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5주년>“패배에서 시작된 승리”…예술로 여는 '새벽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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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5·18 45주년>“패배에서 시작된 승리”…예술로 여는 '새벽광장'
●소년이 왔다,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
<4>'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
지난해부터 26~27일 5·18광장서
오월영령 추모 위한 예술인 연대
'님아 그 강을…’ 진모영 감독 참여
"대동정신, 광장서 활짝 피어나길"
  • 입력 : 2025. 05.13(화) 18:49
  •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
지난해 5월26~27일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에서 한 예술가가 시민군들을 기리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윤재경 사진작가 제공
“12·3 비상계엄 직후 광장과 국회로 달려 나온 국민들을 보며 느꼈어요. 거대 권력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1980년 5월27일 도청을 지킨 시민군의 용기가 우리 안에 살아 있기 때문이라는 걸요.”

모두가 패배를 직감했던 ‘해방 광주’의 마지막 새벽, 계엄군의 진입을 앞두고 끝까지 전남도청을 지켰던 시민군의 뒷모습은 비극적인 최후로 기억됐다. 그러나 그날의 패배는 허울뿐이던 한국 민주주의가 마침내 본 궤도를 찾아 나아가기 시작한 결정적인 승리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출한 진모영(55) 감독은 바로 그날을 기억하는 예술행사 ‘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을 기획하고 이끄는 인물 중 한명이다. 그는 당시 도청에서 산화한 김동수 열사의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5월26~27일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에서 시민과 예술가들이 오월열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재현하는 행위예술을 펼치고 있다. 윤재경 사진작가 제공
5·18민주화운동이 갖은 오명을 벗고, 그 가치와 진실을 서서히 드러내기까지 지난한 세월 동안, 항쟁의 마지막 날이면 영령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연대하려는 수많은 예술인의 처절한 몸짓이 이어져 왔다.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지난해 처음 열린 ‘새벽광장’은 그런 예술활동을 한데 모아 시민들이 함께 새벽을 맞이하며 기념하자는 뜻으로 새롭게 ‘판’을 깐 자리다.

그는 “마당극 배우 지정남씨가 매년 옛 전남도청에서 극을 올린다는 말을 듣고 나가본 적이 있다. 행방불명된 아들을 기다리는 무당의 이야기를 담은 공연에 모두가 가슴 아파했다”며 “계엄군의 총탄이 쏟아졌던 시각에 맞춰, 수십년간 공연을 열어온 ‘이름 없는 공연팀’의 1인극이 이어졌다. 떠난 이들의 넋을 달래는 진혼극과 닮아 깊은 울림을 주는 공연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100인의 릴레이 그림 등 최후의 날을 기리는 예술인들의 다양한 창작 행위를 지켜보며 더 많은 이가 참여하기를 바랐다”며 “비록 우리가 물리적으로 그날의 시민군과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기억하며 광장을 열고, 지키는 일이야말로 시대를 넘어선 연대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출한 진모영 감독. 진 감독은 광주의 ‘마지막 날’을 기억하는 예술행사 ‘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을 기획한 사람 중 한명이다.
진 감독은 10일간의 항쟁일지 중 5월27일이 가진 상징성과 무게를 거듭 되짚었다. 행사명 역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가 마지막 외신과의 기자회견에서 남긴 ‘우리는 오늘 여기서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라는 말에서 착안했다.

그는 “5월27일은 우리 민주주의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연말부터 이어진 촛불 시민들의 움직임 또한, 그날 시민군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며 “이번 행사는 진정한 역사의 승리는 어떻게 해내는 것인지, 승리한 오늘의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가꿔나가야 하는지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26~27일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에 참여한 시민과 예술가들이 오월열사의 모습을 담은 그림 앞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윤재경 사진작가 제공
올해 행사는 오는 26일 오후 6시부터 27일 오전 6시까지 12시간동안 진행된다. 지난해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던 ‘새벽불 순례팀’은 올해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출발해 도청까지 도보로 행진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열사들의 넋과 함께 민주광장으로 들어서는 장면은 행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이 될 전망이다. 자정 무렵에는 ‘놀이패 신명’과 지정남씨가 준비한 마당극 ‘환생굿’이 기동타격대 동상 앞에서 펼쳐진다. 아울러 오전 4시 ‘침묵의 시간’과 이어지는 ‘부활의 몸짓’, ‘대형 켈리그래피’ 등 어둠을 지나 아침을 여는 모든 순간이 하나의 긴 호흡으로 펼쳐진다. 진 감독은 시민들과 함께한 새벽을 다큐멘터리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매년 항쟁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오히려 희미해지는 게 현실”이라며 “오월의 기억들이 역사화 돼가는 현시점에서 숭고한 하루를 함께 기억하고, 그 의미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행사는 지자체와 기념재단 등의 도움 없이 시민들의 모금과 소액 후원으로만 운영되며, 참여하는 예술인과 스태프들 또한 자원봉사로 함께한다. 오월어머니집을 비롯한 지역 단체들이 보내온 차와 커피, 주먹밥과 음식은 그날의 ‘대동정신’을 그대로 재현할 것으로 보인다.

진모영 감독은 “올해 참가 신청한 ‘광장지기’만 해도 벌써 전국에서 수백명에 이른다. 이는 5·27 최후 항쟁이 5·18민주화운동의 핵심 정신을 온전히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오월을 함께 기억하고 되새기는 대동의 정신, 주먹밥의 정신이 ‘새벽광장’에서 더욱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한다”고 소망을 밝혔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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