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庭園·임효경>나, 너,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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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庭園·임효경>나, 너, 우리
임효경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4. 05.08(수) 17:30
임효경 완도중 교장
어느새 5월입니다. 하얀 꽃이 대세입니다. 올해 유난히 길가에서 세력을 떨치는 아카시아 꽃이 주렁주렁 달려 창문 좀 열어보라고 유혹합니다. 달짝지근한 향기를 주겠노라고. 창문을 열고 꿀벌들의 존재를 확인해 봅니다. 너무 더워도 너무 추워도 안 되는데…. 안전한 기후 환경 속에서 왕성한 꿀벌들의 앵앵거림으로 아카시아 꿀을 걱정 없이 사 먹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하얀 실 꽃 머리에 인 이팝나무는 장합니다. 늙으신 어머니가 타향에서 돌아 온 자식들에게 지친 몸과 맘 채우라고 고봉으로 담아주시던 하얀 쌀밥이 생각나게 합니다.

5월은 좀 돌아보는 달입니다. 나를 돌아보고, 너를 돌아보고,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는 5월. 완도중도 3월엔 새 학기 준비하느라 휘몰아치듯 분주했습니다. 4월엔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나 힘들다고 딴 짓거리하고, 선생님들도 그러는 너희 밉다고 외치는 소리들로 시끌벅적 난리가 났습니다.

5월이 반갑습니다. 숨과 쉼이 있는 달이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사를 서로 주고받는 달이니까요. 사실은 고마웠다고, 사실은 좋아했다고 서로 고백하라고 법으로 정해진 날들이 있으니까요. 지금은 서로 ‘나’만 주장하고, ‘나’의 고통과 어려움이 제일 크다고 목소리 높이지만, 사실은 ‘너’ 덕분에 여기까지 왔고, ‘너’의 동행 덕분에 이만큼 성장했다고 고마움을 표현할 것이니까요. 가정에서 가족들 간에 서로 그렇게 하겠지만, 학교에서도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그러하지 않을까요? 북한 독재자도 무서워한다는 중2들이 자라가는 과정에서 치고받고 하며 크는 것 아닐까요? 내 자녀만 소중하다고 부모들이 나서서 싸우지 말고, 손잡고 이해하고, 서로 위로해 주는 5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5월, 1학년 자유학기 체험의 날이었습니다. 학교 체육관에 4학급이 다 모여 학급단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학년 4반 활동 차례가 되었는데,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체육관에는 위기를 맞이한 듯, 동물적인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그러나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4반 전체 학생들이 모두 한 아이를 중심으로 빙 둘러 섰습니다. 그 모습은 그 한 아이의 과격한 돌발행동을 막고 그 아이를 보호하려는, 아주 오래 된 습관처럼 보였습니다. 그 한 아이는 자폐장애가 있는 그들의 친구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학교 밖으로 뛰쳐나간 그 아이를 모두 찾아 나서서 데리고 오곤 했다고 합니다.

그 아이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보호해야하지요. 그것을 우리 학생들은 이렇게 보고 실천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그 한 아이로 인해 우리도 배웁니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세상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아침마다 눈 마주침 없이 슬쩍 하이파이브를 하며 잰 걸음으로 교문을 들어서는 그 아이를 보며 나도 아침이 새로웠습니다. 온 우주가 다 함께 조금씩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구나 싶어 세상이 아름다웠거든요.

물론 나를, 그리고 내 가족을 바로 세우는 것이 우리의 지상과제입니다. 그렇다고 나만, 내 가족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우리’ 없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학교는 ‘우리’ 학교이거든요. 학생들이 책가방 들고 학교를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지만 학교에서 엄청 난 것들을 배웁니다. ‘나’를 키우고, 세우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배우지만, ‘너’랑 축구하고, 이야기하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놀면서 때론 싸우고 또 화해를 하고 ‘우리’를 만들어갑니다. 그것이 모여 이 사회를 운행하게 하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이후에도 지속하게 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나만 강조되고 나만 소중한 사회가 나아갈 미래는 암담합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기피하고, 아이는 더 더욱 낳지 않을 것이니까요. 어차피 이 생(生)에 태어났으니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연애, 결혼,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더 이상 고생 안하고, 더 이상 희생도 하고 싶지 않다는 우리 젊은이들. 그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나에겐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마음이 아픕니다. 너무 심한 경쟁 속에서 살아 내느라 애썼구나, 이젠 탈진 상태로 더 이상의 비교와 경쟁을 이겨낼 힘이 없는 것이구나 싶어 그들에게 미안합니다. 나는 어떤 말로 그들을 가르치고, 더 힘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늙어가고 이젠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안간 힘을 써서 ‘나+너=우리’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 젊은 선생님들은 나처럼 시행착오를 하지 않고 학교 교육과정 장면 속에서 소망과 희망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미래 세대들을 우리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고 그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주길 감히 바랍니다. 이 찬란한 5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