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게르니카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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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게르니카의 참상’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4. 03.21(목) 17:05
이용환 논설실장
“그림은 장식이 아니고 무기가 돼야 한다.” 1937년 봄,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에 열중하던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눈물을 흘리며 붓을 내던졌다. 스페인 정부로부터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을 위한 벽화 제작을 의뢰받고 이미지를 구상하던 그는 그 해 4월 26일 조국 스페인에서 일어난 게르니카 폭격의 참상을 지켜본 뒤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모든 도시가 사라지고 사망자의 시신으로 뒤덮인 도로를 보며 절망했던 피카소. 결국 그는 전쟁의 끔찍함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폭력을 세상에 알려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어렵게 작품을 완성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게르니카’다.

흑백의 ‘게르니카’는 강렬한 명암 대비가 특징이다. 불타는 집과 죽음의 상징인 말, 전체주의를 의미하는 황소, 어둡고 치명적인 인간까지 전체적인 분위기도 고통스럽다. 전쟁의 참상을 비판하고,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기 위한 피카소의 마음과 함께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강렬한 메시지도 담겨있다. 혁신적인 화면과 깊은 사유도 뛰어나다. 지금도 게르니카는 ‘미술의 전통적인 관습을 송두리째 바꾸면서 현대 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창조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에도 피카소의 캔버스는 대부분 폭력을 반대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20세기 말, 시민의 목숨을 빼앗는 전쟁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아랑곳하지 않는 독재자를 지켜봤던 그에게 유일한 가치도 평화였다. 당장 ‘게르니카’ 이후 발표한 ‘시체 안치소’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아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1951년 제작한 ‘한국에서의 학살’도 한국전쟁 당시 한국인이 겪었던 슬픔과 분노, 그래서 전쟁에 반대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가 담겼다.

최근 스페인의 한 해변에서 수 백명의 예술가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그린 대형 현수막을 펼치고 팔레스타인 희생자를 애도하는 추모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으로 수만 명의 민간인이 숨지고 기아 위기에 처한 지금의 가자 지구가 게르니카의 참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고통을 강렬하게 표현했던 피카소. 그가 타계한 지 벌써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지구촌 ‘게르니카의 참상’이 안타깝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