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설 특집>“18살때 제주 떠나 반백년 여수서 물질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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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슈
[전남일보]설 특집>“18살때 제주 떠나 반백년 여수서 물질했재”
●여수 금오도 김성희 해녀
12살부터 물질… 여수와서 정착
17㎏ 납덩이 차고 하루 4시간 일
자연산 전복·소라·고동·문어 잡아
2013년 기준 전남지역 해녀 354명
지역 해녀 실태 파악·지원책 필요
  • 입력 : 2024. 02.07(수) 18:16
  •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여수 금오도에서 활동 중인 김성희 해녀. 전남여성가족재단 제공
여수 금오도에서 활동 중인 김성희 해녀가 갓 잡은 전복을 배 위로 건져올리고 있다. 전남여성가족재단 제공
여수 금오도에서 활동 중인 김성희 해녀가 잡아온 전복을 손질하고 있다. 전남여성가족재단 제공
전남에서 활동 중인 해녀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어린 시절 제주 바다에서 물질을 하다, 10대 후반 제주를 떠나 여수, 신안, 완도 등 전남에 터를 잡고 해녀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타 지역의 경우 지자체 차원에서 해녀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전남은 이렇다할 혜택이 없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전남여성가족재단은 최근 전남 해녀에 대한 ‘생애구술사 작업’을 통해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가족 생계 책임지는 가장 역할

“옛날엔 제주에서는 돈 벌이가 없었어. 육지에 나가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열두살에 아버지 따라 물질할 바다를 찾아 나갔지. 열여덟살에 여수에 와서 스무살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어. 큰언니한테 물질하는 법을 배워서 전복 따고 소라나 해삼 같은 거 잡으면서 살았어. 지금은 여수 경도랑 금오도 오가면서 물질하고 있어.”

60대 초반의 해녀 김성희씨는 다른 해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다. 해녀들은 17㎏ 납덩이를 허리에 차고 두꺼운 고무옷을 입고 하루 4시간씩 일한다. 한 달 중 24일을 바다 속에 들어가 일하다 보니 관절염이나 허리통증, 두통 등 직업병을 달고 산다. 이들이 잡은 자연산 전복과 소라, 고동, 문어 등은 돈으로 연결된다. 가장으로 생계를 꾸리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힘들어도 물질을 쉬지 못한다.

김성희씨 역시 좋지 않은 허리와 관절을 이끌고 물로 들어간다.

제주 사람이던 김씨의 부모는 부산에서 김씨를 낳았다. 당시 아버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김 씨 어머니가 물질로 4남매를 길렀다. 7살이 되자 그녀는 제주도로 가 할머니로부터 처음 물질을 배웠지만 몇 년 뒤 어머니와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육지로 떠난 아버지 대신 7살 어린 동생을 데리고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바다일부터 밭일, 무말랭이 공장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12살.

김씨는 해녀가 넘쳐나는 제주 대신 부산, 진해, 여수 등 물질 값이 조금이라도 더 비싼 곳으로 떠났다. 여수에서는 먼저 터를 잡고 물질을 했던 큰언니로부터 본격적으로 해녀 일을 배웠다. 할머니는 제주 행원바다에서, 어머니는 부산 영도바다에서 그리고 큰언니와 김씨는 여수에서 물질을 했다. 집안 여성들 모두 해녀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간 것이다.

제주에서 우뭇가사리와 미역을 주로 채취했던 그는 여수에선 큰언니를 따라 전복도 따고 해삼이나 소라를 잡았다.

“여수 물질은 제주도 물질과 달랐지만, 당장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했지.”

묵묵히 해녀 생활을 이어가던 김씨에게는 시련도 많았다. 결혼 초반엔 일하지 않는 남편 대신 가정의 생계를 꾸려가느라 허리가 휘었다. 지난 2006년엔 다이버로 일하던 남편이 사고를 당했고 지난해 첫째 아들이 마흔셋의 나이로 세상을 먼저 떴다. 힘든 일을 겪다보니 이젠 바닷속에 들어갈 때마다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고 했다.

“우리 아들 보내고 많이 울었어. 육지에선 그렇게 하면 보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애 아빠 보기에도 안좋을 것 같아서 물에 들어가서 아들 이름 부르며 많이 울었지. 물 속에 들어가면 네다섯 시간은 내 자유야. 내가 울어도 뭐라하는 사람도 없고. 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공간이라, 집에 있는 것보단 바다에 나가는 게 좋아. 이젠 우리 막둥이 딸 생각도 했다가 보고싶은 손자, 손녀 생각도 했다가. 육지에서는 하지 않던 생각들이 다 나지.”

● 지역 내 해녀 지원책 없어

여수 금오도와 경도를 오가며 물질을 하고 있는 김씨는 해녀에 대한 혜택이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부산은 어촌계에서 잠수복 제공 등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지만, 여수는 친목도모 수준의 해녀협회가 전부다. 제주 역시 지난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잠수어업인 진료비 지원 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2009년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문화 보존 및 전승에 관한 조례’, 2012년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문화콘텐츠사업 진흥 조례’ 등을 제정해 해녀들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전문 인력 양성 등으로까지 힘을 쏟고 있다. 경상남·북도, 강원도 역시 지난 2011년과 2012년에 ‘잠수어업인 진료비 지원 조례’를 제정해 해녀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오고 있다.

반면 전남은 지난 2013년에야 비로소 해녀에 대한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2013년 7월 기준, 전남 해녀는 총 354명(여수시 148명·신안군 97명·완도군 96명·고흥군 13명)이다. 당시 실태조사를 진행했던 전남여성플라자는 △소득 지원 △노동여건 개선 △의료안전 지원 △조례 제정 등 다양한 정책들을 제안했다.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제대로 이뤄진 것은 거의 없었고, 그 사이 늙고 병들어 일을 그만 두는 해녀도 늘었다.

전남여성가족재단은 최근 직접 해녀들을 만나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생애구술사 작업을 시작했다.

성혜란 전남여성가족재단 원장은 “전남에서 활동 중인 해녀들이 있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다”며 “제주나 부산만 해도 해녀들에 대한 복지 혜택이 많고 이들의 문화를 계승해 가려고 노력한다. 늦게나마 시작한 생애구술사 작업을 통해 전남지역 해녀들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