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설 특집>“나눔 좋아 남몰래 기부… 선행 문화 확산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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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전남일보]설 특집>“나눔 좋아 남몰래 기부… 선행 문화 확산되길”
●선행으로 세상 밝히는 이웃들
첨단2동에 쌀·등 수년 기부
경기 고양시민 광주에 선행
“어려운아동에 도움 되고파"
구청, 기부금·생필품 등 전달
  • 입력 : 2024. 02.07(수) 18:07
  • 정성현·정상아 기자
지난 5일 전남대 인근에서 만난 광주 광산구 첨단2동 익명 독지가 김종헌씨가 기부 이유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설 명절을 앞두고 생활고를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해 남몰래 선행에 나선 익명 독지가들이 지역사회에 훈훈함을 주고 있다. 이들은 수년 전부터 지역 취약계층에 현금을 비롯, 각종 생필·식료품 등을 전달하고 있다. 본보는 자신을 숨긴 채 기부에 나선 ‘얼굴 없는 천사’를 만나 기부를 하게된 이유와 익명으로 선행을 이어온 까닭 등을 들어봤다.

● “힘들었던 경험, 기부하게 된 계기”

“몸이 아팠던 적이 있어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데 일도 못하니 한순간 기초수급자 신세가 됐죠. 그때 힘들었던 경험이 남을 돕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지난 5일 광주 북구 전남대 인근에서 만난 김종헌(70)씨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2022년부터 자신이 살던 광산구 첨단2동에 매년 쌀(백미) 400㎏을 익명 기부해오고 있다. 올해는 광산구 아동복지단체에 ‘불우아동을 위한 후원금(매달 10만원)’을 전달 중이다.

2017년부터 건설업 현장직을 맡고 있는 김씨는 ‘이 일을 하게 된건 다 주변인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화물 운전사를 20년 했다. 2009년 사고로 평생 업을 잃고난 뒤 6년 동안 수급자 신세를 졌다”며 “밥도 제대로 못먹을 정도로 궁핍한 삶에 세상 원망을 많이 했다. 그때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이웃들이 쌀이며 생활비며 도움을 주더라. 암흑 같던 삶에 그 손길이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주변 도움으로 다시 사회로 나선 김씨는 ‘언젠가 남을 돕겠다’는 마음을 굳게 다졌다. 출퇴근길에 만난 청년들을 볼때면 그들의 미래를 위해 어떤 봉사가 필요할지 고민도 했다. 다짐은 이윽고 ‘기부’로 이어졌다.

김씨는 “첨단 2동서 굶어가며 취업 준비하는 청년들을 봤다. 스트레스에 소주 한병으로 잠을 청하는 이들도 많았다”며 “밥이라도 잘 챙겨먹기를 바랐다. 더불어 취약계층 어른들도 돕고 싶었다. 그래서 쌀을 기증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고집한 이유로는 ‘특정되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김씨는 “어렵던 시절 누가 날 도왔는지 모른다. 그저 선행에 감사했다”며 “누군가에 ‘고맙다’는 얘기를 들으려고 한 기부가 아니다. 나처럼 그 사람이 누군가를 또 돕길 바랐다. 따뜻함을 느꼈으면 그걸로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부 3년차인 올해 ‘취약계층 학생들을 위한 선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기부를 하다보니 나눔이 좋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물품·돈에도 환하게 웃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했다”며 “올해는 보육원·보호소 등 학생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폭탄선언’을 했다. 이제부터 익명으로 기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질적 지원을 넘어 직접 만나 소통하는 등 ‘어른의 책무’를 이행할 때가 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씨는 “선행에는 위 아래가 없다. 누구나 받을수 있고 할수 있다.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며 “올해 도움받는 아이들도 이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명절이 지난 이후에는 각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등 환경적 측면에서 어떤 도움을 줄수 있을지 고민해보려고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김씨가 전달한 백미·후원금은 첨단2동 생활이 어려운 돌봄 이웃과 지역아동센터 등에 전달될 예정이다.

첨단2동 관계자는 “수년 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해 준 독지가에 감사 드린다”며 “지역사회 복지환경 발전을 위해 동 차원에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종헌씨가 광주 광산구 첨단 2동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 며 백미 400㎏을 기부했다. 광산구 제공
지난해 12월 기부자 김봉천씨가 지역사회 나눔을 인정받아 광주 남구로부터 남구청장상을 수상받고 있다. 광주 남구 제공
● 타지서 고향 광주에 건네는 ‘남몰래 선행’

광주 남구 대촌 칠석동 출신 김봉천(64)씨는 방송국에서 특수 분장을 맡아 활동하다 5년 전 정년퇴직 후 가족들과 직접 특수 분장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 이웃을 위해 지난 2021년 10월부터 수익금 일부를 고향인 남구 대촌동에 기부해왔다.

매월 50만원씩 매년 600만원의 기부금으로 현재 1400만원을 기탁했다.

김씨는 서울로 상경 후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고 있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고향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고 나섰다.

그는 고향에 부모님과 친척들이 살고 있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향이 가장 편하고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큰돈은 아니지만 지역 어려운 이웃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기부를 시작했다”며 “어머니가 95세인데 노인정에서 늘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을 어르신들께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대촌동 초·중학교 재학생들이 신발이나 학용품 등을 구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싶다”고 밝혔다.

김씨는 그동안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조용한 기부를 이어왔다.

김씨는 “적은 금액이어서 기부했다고 말하기도 좀 부끄럽다”며 “주민들이 마음 편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서 익명 기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광주 남구 대천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기탁 받은 기부금으로 복지사각지대 저소득 이웃에 현금 지원과 저소득 독거노인, 한부모가족 등 돌봄이웃에 명절 선물 지원으로 사랑의 온기를 전하고 있다.

김씨는 “한꺼번에 기부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를 실천하고 싶고 고향의 어려운 주민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광주 남구 대천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김씨가 기탁한 기부금으로 지난해 저소득 독거노인, 한부모가족 등 돌봄이웃에게 명절 선물을 지원했다. 남구 제공
정성현·정상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