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27-4> '불법 체류자'가 아니라 '미등록 이주민'으로 바꾸어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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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27-4> '불법 체류자'가 아니라 '미등록 이주민'으로 바꾸어 부르자
용어가 정체성을 확정한다.||박흥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장
  • 입력 : 2021. 03.28(일) 17:58
  • 편집에디터

경기도가 도내 외국인 노동자와 이들을 고용한 사업주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렸다. 지난 8일 경기도 안산시 외국인주민지원본부에 마련된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다.

박흥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장

"어떤 사람도 불법이지 않다!" 2015년 5월 광주시에서 열린 세계인권도시포럼 주제회의 '이주민과 인권' 세션에서 들린 외침이다. 세계인권도시포럼에 참여하고 있던 캐나다 토론토시 부시장이 토론 시간 중 참여자가 던진 질문에 대답하며 했던 말이다. 그 현장에는 '이주민 인권'을 주제로 발제하고 토론하는 학자, 전문가, 공무원, 활동가를 포함한 선주민과 이주민 2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사람에게 '불법'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없다고 힘주어 주장하는 모습에서 '이주민 인권'을 거듭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어떤 사람도 불법이지 않다(No human being is illegal)는 표현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며 난민이었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엘리 위젤(Elie Wiesel)이 한 말이다. 사람에게 '불법'이란 수식어를 붙이면 나치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일을 서슴없이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불법 이주민'(illegal immigrant)이란 문장 사용을 중단해 달라는 청원은 미국 대통령을 선출을 위한 유세가 한창이던 2016년에도 중요한 논쟁이었다.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은 그녀 어휘집에서 이 문장을 제거하는데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다. 엘리 위젤(Elie Wiesel)은 씨엔엔(CNN) 기자와 인터뷰에서 "언론은 절대로 '불법 이주민'이란 용어를 사용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대신 '미등록 이주민'(undocumented immigrants)이란 용어 사용을 제안했다. 그런데 사람에게 '불법'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없다는 주장에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 사람에게 '불법'이란 라벨을 붙인다. 학자, 전문가, 정치인, 활동가, 공직자 그리고 언론이 이주민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는지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확진자 증가와 확산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조심하며, 공동체 일원임을 인식하며 산다. 노동으로 이주한 노동이주자나 혼인으로 이주한 혼인이주자를 포함한 이주민은 누구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가끔 만나는 노동이주자나 혼인이주자는 스스로 조심하고 심지어 지나칠 정도로 자기검열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노동이주자나 혼인이주자를 코로나 방역을 함께 실천하는 '동반자'로 인식하기보다 '대상자'로 타자화하기도 한다. 특히 체류 기간이 지난 노동이주자를 '불법 체류자'라 서슴없이 호칭하는 정부 당국이나 언론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코로나19 확진자 가운데 노동이주자가 포함된 후 방역 당국은 코로나19 검사를 노동이주자에게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미등록 이주민'도 코로나19 검사대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발표에는 '불법 체류자'란 용어를 사용했고 언론은 비판적 시각 없이 '불법 체류자'라는 표현을 쓰며 보도했다. 상당수 신문이나 방송 그리고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홈페이지에서도 '불법 체류 외국인'이라고 사용하고 있다. '불법'이라는 라벨을 사람에게 붙일 수 없으며, 어떤 사람도 '불법'이 아니라는 선언을 언제까지 주장하고 강조해야 할지 모르겠다.

광주시는 2012년 광주인권헌장을 선포했다. 인권헌장 전문에서 "우리는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인종, 성별, 연령, 종교, 국적, 출신 지역, 경제적 지위 및 사회적 신분 등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고 정치·경제 사회 문화 환경 등 폭넓은 영역에서 자유롭고 인간다운 공동체의 주인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모든 사람'에 '미등록 이주민'이 포함되길 기대한다. 어휘집에서 '불법 체류자' 혹은 '불법 이주민'이란 단어를 제거하겠다고 말한 미국 대통령 민주당 후보처럼, 우리나라 정치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불법'이란 수식어를 사람에게 붙일 수 없다고 선언하길 기대한다. '불법 체류자'란 호칭 대신에 '미등록 이주민' 혹은 '미등록 체류자'로 바꾸어 부르자. 용어가 정체성을 확정한다. 어떤 사람도 '불법'일 수 없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