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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김지하 작고 후, 본지면에 흰그늘의 내력을 썼다(2022. 8. 19). 오늘 다시 소환한다. 먼저 썼던 글을 해체하여 보완한다. 김지하의 흰그늘은 1999년 「율려란 무엇인가」에서 등장한다. 그 이전부터 언급은 있었겠지만, 개념으로 확정한 것은 이때 즈음이다. “중심음 발표하기 이틀 전인데, ‘흰그늘’이라는 말이 자꾸 아른거려요. 이게 뭘까? 그늘의 이중성의 안에서부터 생성되는 무궁 신령한 아름다움, 문채, 무늬야!” 김지하의 『율려란 무엇인가」(1999)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심음’이 이후 내내 김지하가 주...
2023.04.27 15:07신기루(蜃氣樓)의 출처, 초원벨트일까 바다섬일까? 신기루(蜃氣樓)는 공중에 뜬 누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래 아바타 시리즈까지 수많은 영화를 통해 형상화된 이미지들을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고대의 감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학적 상상이다. 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대기 속에서 빛의 굴절 현상에 의해 공중이나 땅 위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그래서 환상적인 일이나 현상 따위를 비유할 때 흔히 사용한다. 북반구 초원벨트에서는 해가 여러 개로 보이는 현상이 빈번하다. 9개 10개까지 보이기도 한다는데...
2023.04.20 15:04누가 나에게 ‘너의 안태 고향이 어디냐?’ 라고 물으면 전남 진도군 지산면 개골 마을이오 하고 대답한다. 안태는 ‘태(胎)’의 남도말이다. 행정명으로는 길은리(吉隱里), 자연마을 이름은 고길리(古吉里)이다. 소포만(灣) 들머리 원둑(堤防)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곳, 1970년대만 해도 골짜기 안쪽까지 모두 천일염 염전이었다. 개골이라는 마을 이름은 갯골(개의 골짜기)이라는 말에서 왔다. 그래서 내 어머니 댁호가 ‘개골네’이다. 잔등(고개) 너머가 ‘용골(龍洞里, 용골짜기)’이고 그 건너편 마을이 ‘원창개(水門, 漕運倉)’와 ‘개들...
2023.04.13 12:51바실홀(Basil Hall)의 조도(鳥島) 정박과 만조해(萬鳥海) “그 외에 우리가 본 네발짐승이라고는 개뿐이었다. 비둘기, 매, 독수리는 있었으나 작은 새들은 거의 없었다. 이곳의 까마귀는 세계 어느 곳보다 많았다. 우리는 아침을 먹기 위해 돌아왔다가 우리가 있는 곳에서 남동쪽으로 몇 리그 떨어진 곳에 있는 높은 섬으로 소풍을 갔다. 상륙하려는 길에 인공으로 된 수평선과 함께 태양의 자오 고도를 보았다. 우리는 그곳의 고도가 북위 34도 22분 39초라는 것을 확인했고, 두 개의 정밀 계기로 측량한 결과 그곳은 동경 126도...
2023.03.30 15:26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1969년에 신중현이 작사 작곡하고 박인수가 부른 노래다. 십수 곡에 이르는 봄비 노래들이 있지만 그중 으뜸이다. 이희우 작사 김희갑 작곡 봄비를 부른 이은하가 서운해하려나. 그래도 근자에 떠오르는 선율은 KBS 불후의 명곡에서 알리가 불렀던 봄비다. 낯설게 말...
2023.03.30 14:28알몸으로 밭에 나가 쟁기질하는 풍속을 나경(裸耕)이라 한다. 주로 입춘에 행하던 풍속이기에 ‘입춘나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정보를 말할 때는 으레 미암 유희춘의 문집 기록이나 농경문 청동기를 인용한다. 제주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 입춘굿도 인용한다. 중국에서 전승되고 있는 목우희(木牛戱)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규태도 여러 지면을 통해 나경 풍속을 언급하였다. 진도지역에도 관련 의례가 있다. 경향신문 이기환 기자가 나경 풍속을 다루면서 진도지역을 언급하였다. 진도에서도 추석 전에 어린이들이 벌거벗고 나이 수대로 밭고랑을 가는...
2023.03.16 16:47발산(鉢山)마을, 지금의 무안군 해제면에 있다. 에 보면 무안군은 백제의 ‘물아혜군(勿阿兮郡, 물아래)’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하였다 했고, 이 군에 속한 현(縣)이 넷이라 했다. 이 중 하나가 해제현이다. 지금의 목포를 포함한 함평, 무안, 신안, 진도 일대를 포함한 서남해 지역을 무안군이 총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발산마을의 역사가 해제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지는 알 수 없다. 전 무안문화원장 백창석에 의하면 17세기 중엽에 입향조가 들어왔을 것이라 한다. 밀양박씨 입향조 박만기가 이 마을에 들어온 연대를 추정하여 말한 것...
2023.03.09 13:49일반적으로 사장구(沙器로 만든 장구), 와고(瓦鼓, 기와장구), 청자장구 등으로 부른다. 활방구, 물방구, 못방구 등이 북(鼓)의 불교적 차용인 법고(法鼓)에서 왔다는 점 지난 칼럼을 통해 밝혀두었다. 장구 또한 맥락이 비슷하다. 긴북이라는 뜻에서 장고(長鼓)라 한다. 장구의 원말이다. 장고(杖鼓)와 장고(長鼓)를 병행해 쓰다가 어느 시기 장고(長鼓)와 우리말 ‘장구’로 정착되었다. 그렇다고 노루(獐)와 개(狗)가죽으로 장구를 설명하는 것은 견강부회다. 따로 시간을 내 설명하겠다. 도자기장구는 울림통을 흙으로 구워 만든 장구다. 진...
