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청소년에 속아 술·담배 판매 행정처분 대폭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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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전남일보]청소년에 속아 술·담배 판매 행정처분 대폭 완화
식약처, 법 개정안 입법예고
영업정지 2개월→7일로 줄여
신분증 확인 시 행정처분 면제
3년간 광주·전남 559건 적발
업자들 “억울한 사례 없어야”
  • 입력 : 2024. 03.05(화) 17:49
  •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
#광주 북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52)씨는 가게 앞에 한 취객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손님 3명에 ‘그를 깨워 귀가시키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주취자는 자신을 도우려는 손님들을 폭행하기 시작했고 A씨는 곧장 112에 신고했다. 경찰은 사건 조사를 위한 신원 확인을 진행하던 중 이들 모두 미성년자였음을 밝혀냈다. 청소년들이 보여준 타인의 신분증에 속은 A씨는 이미 소주 10병과 맥주 1병 등을 판매한 상황이었다.

#순천에서 술집을 하는 B(44)씨는 단골 3명이 가게에 들어오자 술과 안주를 제공했다. 그들 옆엔 처음 본 여성이 있어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청해 성인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여성은 본인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의 신분증을 제시한 것이며, 사실은 청소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A씨 등 업주 2명은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판매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아 지난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청소년에 속아 술과 담배 등을 판매했던 업주들이 억울하게 법정에 서는 일이 빈번해지자 정부가 규제 완화에 나섰다. 이를 두고 지역 자영업자들은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 27일 식품위생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청소년 주류 제공 시 행정처분 기준을 영업정지 2개월(1차 위반 기준)에서 7일로 완화하고 행정처분을 과징금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행정조사 단계에서 CCTV, 진술 등으로 영업자가 신분증을 확인한 사실이 증명되면 행정처분은 면제된다.

현행법상 청소년에 술·담배를 판매한 경우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의 대상이 된다. ‘청소년보호법 제58조 제3호’에 따르면 청소년에게 유해약물(주류·담배 등)을 판매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이와 별개로 자영업자는 영업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2차 적발 시 영업정지 3개월, 3차 적발 땐 영업소 폐쇄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관련 행정처분을 받은 광주·전남 영업소는 지난 3년(2020~2023년) 동안 수백 곳에 달한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 시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광주는 △1차 적발 289건 △2차 적발 13건으로 나타났다. 전남은 △1차 적발 246건 △2차 적발 11건으로 집계됐다. 두 지역 모두 3차 적발은 없었다.

기존에도 구제방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식품위생법’ 제75조에는 청소년의 신분증 위·변조 또는 도용 등으로 업자가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경우 행정처분을 면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탓에 행정처분을 면제받은 사례는 같은 기간 광주 15건·전남 24건에 불과했다.

업자들은 정부의 법 개정에 ‘희소식’이라며 반기고 있다.

이날 광주 서구 상무지구 일대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하나같이 ‘필요한 개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5년째 술집 운영중인 양모씨는 “나도 한번 (청소년에게) 당할 뻔했는데 다행히 CCTV에 직원이 신분증을 확인한 게 찍혀 영업정지를 면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며 “소상공인들에겐 하루를 쉬는 것도 큰 타격이다.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청소년에게 속아 오히려 억울한 상황에서 2개월씩이나 영업정지 받게 하는 법은 진작 바뀌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편의점 직원 한소원(28)씨는 “겉으로만 봐도 앳된 얼굴의 청소년들이 종종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들고 담배를 사러 오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데 신분증 속 사진과 비슷하거나 성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헷갈릴 때도 많다. 스스로 성인 여부를 판단하기엔 너무 큰 책임이 부담이었는데, 법이 개정된다니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이기성 광주소상공인연합회장은 “단체 차원에서 꾸준히 정부에 해당 법령 개정을 건의해 왔다. 지역 자영업자들도 이번 개정을 환영하고 있다”며 “술집, 편의점뿐 아니라 노래방에서도 청소년에 속는 사례가 많다. ‘셀프 신고’하겠다며 협박해 돈을 내지 않고 가는 경우도 많다. 같은 법은 아니지만 PC방에서도 심야시간 청소년들이 찾아와 신고하는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해서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