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절반 난방비로…” 없는 이들 더 추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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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수입 절반 난방비로…” 없는 이들 더 추운 겨울
장애인 그룹홈, 월 난방비 30만원
난방기구 사용 못해…그저 버틸 뿐
목욕탕 비용 감당 못해 결국 인상
관계당국 “가스 원재료 값 상승해”
  • 입력 : 2023. 02.02(목) 18:16
  • 정성현·강주비 기자
지난 1일 광주 동구 한 노인정 어르신들은 난방비 폭등에 보일러를 ‘외출’로 맞춰놓고 옷을 껴입은 채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강주비 기자
사상 초유의 ‘난방비 폭등’은 취약계층에 더 가혹한 추위를 선사했다. 최저시급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장애인·노인·저소득층 등은 난방비로 인한 어려움을 직격탄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사는 광주 광산구 ‘엄지공동생활가정’ 입소자들은 요즘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일 방문한 장애인 자립 거주시설인 엄지공동생활가정의 한낮 실내 온도는 ‘21도’. 평소 보일러를 거의 틀지 않지만, 유독 추운 날에는 20~21도 수준으로 맞춰 놓는다.

이들이 보일러 전원을 끄게 된 사정은 몇 달 전 날아온 ‘폭탄 고지서’에 있다. 24평 아파트·4인 가구인 이 가정이 11월 사용한 가스 요금은 ‘30만1920원’. 온갖 후원금을 다 동원해도 한 달 동안 지출할 수 있는 돈이 200만원 수준인 이들에게는 감당하기 버거운 금액이다.

류 원장은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12월부터는 보일러를 아예 끄고 살았다. 씻는 시간에만 잠깐 온수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매일 아이들에게 ‘양말 신어라’, ‘옷 껴입어라’하며 다독였다”며 “요즘은 2명이 한 번에 같이 들어가서 씻게 하는데, ‘인권’을 침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심정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미 식비나 프로그램 비용 등을 긴축한 상황이다. 아직 1월 가스요금은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두렵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광주 광산구 한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인 ‘엄지공동생활가정’ 입소자들이 난방비 폭등에 보일러를 끈 채 옷을 껴입고 생활하고 있다. ‘엄지공동생활가정’ 제공
광주 동구 한 노인정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노인 공공일자리로 월 57만원을 버는 박승효(72)씨는 난방비 대란에 “살기가 버겁다”고 하소연했다. 박씨는 “작년 이맘때 난방비가 4만원 쯤 나왔다. 그런데 올해는 14만원으로 3배 가까이 올랐다”며 “어쩔 수 없이 ‘시베리아 벌판’같은 집에서 보일러 온도를 최대한 낮추고 산다”고 말했다.

그동안 박씨는 매일 오후 노인정에 들러 꽁꽁 언 손발을 겨우 녹였지만, 최근 경로당도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보일러를 ‘외출’로 유지하고 있어 추위를 피할 길이 없다. 노인정 운영비를 관리하는 이신자(80)씨는 “지원금을 늘려준다 해도 오르는 것이 더 크니 아낄 수밖에 없다”며 “노인정에 오는 노인들은 벌이도 변변치 않아 난방비가 오르는 것이 더 무섭다. 요즘 최고로 아껴 살고 있지만 참 힘들다”고 토로했다.

광주 동구 학동의 한 목욕탕에서 손님이 요금 인상 등을 이유로 목욕탕 직원과 이야기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경제 한파의 괴로움은 비단 추위가 전부만이 아니다. 저소득층·노인 등 집에서 목욕을 하기 힘든 취약계층에게는 씻는 것마저 고민거리가 됐다.

지난 1일 동구 학동의 한 목욕탕에서 만난 신연화(69)씨는 목욕 요금을 두고 카운터에서 연신 목욕탕 관계자와 실랑이를 벌였다. 그는 직원에게 “미리 고지도 충분히 하지 않고 짧은 사이 요금을 이렇게 올리면 어떻게 하나. 이곳 단골인데 참 서운하다”고 토로했다.

신씨는 “나이 든 사람들이나 쪽방에 사는 사람들은 한겨울에 (난방비·수도 동파 등으로) 목욕탕을 자주 이용한다. 특히 이곳은 단순히 씻는 것을 넘어 ‘쉼터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예전에는 5000원이던 곳을 8000원 내고 다닌다.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마저도 버텨내기 힘든 가격이다”고 하소연했다.

한국목욕업중앙회 광주지회에 따르면, 올해 광주 목욕업소 178개소의 요금은 기존보다 30% 이상 증가했다. 이는 최근 잇따른 공공요금 인상으로 추후 더욱 상승할 것으로 보여진다.

행정당국은 피해 최소화를 위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은 찾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에너지산업과 관계자는 “가스를 담당하는 해양에너지가 사기업인 만큼, 비용을 할인하거나 행정적 처분 등을 강제하기 어렵다”면서도 “추후 가스사와 만나 이·미용업의 공공요금을 3개월 분납하게 하는 등 가능한 대안들이 있는지 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 학동의 한 목욕탕에 붙여진 요금 인상 안내문. 정성현 기자
정성현·강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