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2024 다시 뛴다]“다음 롤드컵은 '고향 광주'서 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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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2024 다시 뛴다]“다음 롤드컵은 '고향 광주'서 뛰고 싶어요”
●광주 출신 이동근(이그나) 프로게이머
작년 한국 개최 롤드컵 8강 진출
부산 등 지역 e스포츠 저력 확인
지역연고제 ‘재밌는도시’ 발판
'도시문화와 e스포츠 접목' 제언
“저변 확대로 좋은 선수 나오길”
  • 입력 : 2024. 01.01(월) 18:01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이그나(이동근) 선수가 지난달 25일 광주 북구의 한 카페에서 한국 롤드컵 대회 참여 소회 및 지역 e스포츠 등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광주 출신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 이그나(이동근·28) 선수는 지난해 ‘황홀했던 한 해’를 보냈다. 소속팀 NRG(북미)에서 리그 우승을 거머쥔 데다 한국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선 8강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뛰어난 영어 실력까지 겸비한 그는 해외에서 ‘한국 대표 용병’으로 꼽힌다. 올해는 지난해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리그 준우승팀인 ‘자이언트X’로 이적,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이그나는 “롤드컵 이후 한국의 e스포츠 생태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과거와 달리 시설·팬 문화·기업 투자 등에서 큰 성장을 이뤘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에서 열린 롤드컵 8강전에선 ‘감탄’까지 받았다.

선수생활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 그에게 한국의 e스포츠, 더 나아가 지역 e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과제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2023년 소회와 함께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한다면.

△‘2023 리그오브레전드 북미 NRG 소속 서포터’로 뛰었던 이그나(IgNar) 이동근이다. 롤드컵 종료 후 유럽 자이언트X(전 엑셀e스포츠) 서포터로 이적했다. 2015년 데뷔 이래 작년 NRG 우승이 생애 첫 리그 우승이었다. 여기에 한국서 열린 롤드컵에도 순위권에 안착해 더할 나위 없는 한 해를 보냈다. 타지에서 열심히 응원해 준 가족과 팬들 덕분이다. 흥미진진한 여정이었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에는 게임방 다니기 좋아하던 광주 북구 토박이었다. 성인이 된 후 첫 팀이 해외구단이라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떠났다. 매 경기 시즌이 종료되거나 긴 연휴가 생기면 광주를 찾아 부모·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올해는 롤드컵 덕분에 꽤 오랜 시간 지역에 머무른 것 같다. 고향에 대한 애착이 깊어 전남일보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큰 고민 없이 수락했다.

-왜 e스포츠 선수를 희망하게 됐는지.

△워낙 게임을 좋아했다. 부모님도 취미로서 인정해 줬다. 실력이 늘다 보니 고등학교 2학년(2013년) 때 방송·프로입단 제의가 많이 왔다. 개인적으로 ‘프로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이 있었다. 명절 때면 친척들이 집에 놀러 와 ‘게임 가르쳐달라’ 요청하는 집안 분위기도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을 때였는데, 가족들이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정말 감사한 부분이다. 장래희망을 정하고 가장 난감했던 건 ‘학업 연장’이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지방에서 프로게이머를 하려면 무조건 자퇴를 해야 한다. 연습생 생활을 서울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북구민 T1오너(문현준·동신고 중퇴) 선수도 마찬가지다. 서울 사람이었다면 고민도 안 했겠지만, 지방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큰 문제로 다가왔다. 중퇴 후 올라간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지 않나. 고민 끝에 프로를 잠시 미루고 남은 학업을 이어갔다. 졸업장도 무사히 땄고 그때 만난 친구들과 아직도 연을 이어가고 있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지역 e스포츠 인프라는 물론이고 유튜브 등도 없던 시절이라 방과 후 개인 연습을 치열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이그나(이동근 당시 NRG) 선수가 지난해 10월 김포KBS아레나에서 열린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스위스스테이지 경기에서 몰입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 제공
-2017년·2020년 이후 한국서 세 번째 롤드컵에 참여했는데.

