인생은 짧고 약속은 못 지키고…’ 그러니 걸을 수밖에
탁인석 칼럼니스트
  • 입력 : 2023. 11.30(목) 12:43
탁인석 칼럼니스트
나의 세 번 째 수필집을 내면서 솔로몬왕의 최후의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솔로몬왕은 3000년 전 이스라엘 영토를 가장 많이 넓혔고 지혜의 아이콘으로 각인된 인물입니다. 그러한 그도 최후에는 구약성경 코헬렛 전도서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돼서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익히 알려진 솔로몬왕은 1000여 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40년간 절대 권력을 휘둘렀고 물처럼 땅처럼 많은 재물을 소유했습니다. 책 속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인생을 잘 향유하기로도 유명합니다.

그런 그가 왜 ‘인생이 헛되도다.’라고 했을까. 그가 남긴 큰 깨달음은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되고 죽으면 모두가 소용이 없다는 것을 크게 눈치 챈 것입니다. 일평생 쌓은 부와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숙명을 늘 기억하자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또한 자기 인생조차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겸허하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생명이 있는 동안은 ‘기뻐하고 즐기자’는 지혜의 말씀을 최후로 남긴 것입니다.

나 또한 솔로몬왕의 ‘헛되도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을까. 산야가 만추입니다. 알베르 카뮈는 “잎사귀가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라는 시구를 남겼습니다. ‘페스트’, ‘이방인’ 등으로 우리의 귀에 익은 카뮈는 44세 때 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됐고 47세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운을 겪습니다. 부조리 인생을 한평생 탐구한 작가의 부조리한 인생이 깨달아지는 강한 역설로 다가옵니다. 허무감이 밀물지고 부조리 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지는 이 나이에 살아있는 기쁨은 무엇으로 담보할까. 글쓰기입니다.

문학성을 지킨 글쓰기는 장엄하다고 해야 할까요. 글쓰기는 한마디로 인간탐구를 하는 작업으로 요약할 수 있지만 정작 장르 선택에 있어서는 답이 없습니다. 호머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를 섭렵하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아네스’를 읽었다 하여 나의 글쓰기는 그에 미칠 수도 없습니다. 내 방식의 글쓰기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나 문학이 모든 예술장르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으로 세상을 밝히고 예언 한다고 할 때 나 자신의 역할에 숙연해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내 나름의 문화인식을 다듬으려 했었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했습니다. 내 스스로 감히 ‘문화마이더스’라는 지칭을 했습니다. ‘마이더스’는 손이 닿으면 황금으로 변하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프리지아 왕의 이름인데 문화가 대세이고 대박이 되는 시대에 문화든 문학이든 계속적인 발전에 대한 나의 열망을 독자들에게 어필해보려는 몸부림이겠지요. 문화인식과 전개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이기에 책장 넘기듯 일회성 독서로 지나치기엔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글쓰기는 전방위적으로 그 뿌리가 튼실해야 겠지요. 거기에 역사의식 또한 필요 덕목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겠지요. 역사를 모르는 작가가 감각적으로만 독자에게 접근한다면 어찌 될까요. 언어의 힘은 국민 창의성의 바탕을 이룹니다. 국민 창의성은 국가의 경쟁력이며 경제 선진국으로 가는 길라잡이가 됩니다. 한글이 발전하고 세계화될 때 역사의식은 한결 덩실해질 것입니다. 한글을 잘 부리는 작가들이 대한민국의 시대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작가는 끊임없이 역사를 묻고 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작품 하나하나가 사막의 낙타들이 별빛 찾아가는 나의 미션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캄캄한 사막의 밤에 낙타들이 저마다 ‘인식’의 짐을 싣고 비록 헛되기는 하더라도 죽기 전에 도달해야 할 오아시스를 향해 한발 한발 가고 있다는 게 인생이 아닐까. 오아시스 찾아가는 낙타의 이정표는 오직 별빛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그래도 자식을 남기고 나무를 남기고 책을 남겨야 ‘사람다움’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래! 인생은 짧고 약속은 못 지키고 그러니 별빛 찾는 낙타처럼 무한정 걸을 수 밖에…. 이번 수필집 제목을 ‘별빛 찾아가는 낙타들’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