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손필영>더 이상 5월이 가정의 달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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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유전자·손필영>더 이상 5월이 가정의 달이 될 수 있을까?
손필영 시인·국민대 교수
  • 입력 : 2024. 05.29(수) 18:04
손필영 교수
어린이들이 잔디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뉴시스
찔레꽃이 날아다니던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있어 만남의 기쁨으로 봄볕처럼 따스했다. 태어나는 아기들이 줄고 인구가 줄면서 여러 가지 착잡한 생각이 든다. 앞으로 30년쯤 뒤에도 이러한 만남이 평범한 즐거움이 될 수 있을까?

최근에 아파트 밀집 지역이 아닌 곳의 초등학교는 입학생이 줄어 폐교 위기에 있는 경우가 많다. 올해 전국 157개 초등학교 신입생이 0명이었다. 아이들이 줄어드는 배경에는 젊은 층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많은 경우 젊은이들의 현실은 불안감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1학년 학생들의 소논문을 쓰는 과제에서 연속적으로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년에는 대학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껴 써서 종잣돈을 모아 졸업과 동시에 집을 사겠다는 학생을 보았다. 그 학생은 재주도 많아 보이는데 인생의 목표가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돈을 모으는 방법과 투자하는 방법에 대해 조사하고 소논문을 썼다. 경제학적 차원의 투자의 개념이 아니라 개인의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저축을 하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이번 학기의 학생은 비트코인과 주식투자로 돈을 모으는 것에 대해 썼다. 아주 작은 투자로 시작했다는 데, 실패 없이 잘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 있게 글의 소재로 선택한 모양이다. 꿈을 가지고 대학을 입학했지만 1학년 학생들의 고민은 취직이고 투자이고 현실적 성공이다. 과거 학생들의 고민과 다른 면을 보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의 세태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실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현실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사적으로 젊은이들과 얘기를 나누면 자신들은 집을 살 수 없을 것 같으니 결혼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또한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으면 자신들의 경제력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얼마 전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지인과 통화를 했는데 출근 시간과 아이 등교 시간이 차이가 나서 돌보는 손길이 필요하고 방과 후에 데려오고 학원 보내는 일도 도와주는 손길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기들만 아니라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칠드런 시터’가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영어와 사고력 증진을 위한 학원에 들어가려면 시험을 봐야 하고 떨어지면 석 달을 기다렸다가 다시 시험을 보고 들어간다고 한다. 학원비도 영어학원은 70만원이고 다른 학원비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이렇게 몇 군데 학원을 다니면서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 고등학교까지 마치려면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아이가 하나일 때도 쉽지 않지만 만약 둘일 경우 부부의 월급 중 한 사람 몫은 오로지 학원비로 지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규직 취업도 어려워 해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누적되고 있다. 국가는 부모수당과 아이 양육비를 지원하고 우유값과 기저귀값도 지급하면서 적극적으로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좀처럼 신생아의 비율은 늘어나지 않고 있다. 과거의 어머니는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면서 생존을 영위했다. 젖이 모자라면 동네 젖동냥을 하기도 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이 우리에게도 현실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젊어서 한창땐/ 우라지오로 다니는 밀수꾼//눈보라에 숨어 국경을 넘나들 때/ 어머니의 등곬에 파묻힌 나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젖먹이와 다름없이/ 얼마나 성가스런 짐짝이었을까

-이용악, <우리의 거리> 부분



함경북도 경성 출신의 월북작가 이용악의 시는 오랜기간 언급되지 않았었다. 그의 시를 보면 당시 한반도 북쪽 끝 마을의 생활상이 잘 드러난다. 그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러시아에서 소금을 밀수출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국수집도 하고 행상을 하면서 어렵게 남매를 키웠다. 그의 살아온 과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면 보편적으로 겪었던 일들이었다. 지난 날에 우리는 엄마 등에 업힌 아기들을 자주 보았었다. ‘어부바’ 소리도 자주 들렸다. 이제는 그러한 모습을 보기 힘들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흘러간다면 업어줄 아이도 없고 그리워할 대상도 없는 미래만 기다릴 것이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는 부르는 것도 내용없는 형식으로만 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