△그간의 롤드컵은 다 해외에서 경험했다. 한국 롤드컵은 처음인데 진출이 확정된 뒤 정말 기뻤다. 가족·지인들 앞에서 경기할 수 있음에 행복했다. 스스로 몹시 자랑스러웠다. 마지막 경기가 치러진 부산 8강전에서는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경기장 시설이 너무 좋았고 팬들의 응원도 뜨거웠다. 더 순위를 치고 올라가지 못해 아쉽지만, 한국 e스포츠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도 e스포츠에 대한 관심·지원이 많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숙소·주변 부대시설 등도 훌륭했다. 지역 e스포츠의 저력을 체감했다. 광주에도 e스포츠경기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큰 경기를 하면 단순히 선수단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응원객들이 모인다. 광주에 거주하는 가족·지인들도 롤드컵 경기 관람을 위해 부산을 방문했다. 지역을 알리는 데 이만한 게 없다. e스포츠경기장은 절대 흔한 인프라가 아니다. 한국서 한 번 더 롤드컵이 열린다면 그때는 꼭 고향에서 참여하고 싶다. 단, 그때는 선수가 아닌 코치로 참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웃음)

-부산은 지스타(국제게임전시회)·롤드컵 개최뿐만 아니라 롤 프로구단과 ‘지역연고’를 맺기도 했는데.

△e스포츠 분야는 해가 거듭될수록 발전하고 있다. 최근 항저우아시안게임 등으로 인지도도 급상승했다. 이런 점에서 e스포츠를 지역 상품으로 접목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지역연고제는 팀과 지역, 팬·지역민 모두에게 이점이 있다. e스포츠는 야구·축구처럼 매 경기 홈구장에 와서 할 필요가 없다. 경기·훈련장은 서울에 있지만 지역 대표팀으로서 팬미팅·뷰잉파티 등으로 함께 호흡할 수 있다. 팬·선수는 ‘소속감’으로 더 끈끈해지고, 팀은 지자체 지원을 받아 더 큰 규모의 행사를 개최할 수 있다. 유럽·미국·중국 등은 이미 이같은 지역연고를 시행하는 곳이 있다. 협약 등 여러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부산에서 리브샌드박스(한국)와 맺은 선례가 있는 만큼, 타 지역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e스포츠 지역연고제’ 추진을 공약하기도 했지 않나.
이그나(이동근 당시 NRG) 선수가 지난해 10월 김포KBS아레나에서 열린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스위스스테이지 경기에서 몰입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 제공
-광주는 꿀잼도시의 일환으로 e스포츠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조언이 있다면.

△최근까지 몸담았던 북미 리그는 하루 모든 경기가 끝나면 구단 측에서 에프터파티를 연다. 행사 관리 등에는 지자체 협조도 함께 이뤄진다. 다양한 부스와 먹을거리들이 꾸려진다. 이를 위해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있다. 지역·구단이 하나의 문화를 만든 거다. 다만 한국은 아직 이 정도 규모의 행사는 개최하기 힘들다. 시즌이 끝난 뒤 팬미팅 등은 가능하지 싶다. 부산의 경우 롤드컵 경기 전·후 뷰잉파티를 진행하는 걸 봤다. 광주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작든 크든 대회·행사가 많이 열리는 게 e스포츠 팬들에게는 좋다. 아울러 도시와 e스포츠를 연결한다면 광주의 다양한 문화(AI,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미디어아트 등)를 접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e스포츠만으로는 관광 수요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 e스포츠경기장·행사 등을 여러 장소와 묶어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과거 유럽 선수 시절 도시가 예뻐 e스포츠 경기를 하러 다니는 중에도 여행 다니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광주·전남 지역 팬과 e스포츠 꿈나무들에게 한마디.

△2023 롤드컵에서 생각 이상의 응원을 받았다. 가족과 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제 프로게이머 수명이 길어야 1~2년 남은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재밌는 경기 많이 만들어 내겠다. e스포츠인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즐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이따금 부모님들이 ‘아들을 프로게이머 시키고 싶다’고 게임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있다. 성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정도 적성을 찾고 가는 게 제일 좋다. 욕심부리지 않고 조금씩 발전하다 보면 좋은 결과는 뒤따라온다. 과거와 달리 지역 e스포츠 인프라 등이 너무 좋아졌기 때문에 여유시간에 e스포츠 체험을 시키면서 적성 분야를 찾길 바란다. 외부적으로는 평상시 눈·체력 등 건강 관리에 신경 쓰면 되겠다. 고향에서 ‘e스포츠’로 인터뷰하게 돼 신기하다. 그만큼 광주가 e스포츠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저변 확대 등에 힘써 훌륭한 선수가 많이 배출되길 바란다. 스스로도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