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하정웅미술관, 日신문 5·18 아카이빙 전시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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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전남일보]하정웅미술관, 日신문 5·18 아카이빙 전시 ‘눈길’
디아스포라기획전 ‘두드리는 기억’
폭동→민주화 염원으로 논조 변화
카와세 슌지, 현지 관련 기사 수집
아사히신문 등 150점 기사 총망라
  • 입력 : 2024. 03.04(월) 08:45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카와세 슌지 씨.
광주 하정웅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디아스포라 기획전시 ‘두드리는 기억’에서 볼 수 있는 1980년 5월 보도된 일본신문 스크랩 자료.
광주 하정웅미술관(광주시립미술관 분관)이 절찬리에 열고 있는 디아스포라 기획전시 ‘두드리는 기억’에서 옛 일본 신문의 갈무리들이 눈에 띈다. 1980년 5월 당시 일본 주요 일간지에서 보도된 광주 관련 기사를 아카이빙한 전시물이다. 광주에서 해외 5·18민주화운동 관련 보도가 체계적으로 목록화된 것은 처음이라 5·18 기록물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디아스포라 기획전시 주인공은 재일동포 화가 김석출 작가다. 김 작가는 일본에서 1980년 5월 광주의 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한 뒤 20여년간 ‘5월 광주’ 시리즈를 제작한 바 있다. 하정웅미술관은 ‘5월 광주’ 작품과 함께 김석출의 오월예술 세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신문 보도나 연구 서적 등을 선보여 관람객의 이해도를 높이고자 했다.

하정웅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1980년 당시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담은 일본 신문기사 150여 건을 수집했다. 그중 ‘5·18광주민주화운동’ 전후 보도된 자료 중 주요 기사 50여 건을 선별해 전시했다. 신문사로는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이다. 일본 신문기사를 통해 매일 매일의 생생한 보도 내용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본 내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 등을 살필 수 있다.

당시 국내의 언론통제 상황과 달리 일본에서는 뉴스나 신문 보도를 통해 매일매일 상황이 즉각적으로 보도됐다. 비교적 초반의 상황인 5월 18일 즈음 “광주 데모, 폭동의 양상”, “시민, 무기를 빼앗아 시가전” 등 한국 정부의 입장을 보도하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민주화에 뜨거운 염원”, “한국 민주화에 주요한 한 장면” 등 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진보지로 알려진 마이니치 신문은 광주의 상황을 두고 “민주화에 역행하는 한국 정세”, “재일한국인 청년이 말하다…승리를 믿는 학생”, “한국의 유혈 확대를 피하라” 등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논조를 거듭했다. 25일자 기사의 경우 “광주, 조금씩 평정으로…시민들이 새로운 수습위” 보도를 통해 계엄군이 잠시 퇴각한 해방광주의 모습이라던가 “중사가 넘쳐나는 병원”, “목포와 나주로 번시는 시위”, “아들 안고 있는 어머니도 모두 사살…탈출한 일본인”, “이른 새벽 전차 헬레콥터로 급습” 등의 꽤 구체적인 상황 묘사가 이어졌다. 5월 이후 “도쿄에서 광주 제압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는 후속 보도도 눈에 띈다.

위와 같은 자료수집은 일본에서 김석출 작가와 친분을 이어온 저널리스트 카와세 슌지 씨의 도움이 있었다. 지난달 전시 오프닝 행사 참여차 광주를 찾은 슌지 씨는 “1980년 5월 당시 일본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기사를 통해 광주의 상황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기회가 되면 광주에 와서 옛 전남도청 보존문제 등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현안들을 취재해 보도하곤 했다”며 “이번 수집은 그 연장 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자료조사는 6개월간 오사카 국회도서관에서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번 5·18 관련 일본 보도는 연구적으로도 시사할 점이 많다.

홍인화 전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관장은 “일본 일간지에서 보도된 5·18 관련 기사가 체계적으로 목록화된 것은 처음 본다”며 “국내 언론이 통제된 상황에서 광주의 상황이 일본에서 가장 빠르고 자세하게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주재기자로 있던 독일 공영방송 소속 위르겐 힌츠페터는 일본의 보도를 계기로 광주에 왔으며, 이후 광주의 상황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어떻게 자세한 보도가 가능했는지, 관련 보도를 기록물로 관리하고 통신 역할을 했던 유학생·교수·목사 등 인물을 찾아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