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교육의 창·윤영백>교육권 무너트린 손, 교육권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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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교육의 창·윤영백>교육권 무너트린 손, 교육권 지킬 수 있을까
  • 입력 : 2023. 12.03(일) 14:27
윤영백 광주여자상업고 교사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 이후 ‘교육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시민들 분노도 만만치 않다. 학교장에게 근조화환을 보내거나 악성 민원인의 영업장을 찾아 별점 테러를 하는 등 집단행동이 일어나고 있다. 법과 제도의 문제 등을 함께 살펴서 해법을 찾아야 할 일이긴 하지만, 악성 민원에 의한 피해자를 ‘어느 교사’로 좁게 보지 않고, ‘교육권 붕괴’를 짊어져야 하는 자신이나 사회까지로 넓게 보게 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이 같은 분노가 교육권에 대한 사회적 자각이라면, 교육권 회복은 기존의 법, 제도, 관행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가장 뼈아픈 성찰이 필요한 곳은 광주시교육청일 것이다.

광주는 2018년~2019년 당시 최소 50여 명에 이르는 교사들을 민원만으로 수업 배제하고, 수사 의뢰하는 등 광풍이 휩쓸던 곳이다. ‘교육권’이 화두가 된 상황에서 당시의 교육행정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있어야 하지만 그런 흐름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권 붕괴를 가속했던 이들은 교육권을 책임지는 교장, 교감이 되기 위해 부단히 학교로 흘러가고 있다.

당시 수많은 사건 중 배이상헌 사건을 통해 당시 행정이 어떻게 교육권을 무너트렸는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교사 배이상헌은 도덕시간 성평등 단원을 수업한 일이 ‘아동학대’로 신고돼 수업 배제, 수사의뢰, 직위해제된 이래 경찰, 검찰, 교육청 징계위, 소청에 이어 각종 소송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은 교사가 사회적, 경제적, 생물학적으로 죽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500일 가까이 교육청 정문 시위를 했었고, 당대 지성인들의 비판이 있었고, 프랑스 최대 교사노조의 권고가 있었고, 대규모 집회도 열렸으며, 여러 차례 면담을 요구했지만, 장휘국 전 광주시교육감은 배이상헌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답하지 않았다. 단지, “민원인이 학생이니 학생 편을 들겠다”는 말만 읊조렸다. 학생은 약자이니 약자의 자리에서 발화된 민원은 진실로 전제하겠다는 이 단순한 철학과 무식한 정의감만이 지금까지 저질러진 행정 폭력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로 남아 있다.

교육감이 옹색한 자리로 몰리게 된 것은 당시 교육청 관료들의 끈적끈적한 동조 덕분일 것이다. 대부분 자신도 교사였거나 그 언저리에 있었던 만큼 교육할 권리를 보호할 책임이 본능처럼 잠재되어야 마땅하지만, 오로지 민원만으로도 교사를 경찰서에 보낼 만큼 그들은 우악스러웠고, 무능했고, 무책임했다.

당시 정책국장은 교육부 매뉴얼을 핑계로 들었다. ‘전국적으로 광주에서 가장 악랄하게 교사들을 교실에서 내쫓고 있다.’고 비판하면 ‘광주가 가장 악랄한 것이 아니라, 교육부 매뉴얼에 가장 충실할 뿐’이라고 변명했다.

성인식팀 장학사들은 편협하게 해석한 ‘피해자 중심주의’를 신앙처럼 행정에 적용했는데, 수업 배제된 교사에게 왜 혐의조차 말해 주지 않는지 따지면, ‘혐의를 알려주면 교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신고한 학생을 색출하러 가는 일이다’고 했다. ‘그런 행위를 경고하고, 위반시 처벌하면 되지, 원천적으로 소명기회를 박탈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하면, ‘거의 모든 교사가 다 그러는데, 학생을 보호하지 말라는 거냐’고 맹신도처럼 되받았다.

효천중 교권보호위원회가 배이상헌 사건에 대해 ‘교육권 침해 여지가 있으니 교육청이 소명하라’고 결정했지만, 담당 관료들은 이 결정을 끝까지 무시했다. 대신 교육 전문성이 전혀 없는 여성단체 운동가로 위원회를 꾸려 전문가 자문을 받았다며 이를 방패막이로 삼았을 뿐이다.

장휘국은 3선에 도전할 때 ‘교권 보호’를 내세웠고, 교권 담당 변호사를 2명이나 고용했다. 교권에 힘쓴 정도를 변호사 숫자로 자랑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변호사들은 교육권에 대한 전문성도 관심도 거의 없었다. 교사들이 무더기로 최소한의 방어권, 소명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교실에서 쫓겨나는 현상에 대해서도 그들은 업무 바깥의 일인 양 회피하기 급급했다.

권보호센터 역시 교육권 보호에 대한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곳이 아니었다. 특히 행정기관에 의한 교권 침해를 끝까지 외면했다. 당시 담당 장학관은 “교권보호위원회는 학생,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만 다룬다”며 교육청의 폭력에서 눈을 돌렸고, 학교 교권보호위원회의 권고와 교원지위법에 명시된 소명기회 부여 의무에 대해 심의를 끝까지 거부했다.

감사실의 활약도 눈부셨다. 부장검사 출신이 감사관이었지만, 교원지위법은 고사하고 형사법이 보장하는 법익에서 교사가 제외되는 일에 전혀 제동을 걸지 않았다. 감사실 관료들은 검사가 쓴 무혐의 처분 사유, 판사가 쓴 무죄 선고 근거 등을 모두 지워버리고, 최초 민원에 근거해서 무혐의 교사들에게 징계를 내릴 명분을 제공하는 행정을 도맡았다.

그리하여 광주의 교육 현장은 어둡게 얼어붙었으며, 교육을 일구려는 마음마저 처벌되는 상황에서 교육은 이미 싸늘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 주검이 오늘날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교육감이 바뀌었지만, 새 교육감은 광주에서 일어났던 광풍을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보거나 굳이 힘을 빼서 되돌아볼 필요가 없는 일로 여기는 눈치다. 게다가 서이초 교사의 죽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개정’을 운운하거나 지난 9월 4일 추모제 참여를 두고 오락가락 행태를 보인 것을 보면 별다른 기대를 갖기도 힘들다.

이 가운데 교육권 붕괴를 가속했던 관료들은 현장의 교육권을 지켜야 할 교장, 교감으로 영전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은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애도한다며,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교장, 교감이 지킨다’는 말을 주억거리고 있을 것이다.

교육권에 대한 진심도 없이 성난 여론이 선생님을 패냐, 학생, 학부모를 패냐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짓는 이들이 과연 학교를 책임질 수 있을까.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다르다’는 식의 궤변만으로 교육권 보장은 요원해질 뿐이다. 지금이라도 지난 사건을 되돌아보고, 폭력 행정의 가해자들이 진심으로 성찰하고 사죄하는 시간이 생기길 빈다.

그런 시간을 고통스럽게 통과해야만 비로소 교육할 힘이 차오르기 시작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