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세월호 10주기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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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세월호 10주기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390)세월: 라이프 고즈온
“이 대답은 세계가 찬탄해 마지않았던 촛불혁명의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세월호를 기점 삼아 촉발되었던 촛불의 의미와 실천, 미진한 결과에 대한 성찰 말이다. ”
  • 입력 : 2024. 04.11(목) 13:38
다큐 세월 라이프 고즈온 포스터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봄은 기다림을 몰라서/ 눈치 없이 와 버렸어/ 발자국이 지워진 거리/ 여기 넘어져 있는 나/ 혼자 가네 시간이/ 미안해 말도 없이/ 오늘도 비가 내릴 것 같아/ 흠뻑 젖어버렸네/ 아직도 멈추질 않아/ 저 먹구름보다 빨리 달려가/ 그럼 될 줄 알았는데/ 나 겨우 사람인가 봐/ 몹시 아프네........”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BTS(방탄소년단)의 “라이프 고즈 온” 선율이 온통 머리를 휘젓고 다녔다. 반복되는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엇박자의 발디딤을 유도했던 것일까. 유장한 선율과 절름거리는 리듬과 다시 반복되는 얼터너티브한 가사들 사이로 봄비가 내렸던 것일까. 발길 이끄는 대로 나아가 앉았던 곳이 광주독립영화관이었다. 화면이 열리고 낯선 사람들이, 주물을 찍어내는 기계의 소음들이, 바람에 몸을 맡긴 들풀들이 무심하게 서성이는 장면들이 흘렀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 혼자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온>이 상영되는 시간, 관객도 없는 객석에 눈치 없이 앉아 있었나? 사람들이 무관심하거나 혹은 잊혔거나 아니면 자극적인 풍경이 전혀 활용되지 않은, 어쩌면 내밀하게 의도된 영상들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시종 담담한 인터뷰와 띄엄띄엄 삽입되는 대화들이 마치 어쿠스틱 사운드의 절름거리는 디딤새처럼, 천변의 디딤돌처럼 흐를 뿐이었다. 하필 영화 제목이 ‘라이프 고즈 온’이라니. 2020년에 발매된 이 노래는 코로나19 때문에 만들어졌다. 코로나 시국이 중단시켜버린 일상, 하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곡이었다. 아마도 영화감독은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자세랄까.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말이다. 코로나19만 그러하겠는가. 영화 포스터에는 노란 꽃들이 무성한 정원으로 세 명의 아이들이 뛰노는 장면 위에 선명한 글씨들이 박혀있다. 1999년 6월 30일 수요일 23명, 2003년 2월 18일 화요일 192명,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304명, 세월호뿐 아니라 대구 지하철, 씨랜드 수련원 참사 유가족들의 일상을 조명한 영화라는 뜻이다. 세월호 10주기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월호 10주기, 촛불혁명을 되새김질하는 까닭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100년 같은 세월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는 세월이었을 수 있다. 어느 참사라고 다르랴만 참사 현장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면서 그 충격은 배가되었다. 참사의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진도로 몰려들었다. 각양의 종교 단체들이 팽목항에서 진혼 의례를 진행하였다. 재난에 대응하는 자세랄까, 이를 가장 충실하게 이행한 부류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속집단이었다. 종교가 마땅히 행해야 할 소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진상 규명에 대한 목소리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났다. 급기야 정부를 규탄하는 전국적인 촛불 시위로 이어졌다. 시위가 아니라 운동이었고 혁명이었다. 2014년에서 2017년까지 이어진 박근혜정부 퇴진운동이 그것이다. 마침내 대통령을 탄핵하였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문재인 정부다. 총칼 들지 않고 성공한 촛불혁명을 세계가 주목하였다. 역사적으로 상고하고 문화적으로 분석하는 작업들이 꾸준히 진행되었다. 한국인들의 역량이 널리 회자되었다. 하지만 소명을 펼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도한 일부 검찰들에게 하릴없이 권력을 이양하고 말았다. 세월호 관련 진상 규명이나 대책도 온전하게 이행하지 못했다. 녹슨 채 목포신항에 보존된, 아니 내팽개쳐진 세월호 선박이 이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문득 목포신항을 지나치다가 세월호 선박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기억 속에서 사라진 존재물, 발 동동 구르며 바라봐야만 했던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와 아빠와 아이와 채 수습하지 못한 다섯 명의 어떤 이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선박 이름이 세월호였을까. 그 세월이 흘러 10주기를 맞이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세월호 10주기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그 대답 중의 하나를 다큐멘터리 <세월: 라이프 고즈온>이 말해줬다고 생각한다. 이 대답은 세계가 찬탄해 마지않았던 촛불혁명의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세월호를 기점 삼아 촉발되었던 촛불의 의미와 실천, 미진한 결과에 대한 성찰 말이다. 우리 사회의 참사에 대한 예방과 대책이 작은 범주의 성찰이다. 촛불혁명의 시대적 과제를 상고하고 비전을 설계하는 것이 큰 범주의 성찰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나는 다시 BTS의 노래를 듣는다.

“끝이 보이지 않아/ 출구가 있긴 할까/ 발이 떼지 질 않아, 않아 Oh/ 잠시 두 눈을 감아/ 여기 내 손을 잡아/ 저 미래로 달아나자/ Like an echo in the forest(숲속의 메아리처럼)/ 하루가 돌아오겠지/ 아무 일도 없단 듯이/ Yeah Life goes on(그래 삶은 계속돼)...”



남도인문학팁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하는 법, 촛불 운동의 완성

너 없이 살아가는 법, 이 말은 좀 잔인하다. 너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니.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너를 어찌하면 좋니. 참사 당사자들의 트라우마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머물러 있다. 세월이 간다고 그냥 잊히는 게 아니다. 새록새록 솟아오른다. 상처가 아물려면 피고름이 솟아올라 터지는 과정을 거치는 것과 같다.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이 정부의 대응처럼, 영정도 없이 이름도 없이 그래서 쉬 잊히길 기대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명(共鳴)하는 일이다. 공명을 우리말로 ‘울림’이라 한다.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맞잡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공명이다. 같이 울고 같이 춤추는 것이 공명이다. 핵개인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무관심이다. 잊히는 것이다. 진상 규명과 추모 관련 일들은 더욱 가열차게 이행하되 목포신항의 세월호 선체를 인근 장소로 옮겨 추모 겸 공원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사람들이 찾아보게 만들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기술도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로 딸 예은이를 잃은 유경근씨, 대구 지하철 참사로 딸을 잃은 황명애씨, 씨랜드 수련원 화재로 쌍둥이 딸 둘을 잃은 고석씨가 이구동성 말한다.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사회적 참사의 원인은 무엇일까? 재발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크고 작은 참사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 불가피한 일일까? 물음이 물음을 물고 다시 묻는다. 그 질문은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다. 오늘의 나, 내일의 우리가 참사의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기 때문이다. 근자의 이태원 참사가 이를 명료하게 보여주지 않았나. 마침 새로운 국회의원들이 뽑혔다. 외면하고 피하기만 하는 비루한 정부를 다잡고 온전한 국가 정책들이 마련될 것이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하는 법을 생각한다. 새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에게 바란다. 지난 두 번의 정부에서 손대지 못했던 일부터 실천하기 바란다. 작게는 추모의 일을 완성 시키는 일이다. 크게는 촛불혁명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고자 했던 비전을 되새김질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