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시리즈 ‘광장’의 한 장면. 연합뉴스 |
‘광장’은 배우 소지섭이 처음으로 선택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작품이다. 남성 독자들이 ‘인생작’으로 꼽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받았지만, 막상 지난 6일 뚜껑을 열자 평가는 크게 엇갈렸다.
글로벌 성적은 나쁘지 않지만, 웹툰 팬들은 원작 파괴라며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감독까지 나서 원작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국내와 해외 평점은 ‘극과 극’…새 캐릭터 더하고 ‘광장’ 의미 달라져
콘텐츠 평가 국내 플랫폼 왓챠피디아에서 ‘광장’의 평점은 21일 기준(이하 동일) 2.5점(5점 만점·6천978명 참여)으로, 한국 시리즈 인기 30위에 든 작품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반면, 해외 영화 평점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는 평론가 점수 100%로 만점을 기록했다. 평점을 매긴 이가 5명으로 적기는 하지만, 모두 신선한 이야기라고 평가한 셈이다.
성적도 좋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이달 9∼15일 기준 ‘광장’의 시청 수(시청 시간을 상영 시간으로 나눈 값)는 760만으로, 비영어 TV쇼 가운데 전 세계 이용자가 가장 많이 본 작품으로 꼽혔다.
‘광장’을 향한 평가가 이처럼 극과 극으로 갈리는 이유로는 대폭 각색되면서 웹툰 ‘광장’을 읽었던 원작 팬들이 실망한 점이 꼽힌다.
특히 원작에는 없던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스토리를 뒤튼 것에 대한 반발이 컸다.
시리즈 ‘광장’에는 부패한 경찰이자 모든 일의 흑막인 차영도라는 캐릭터가 추가됐다. 차영도는 양대 폭력조직인 주운과 봉산의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자기 잇속을 챙기는 인물이다.
웹툰에서는 주운과 봉산이 이익을 위해 주인공의 동생을 제거했다. 이와 달리 시리즈에서는 부패한 경찰과 야심 많은 검사, 이들에게 이용당하고 내분을 일으키는 조직폭력배 구도가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원작 속 주인공 남기준과 김춘석, 최성철, 천해범 등으로 이어지는 피보다 진한 의리라는 메시지가 흐려졌다.
무엇보다 ‘광장’이라는 제목이 탄생하게 된 이유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 싸움이 시리즈에서는 대부분 잘려 나갔다.
결과적으로 제목과 주인공 이름, 동생의 죽음으로 복수에 나선다는 서두 빼고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최성은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원작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자고 출발한 것이 아니다. 최대한 원작을 유지하려고 했다”며 “청문회 같다”고 진땀을 훔치기도 했다.
●‘정년이’·‘재벌집 막내아들’도 각색 후 뭇매…원작자 참여하면 호평도
인기 웹툰이나 웹소설을 영상으로 만들었다가 비판에 직면한 것은 ‘광장’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드라마로 만들어진 ‘정년이’는 이른바 ‘여성 서사’의 축을 담당하는 권부용이라는 캐릭터를 삭제해 논란을 불렀다. 그는 웹툰에서는 주인공의 동성 연인이자 국극 ‘쌍탑전설’의 각본가로 나온다.
2022년 화제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진도준이 순양그룹 회장이 되어 복수를 완성하고 자신의 전생인 윤현우가 죽은 곳에서 장례를 치르는 원작의 결말을 따르지 않고 진도준이 죽고 윤현우가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해 원성을 샀다.
웹소설·웹툰과 영상은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드라마나 시리즈물 제작 때 각색은 불가피하다.
원작 팬들의 요구는 캐릭터 한명, 대사 토씨 하나도 바꾸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주제는 유지돼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장’ 원작을 살펴보면 남자들이 꿈꾸는 누아르 장르의 진한 로망이 핵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인공 기준은 광장 싸움에서 승리해 명성을 얻었고, 이 모든 복수극을 마무리 지으면서 또다시 광장 싸움을 요구한다. 무력과 담력 대결로 점철된 처절한 일대일 싸움이 ‘광장’의 핵심으로 꼽힌다.
그러나 넷플릭스 시리즈 ‘광장’에서는 광장 싸움이 과거에 기준이 막강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초반에만 짤막하게 등장시키는 데 그친다.
‘정년이’의 주체적인 여성, ‘재벌집 막내아들’의 시원한 성공담, ‘광장’의 쇠 주먹과 의리 등 원작의 매력 포인트가 영상화 과정에서 퇴색됐기에 비판이 쏟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원작을 잘 이해해서 주제 의식을 살려낸다면 영상화 과정에서 각색을 많이 하더라도 호평받는다.
‘무빙’, ‘조명가게’, ‘D.P’, ‘이태원 클라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은 모두 원작자인 강풀(본명 강도영), 김보통(김호열), 광진(조광진) 작가가 각본에 참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웹툰 원작자가 영상화에 참여하는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태호 작가는 ‘이끼’ 드라마 각본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풀 작가는 ‘무빙’ 시즌2를 집필 중이다.
웹툰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판권만 샀다면, 최근에는 원작자가 직접 참여하지는 않아도 각본 작업을 하면서 (원작자의) 의견을 물어보고,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찬 기자·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