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총선의 계절… 영화 ‘파묘’가 떠올리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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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총선의 계절… 영화 ‘파묘’가 떠올리게 하는 것들
386)유쾌한 풍자 영화 <파묘>
“풍자(諷刺)의 본령은 헐뜯는 것보다는 나무라고 꾸짖는(刺) 것이다. 이 영화가 꾸짖는 지점이 어딘지,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할수록 절묘하고도 유쾌한 영화다. ”
  • 입력 : 2024. 03.14(목) 13:38
우수영 옥매산 쇠말뚝-K스피릿
영화 파묘 한 장면-뉴시스
“사람의 혼을 이루고 있다는 푸른 빛, 죽기 얼마 전에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하는데, 크기는 작은 밥그릇만 하다. 전라지방의 방언.” 국어사전의 혼불에 대한 설명이다. 남자의 혼은 대빗자루 모양의 길고 큰 불덩이고 여자의 혼은 접시 모양의 둥글고 작은 불덩이라고 한다. 이즈음 세간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는 영화 <파묘>에 등장하는 도깨비불이 그것이다. 커다란 횃불이 공중을 휘젓고 날아다닌다. 푸른빛의 밥그릇 크기 도깨비불로는 품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을까? 전반적인 정서는 풍수 관념과 무당굿이다. 일제의 잔재와 강제점유를 풍수 관념에 빗대어 풍자했다고 볼 수 있다. 주지하듯이 주거나 주택을 양택이라 하고 묘지를 음택이라 한다. 무라야마지준(村山智順)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귀신>이나 <조선의 풍수> 등 방대한 양의 민간전승 사례를 수집하여 보고하였다. 고묘법(顧墓法)이라는 항목에서 이렇게 보고한다.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전해진 풍수설(風水說)을 믿고 옛날부터 자손의 운명은 오로지 조상의 유해에 의해 지배되며 또 그 유해는 묻혀있는 묘지의 좋고 나쁨에 영향을 받는다. 묘지의 좋고 나쁨은 땅의 힘(地氣=生氣)을 많이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현상만 보고 그 본질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은 보고자료임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 이런 시선을 비판 없이 수용하거나 혹은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비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줄거리도 대체로 인과적인 서사가 적용되지 않는 황당한 이야기다. 예컨대 아무리 묘를 잘못 썼다고 죽은 조상이 자신의 후손을 해칠 수 있을까? 우리네 가족 관념으로는 전혀 수용할 수 없는 작위적 얼개다. 감독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설정 자체가 일본군 수장의 그것과 뒤섞여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구성이다. 하지만 리얼한 굿판 풍경과 남녀 주인공들의 열연이 영화를 매우 풍성하게 해주었다. 이 영화의 백미나 매력은 일제강점기의 탄압과 도륙의 상기는 물론 쇼킹한 굿판 장면들과 실제를 능가하는 무당 연기력에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파묘>에서 소환한 도깨비불과 쇠말뚝의 오컬트



