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122-2>“10년, 마침표 아닌 참사 재발 방지 시작점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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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122-2>“10년, 마침표 아닌 참사 재발 방지 시작점 돼야”
●세월호 10주기 ②기억하는 사람들
광주시민상주모임 10년 활동
매주 촛불모임·기억순례 계속
이준석 선장 면회 ‘사죄’ 받아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촉구
  • 입력 : 2024. 04.14(일) 18:29
  •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
최근 광주 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활동가 정기열씨가 손목에 착용한 ‘세월호 팔찌’를 가리키고 있다. 강주비 기자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10년 전 진도 병풍도 인근 바다에서 침몰하던 세월호 창가에서 애타게 구조 손짓을 보냈던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녹슨 채 유리창이 떨어져나간 세월호 창가 앞에서 비둘기들이 갇혀있던 희생자의 한을 풀어주듯 자유로운 몸짓으로 비행하고 있다. 김양배 기자
세월호 참사가 10주기를 맞았다. 광주의 평범한 엄마, 아빠였던 이들이 ‘시민 상주’를 자처해 온 지도 벌써 10년째다. ‘같은 부모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시작한 일은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됐다. 이들은 여전히 매주 촛불모임을 하고, 참사 책임자들에게 양심선언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낸다.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상주모임) 이야기다.

최근 상주모임 활동가인 정기열씨와 장헌권 목사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광주 서구 한 카페서 만난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활동가 정기열씨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기억 끌어내는 마중물될 것”

“무엇 하나 해결된 게 없는데 포기할 수 없죠.” 정기열씨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정씨는 지난 10년간 상주모임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쳐온 이들 중 한 명이다.

2014년 6월 결성된 상주모임은 참사 이후 수완·일곡·첨단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실종자 무사 귀환’을 염원하며 촛불을 든 데서 시작됐다. 상주모임은 재판 방청을 위해 광주법원을 방문한 유족들 앞에 200~300명의 ‘사람띠’를 만들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안산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유족들의 ‘십자가 순례’ 중 진도 팽목항 구간을 함께하며 힘을 보탰다.

현재는 금호, 운천 마을에서 매주 월·화요일 오후 7시 1시간씩 촛불모임을 연다. 3~4개월마다 팽목항에 가 부둣가에 설치된 깃발과 현수막을 교체하고,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엔 진도에서 ‘기억 순례’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정씨는 “금호, 운천마을 촛불모임에는 나를 포함해 10명가량이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기억 순례’도 10년 동안 딱 한 번 빼고 매달 진행했다”며 “현재 상주모임 활동가는 총 250명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모임은 체계적인 조직이 아니다. 직함도 없다. 모두 ‘활동가’다”며 “그러다 보니 유연한 운영이 가능하다. 문화제 행사는 문화·예술인이 주도하고, 유족 기자회견 참여 등 서울 상경 일정이 있을 땐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한 이들이 사람을 모아 추진하는 식이다. 상주모임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모임의 본래 명칭은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이었다. 당시만 해도 3년이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사 발생 8년 만에 나온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보고서는 끝내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희생자 구조에 실패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간부 10명은 최근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씨는 이 모든 일련의 일들이 결국 ‘이태원 참사’라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정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의식은 심어졌지만, 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시스템은 아직도 미비하다”며 “시스템 변화와 책임자 처벌이 이뤄졌다면 ‘이태원 참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그렇기에 ‘10년’이라는 숫자가 마침표가 아닌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새로운 논의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감정은 희석돼도 시민들 마음 깊은 곳에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분명 존재한다. 상주모임은 그 기억을 끌어낼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앞으로도 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근 광주 광산구 서정교회에서 만난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활동가 장헌권 목사가 세월호 선원, 선장 등 책임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최근 광주 광산구 서정교회에서 만난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활동가 장헌권 목사가 세월호 선원, 선장 등 책임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 세월호 선원들에 ‘양심고백’ 촉구

서정교회에서 만난 장헌권 목사의 책상에는 노랗게 빛바랜 편지 수십 통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세월호 선원 등 관련자들에 보냈다가 반송됐거나, 그들로부터 받은 답장들이다. 장 목사는 “2014년 10월 1심 선고를 앞둔 선장, 선원들이 법정에서 하지 못한 양심고백을 글로나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며 “첫 편지는 15명에게 보냈는데, 5명은 수취인 거절로 반송됐고 8명은 답장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조타수였던 고 오영석씨와 조기장 전영수씨만 장 목사에게 답장했다. 오씨는 편지를 통해 ‘화물칸 2층 외벽 일부를 천막으로 대체해 물이 유입된 것이 급침몰 원인이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장 목사는 이준석 선장의 면회도 갔다. 2018년 1월 순천교도소에서 첫 면회를 한 이후 7차례 정도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지난달 7일이 선장과의 두 번째 면회가 성사됐다. 장 목사는 “이 선장이 눈이 안 좋아져 편지를 읽고 쓰는 게 힘들다고 했다”며 “사죄하는 말로 본인 잘못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 선장은 면회에서 “큰 죄를 지어서 마음이 매우 아프고,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자다가도 일어나 계속 눈물만 흐른다. 여러 명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며 심경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장 목사는 지난달 30일에도 이 선장을 찾았다. 장 목사는 “7일 면회 당시 ‘잘못했다’고 계속 사죄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야기 하지 않은 게 아쉬웠다. 그래서 ‘잘못한 게 있다면 기도하며 입으로 고백하라’고 또 편지를 보냈다”며 “다시 면회를 가 ‘편지를 봤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고 말했다.

장 목사는 이날 면회에서 △참사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 선장은 당시에 세월호를 어떤 배라고 생각했는지 △이태원 참사의 소식을 알고 있는지 △혼자 무기징역을 받은 게 억울하지 않은지 등을 물었다. 그러나 이 선장은 대부분의 질문에 ‘마음이 너무 힘들어 답할 수 없다’고만 했다.

대화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모두 메모한 장 목사는 “이번에도 그저 ‘잘못해서 떳떳할 수 없다’는 식의 말만 되풀이했다”며 “교도소 안에서 TV를 보지만 뉴스를 보면 마음이 힘들기 때문에 오락 프로그램 같은 것만 본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를 아는지는 정확히 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 목사는 책임자들의 양심선언을 받아낼 때까지 ‘편지’를 계속 쓸 예정이다. 장 목사는 “광주법원에서 진행된 세월호 재판에서 한 유족분이 선장, 선원들에게 쓴 편지를 읽다가 쓰러졌다. 그 처절한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책임자들의 양심고백이 진상규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앞으로도 계속 편지를 보내고 면회를 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