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전봇대 무임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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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전봇대 무임승차
김성수 논설위원
  • 입력 : 2024. 02.27(화) 15:14
김성수 논설위원
지난 2009년 순천만에서 국내 첫 정원박람회와 국가정원이 탄생했다. 당시 노관규 순천시장이 주변 농경지에 있던 전봇대 282개를 뽑아낸 게 시작이다. 순천만 보존과 흑두루미 보호를 위해 300억 원을 들여 생태형 탐방로를 설치하고 주차장을 생태공원으로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순천만의 변신은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외신들까지 주요 뉴스로 다루는 테마가 됐다. 순천만 흑두루미는 1999년 80마리의 월동이 확인됐다. 이후 매년 1000마리 이상 서식이 확인되면서 흑두루미의 최대 서식지로 급부상했다.

전봇대는 이명박 정부시절 더욱 부각됐다. 이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영암군 대불산업단지를 방문한 경험을 언급한 바 있다. 트레일러가 지나갈 수 있도록 대불산단 진입을 가로막는 전봇대를 옮겨달라고 요청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 그대로라는 기업의 불만을 전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말이 있은 후 놀랍게도 이 전봇대는 3일 뒤 거짓말처럼 뽑혔다. 이후 ‘전봇대’는 이명박 정부의 규제개혁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역대정부의 ‘규제개혁’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규제’만 하더라도 집권 2년 차인 2009년엔 1만2905개였던 규제 숫자는 2012년 1만4889개로 오히려 15.3%나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개혁’슬로건은 ‘규제 전봇대’로 줄곧 이용됐다.

최근 한국전력이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전국 곳곳에 설치한 전주(전봇대)에 무임 승차한 통신선을 사실상 완전히 제거하기로 결정을 했다. 규제 개혁의 핵심인 ‘전봇대’가 통신업계의 무임승차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한전 기준 통신선이 시설 기준에 미달하거나 안전에 우려된다고 판단된 시정 조치율은 63%(2023년)다. 그러나 시정 조치율은 2019년 84%까지 상승했던 것이 2023년은 63% 수준까지 급감하기 시작했다. 한전이 무단 통신선 일제 정비에 나서게 된 중요한 이유다.

오는 2027년까지 4년간 제거키로 한 무단 가설된 통신선 길이는 지구 한 바퀴 둘레와 맞먹는 약 4만㎞에 달한다. 한전이 자체 파악한 결과 현재 전국적으로 약 1017만개의 전봇대 중 통신선이 설치된 전봇대는 411만개다. 이 중 약 10%에 해당하는 38만개에 통신선이 무단으로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봇대가 아무리 규제개혁의 꼬리표가 붙어있다 한들, 통신사가 말하는 규제 뒤에 소비자가 누려야 할 권리가 우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