영화에서 논란 많은 쇠말뚝을 정면으로 다루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명산대천과 한해륙의 허리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설인데, 날조된 이야기라고 결론 비슷하게 정리되던 중이었다. 사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차, 2012년 광복절에 제거된 쇠말뚝을 상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름 2.7cm, 길이 58cm로 변남주 교수와 내가 확인하여 벌인 행사이기도 했다(당시 기사들 참고). 명반석 바위에 쇠말뚝을 박고 석회를 부어 고정하였으며 다시 시멘트로 덮어 위장했던 것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지상으로 5cm가량 노출되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옥매산은 울둘목 연해를 전망할 수 있는 최적의 요새다. 강강술래는 물론 백토설화(흰흙물을 풀어 왜군들에게 쌀뜨물로 보이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승되는 지역이자 명량대첩의 망주봉이라는 점에서 여러 추론이 가능했다. 물론 대다수의 학자들에 의해 부정되었으며 토지조사사업의 삼각점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되었다. 그렇다고 건설 따위의 목적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조사되거나 검증된 것은 아니다. 우리네 무당들이 명산대천이나 명당을 찾아 어떤 일들을 도모하듯이 일본의 음양사 등이 일부 개입했을 개연성을 전혀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시방 누가 혹은 무엇이 영화 <파묘>를 통해 쇠말뚝을 재소환하고 있느냐에 있다. 영화 <건국전쟁> 감독의 언설처럼 좌파들의 소행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우리 시대에 대한 유쾌하고도 명징한 풍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한 풍자일까?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명산대천에 박았다는 철심 이야기가 주제일까? 현 정부의 독도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가 감독의 오컬트 상상력을 추동했을 수도 있다. 포스터에 나타난 한해륙 모양의 지도가 이를 암시한다. 나는 기득권 세력들의 퇴행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데서 영화의 동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얼굴이며 몸이며 온 신체에 글씨를 가득 쓰고 의례를 집행하는 장면을 보며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발바닥에 글씨를 쓰고 이른바 악귀에 대응하는 장면을 보면서 무얼 상상할 수 있을까? 털 벗겨진 제물 돼지들이 묘지를 장식하는 일종의 낯섦에 대한 놀라움, 기괴함에 대한 공포 같은 것보다는, 신체에 무언가를 붙이거나 새기는 일종의 부적(符籍)을 떠올렸을 것이니 말이다. 자현 스님은 『부적의 비밀』에서 한국 부적의 가장 오래된 기록을 후한 시대의 응소(應劭)가 찬술한 『풍속통의(風俗通義)』에서 찾고 있다. 궁통(窮通)의 복숭아나무 패(牌)가 그것이다. 지면상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취임 때 일군의 무리가 복숭아나무 가지를 들고 행진하던 모습이 연상된다. 가와이 쇼코가 쓴 <음양사 해부도감>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섣달 그믐날 추나(追儺, 역귀 쫓는 의례)를 행하는데 오니야라이(鬼追)라 한다. 음양사가 악귀나 역신을 쫓아내는 제문을 읽고 눈이 넷 달린 가면을 쓴 호소씨가 진자를 이끌면서 방패와 창을 부딪쳐 울리며 선택된 귀족이 복숭아나무활로 갈대 화살을 쏘는 의례다. 바지나 의복을 뒤집거나 거꾸로 입는 심리도, 우리네 장독대에 왼새끼줄을 걸고 버선을 거꾸로 매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적을 소지하거나 붙이는 것을 넘어 아예 몸에 그려 넣기도 한다. 눈병이 생기면 발바닥에 천평지평(天平地平)이라는 글씨를 먹물로 쓰면 낫는다고 한다.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뭔가 기대하는 것도 부적의 심리와 맞닿아 있다. 시대정신을 담아 늘 재구성해온 것이 역사요 문화다. 지금 우리시대가 요청하는 시대정신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에 응당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차마 발설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정치인과 고관대작들, 그 부인네들이 유명 무당을 통해 큰 굿판을 벌이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몰염치하고 황당무계한 자들이 정치를 하고 법률을 만들어 집행하며 우리네 목줄을 쥐락펴락한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장삼이사라도 자기중심은 잡고 사는 것이 상식인데, 어리바리하여 중심은커녕 삿된 무당들에게 운세를 맡기는 자들이 어찌 나라의 중심을 세우며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남도인문학팁

영화 <파묘>의 행간 읽기

오컬트 장르의 영화를 두고 굳이 사실관계를 따져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행간과 이면에 숨은 뜻을 읽는 시선이 중요하다. 복숭아나무 행렬을 두고 일본 음양사의 오니야라이를 떠올린다든가, 발바닥에 글씨를 쓰는 악귀퇴치 행위를 보고 윤대통령의 손바닥 글씨를 연상한다든가, 박근혜 대통령 때의 오방낭(五方囊)을 소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풍수사상에 의한 에코 프랜들리, 즉 땅에 대한 존중과 경외의 태도를 상기하는 것이 음택풍수는 물론 양택풍수의 기본 철학임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우리네 음양오행 등 자연친화적 철학을 근간 삼는 전통들이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에 의해 심하게 왜곡되고 희화화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기왕의 네거티브한 풍수 속설을 비판없이 인용한 이 영화에 아쉬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우수한 것은 전면에 등장한 쇠말뚝의 진위보다는 왜 이것들이 소환되는지, 왜 정부는 독도에 대해 불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나라와 국토를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풍자(諷刺)의 본령은 헐뜯는 것보다는 나무라고 꾸짖는(刺) 것이다. 때마침 총선이 있는 시기, 이 영화가 꾸짖는 지점이 어딘지,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할수록 절묘하고도 유쾌한 영화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