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보이는 팔순 어르신 두 명이 골목길을 위태롭게 지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 분의 거동을 통해 의중은 쉽게 간파됐다. 먼저 할머니가 선발 대원이 되어 빙판으로 변한 길중 얼음이 녹은 지점을 일일히 확인한 뒤 길 한 편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남편에게 오라는 손 짓을 하고, 두 손을 부여잡은채 길이 4m, 폭 3m 될 성 싶은 ‘마의 구간’을 벗어났다. 계묘년 새해 벽두인 지난 5일 오전 광주 도심 거리 풍경중 한 장면이다. 지난해 12월 22일부터 24일까지 최심 적설량 40cm 기록한 광주지역이 폭설 후유증으로...
이기수 수석논설위원 kisoo.lee@jnilbo.com2023.01.05 18:12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거나 남의 위세를 빌려 위엄을 부린다는 뜻이다. 오늘날 이 말은 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권위를 빌려 남을 등치는 행위를 비유한다. ‘전국책 초책’ 우화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인 기원전 4세기 초 초나라 선왕 때의 일이다. 당시 초나라는 재상 소해휼이 모든 실권을 쥐고 있었다. 어느날 선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북쪽에 있는 여러 나라들이 우리 소해휼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는데 그게 사실이요?”라고 물었다. 이 때 선왕이 등용한 위나라 출신인 강을이 “그렇지 않습...
최동환 기자 2023.01.04 17:26“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총알이 떨어진 주인공은 프랑스 병사의 가슴팍에 칼을 꽂았다. 죽어가는 그를 바라보던 주인공이 돌연 연민을 느끼며 살려 보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그 병사는 결국 숨을 거둔다. 병사의 군복 안주머니를 뒤져보니 그의 아내와 자녀 사진이 나온다. 그가 인쇄공이었음도 알게 된다. 주인공은 허공에 대고 외친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는 이미 죽은 뒤였다.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반전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1928)’가 최근 세번째 영화...
박간재 기자 2023.01.03 13:28마스크 착용을 바라보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동양에선 방한용이나 보건용으로 마스크를 많이 쓴다. 감염병이나 미세먼지, 꽃가루, 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용도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반면, 서양에선 가면이나 복면, 탈과 같이 인식한다. 얼굴을 가리는 행위로 받아들여져 공공장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면,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를 떠올리게 된다. 또 아프면 직장을 쉬는 문화가 잘 정착돼 있어 범죄자가 아니라면 감염병 환자로 생각한다. ...
김선욱 기자 seonwook.kim@jnilbo.com2023.01.02 13:002023년이 밝았다. 다시 365개의 귀한 선물이 쥐어졌다. 운이 좋다면 사건 사고 없이 이 선물들을 다 까보고 다른 해를 맞이 할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를 돌아보니, 참 할 말이 많다. 세상이 이렇게 쉽게 변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광주시민으로서는 과히 즐겁지 않은 해였다고도 할수 있다. 연초에는 신축 아파트가 무너지는 끔직한 광경을 생생히 목도해야 했고, 뒤이어 정권이 바뀌면서 지역화폐가 날아가 버렸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가뭄으로 제한급수가 코 앞까지 닥쳐왔다. 서울에서는 축제를 즐기려던 사람들이 대거 압사해 사망했...
노병하 기자 2023.01.01 16:51전남도와 한국조폐공사가 지난 19일 전남도청에서 ‘전남행복지역화폐 광역 플랫폼 구축’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은 지역민과 전남을 방문하는 외지인들이 내년부터 모바일 하나의 앱을 통해 전남 22개 시·군 지역사랑상품권을 구매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조폐공사는 2023년 상반기까지 ‘전남행복지역화폐 전용 앱’을 개발한다. 도가 이처럼 조폐공사와 손잡고 전용 앱을 구축하는 것은 지역 화폐의 안정적 정착과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서일 게다.한데 내년 지역 화폐 국비 지원액이 크게 줄어 이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이기수 수석논설위원 kisoo.lee@jnilbo.com2022.12.29 17:042022년 임인년(壬寅年) 한 해도 저물고 이제 곧 새해를 맞는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작’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그래서 새 희망을 품고 다짐을 하게 만드는 한 해의 시작은 더 각별하다. 올해는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나 국가, 지역적으로 격랑에 휩싸인 한 해였다. 사실 올해처럼 다사다난했던 해도 없었던 것 같다. 검은 호랑이의 해, 국민들은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올 한 해 경제 부흥을 기대했지만 3년째 지속된 코로나19의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최권범 경제부장 겸 뉴스콘텐츠부장2022.12.28 13:10크리스마스 기간 전세계를 강타한 폭설과 최강 한파는 영화 ‘투모로우’를 연상시킨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소환되는 이 영화는 지난 2013년부터 캐나다, 미국 북부지역에 영하 20도를 밑도는 강추위가 지속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상 한파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편서풍 제트기류가 약해짐에 따라 시베리아 북부에 머물러 있는 폴라 보텍스가 캐나다와 미국 등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 2021년 12월11일 미국에서 최소 24개 토네이도가 단기간에 다발적으로 발생 중서부 5개주를 휩쓸었는데...
이용규 논설실장2022.12.27 17:34세월 참 빠르다. 일출보러 간다던 게 엊그제 인데 또 그날이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다. 어릴적 아버지가 나이 먹어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얘기해 준 적 있다. "젊을적 나이는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흐르지만 서른이 넘어가면 서른, 마흔, 쉰, 예순으로 10년씩 껑충껑충 뜀박질 한단다." '세월은 쏜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단다'고도 했다. "어떻게 화살보다 빨리 갈 수가 있지?" 깔깔 웃었던 기억도 있다. 열살 남짓 이었으니 이해가 안되는 게 정상이었겠지. 왜 반 백년 지난 지금까지 그 말씀이 기억속에 남아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
박간재 기자2022.12.26 14:51이번주 일요일이 성탄절이다. 국민의 힘이 성탄절과 석가탄신일을 내년부터 대체공휴일 지정 대상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해 실현 여부가 관심사다.정부가 여당의 제안에 대해 긍정적이라하니 내년 성탄절 공휴일은 길어질 것으로 기대된다.성탄절이 결혼기념일과 겹쳐 개인적으로 연중 특별한 날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최근 실린 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이 쓴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호랑가시나무에 관한 글이었다.내용을 인용하면 이렇다. '···상록성의 초록 잎 사이의 빨간 열매가 도드라지는 호랑가시나무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겨울나무' 혹은...
이기수 기자2022.12.22 16:31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12월이 되니 여기저기에서 보내온 달력들이 편집국 책상에 수북하다. 긴하게 쓸만한 달력 하나 챙길 요량으로 뒤적이다 보니 선조들의 '하선동력(夏扇冬曆)' 풍습이 떠오른다. 하선동력은 문자 그대로 여름에는 부채를, 겨울에는 달력을 주고받는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달력은 주로 동지(冬至) 즈음, 천문과 지리 등 기상업무를 관장했던 관상감(觀象監)에서 만들어 배포했다. 옛사람들은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귀한 날로 대접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던 태양이 다시 올라와 낮이 길어지는 만큼 '양(陽)'의 ...
최도철 기자2022.12.21 15:28영국에서 지난 8월 '더는 안된다(enough is enough) 캠페인' 조직이 결성됐다. 우크라이나 전쟁발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위기로 촉발된 생활비 위기에 맞서기 위해 노조, 시민단체, 노동당 하원들이 주도해 결성 한달만에 50만명이 가입하는 호응을 얻었다. 이 캠페인은 분노를 행동으로 전환을 지향하고, 실질적 임금인상 에너지비 인상에 한계둘 것, 배고픔 끝내기, 모두에게 주택, 부자세 부과 등 5가지 목표를 내세웠다. 이 캠페인을 주도한 노동당 자라 술타나 하원의원은 "현재 영국 억만장자 수는 역대 최고이고 회사들의 이익도 역...
이용규 기자2022.12.20 17:32"오직 엄마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19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소개된 이탈리아 동화작가 에드몬드 데아미치스의 '엄마 찾아 3만리'에 나오는 주인공 마르코의 이야기다. 식량과 생필품이 바닥난 이탈리아.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을 정도로 가난했던 마르코는 돈을 벌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떠난 엄마를 찾아 무작정 대서양을 건넌다. 우여곡절 끝에 작은 농장의 가정부로 일하는 엄마와 재회한 마르코. 그가 만난 아르헨티나는 부와 풍요가 넘치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불과 100여 년 전까...
이용환 기자2022.12.19 16:30십이지(十二支) 가운데 네 번째 지지(地支)를 상징하는 영특한 토끼. 한국 설화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동물로 무병장수를 의미하며 달과 함께 자주 등장한다. 달토끼는 사람처럼 두발로 서서 절구공이로 무언가를 찧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약초를 짓이겨 선단(仙丹, 무병장수를 누릴 수 있는 약)으로 만들기 위한 약방아이다. 인간들이 감히 손댈 수 없는 영역, 즉 달에서 불사(不死)의 약을 만들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신선들이 토끼를 달로 올려보낸 게 아닐까 싶다. 토끼 이야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수궁가', ' 별주부전' ...
김성수 기자 sskim@jnilbo.com2022.12.18 16:37'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 흘러오고 흘러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현재의 몸이다.' 작가 김훈의 에세이 '자전거여행'프롤로그에 나오는 문장이다. 두 개의 바퀴가 앞으로 굴러감과 페달을 밟는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것에서 온 몸으로 감지되는 생동감을,그러면서 바퀴가 도달하는 곳마다 새로운 풍경이 들어오는 것이야말로 자전거 여행의 진미임을 현재형 동사들로 적고 있다. 2000년에...
이기수 기자2022.12.15 1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