2023.03.02 15:59“두리둥퉁 두리둥퉁 쾌갱매 쾌갱매 쾡매 캥, 어럴럴럴 상사뒤여, 어여허 여여루 상사뒤여, 선리건곤(仙李乾坤) 태평시으 도덕 높은 우리 성군, 강구(康衢) 미복(微服) 동요(童謠) 듣던 요님군의 성군일래, 여여어 여여루 상사뒤여 어럴럴럴 상사뒤여~~” 때는 오뉴월 농번(農繁)시절이라, 각댁 머음(머슴)들이 보리밥(麥飯)에 보리술(麥酒)을 마시면서 부잣집 모를 심고 있다. 중 이도령이 과거 급제하여 남원으로 내려오다가 모내기를 하는 일군의 농부들을 만나는 장면이다. 조선 후기 중인층과 양반층의 기호에 맞춰 한자 일색의 풍미로 사설이...
2023.02.23 14:06“한국에서는 근래에 와서야 국가와 중앙에 종속된 지방사 연구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었다. 지리지와 읍지, 지방지 편찬의 오랜 역사가 강고한 지방사의 전통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는 중앙집권적 질서에 대해 의문을 가질 여지가 별로 없었고, 민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결집하되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무시하도록 강요했던 시대적 분위기의 영향도 컸다.” 허영란의 「지방사를 넘어, 지역사로의 전환-한국 근대 지역사 연구의 현황과 새로운 모색」(지방사와 지방문화, 2017)이란 글의 시작 대목이다. 국어사전에는 지방(地方)을 ...
2023.02.16 16:00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라는 가전체(假傳體, 사물을 의인화하는 형식의 문학) 글이 있다. 규중은 여자들이 기거하는 방이다. 칠우는 척부인(尺夫人)-자, 교두(交頭)각시-가위, 세요(細腰)각시-바늘, 청홍각시-실, 감투할미-골무, 인화(引火)낭자-인두, 울(熨)낭자-다리미를 말한다. 주부인이 잠자는 사이 칠우들이 나와 갖은 논쟁을 하다가 끝에 주부인이 이들을 내쫓으려 했지만 감투할미(골무)의 조정으로 무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부인은 수궁가의 별주부를 닮았다. 연대나 작자 미상이지만, 작자가 여자인 점은 분명하다. 「한국문학통...
2023.02.09 15:27‘방구’라 하면 십중팔구 ‘방귀’를 떠올린다.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방귀를 ‘방구’라 하기 때문이다. 한자어로는 방기(放氣)인데, 이런 맥락에서 보면 표준어를 ‘방귀’가 아닌 ‘방구’라 했어야 맞다. 혹시 ‘반고’나 ‘버꾸’의 다른 이름인 ‘방구’와 구별하기 위해서였을까? 실제로 국어사전에서는 ‘방구’를 ‘북처럼 생긴 농악기의 하나’로 설명한다. 자루가 없고 고리가 있어 줄을 꿰어 메고 치는 악기이며, 소리는 소고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루가 있는 방고도 있다. 대개 솜활을 이용해 악기 대용으로 사용하는 ‘활방...
편집에디터 2023.02.02 17:51“땅속 땅갱아지/ 논밭 갈아주고/ 지랭이도 흙을 일궈/ 거름기를 보태네/ 큰 논배미 김매기/ 우랭이가 해결하고/ 무당벌레 야금야금/ 해충 잡기 선수/ 앞뒷산 뻐꾸기도 장단 맞춰/ 호미자루 가볍구나” 무학(無學)의 토종씨앗 지킴이 장흥의 이영동씨가 쓴 시이다. 무학이라니 배운 게 전혀 없다는 뜻일까? 제도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뜻일 뿐, 오히려 그 누구보다 뿌리 깊은 공부가 내면에 들어있는 분이다. 지난해 봄이던가 그의 연구실 겸 자택을 들렀다. 출생에서부터 갖은 고생을 다하며 고향에 뿌리내린 까닭, 농사를 지으며 토종 씨앗을 보존하고...
편집에디터 2023.01.26 16:31“좌우 나졸(邏卒) 금군 모조리 순령(巡令) 일시에 내달아 토끼를 에워쌀 제 진황(秦皇) 만리장성 싸듯, 산양 싸움에 마초 싸듯 첩첩이 둘러싸고 토끼 겹쳐 잡는 거동 영문 출사 도적 싸듯 토끼 두 귀를 꽉 잡고, 이놈 네가 토끼냐? 토끼 기가 막혀 벌렁벌렁 떨며, 토끼 아니오,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개요. 개 같으면 더욱 좋다. 삼복 달음에 너를 잡아 약개장도 좋거니와 네 간을 내어 오계탕 달여 먹고 네 껍질 벗겨내야 잘양 모아 깔게 되면 응혈 내종 혈담에는 만병회춘의 명약이라 이 강아지 몰고 가자~” 김준수가 에 나와 사물놀이패...
편집에디터 2023.01.19 14:53산양(山羊)은 주로 깎아지른 절벽에 등장한다. 바위 이끼, 진달래 등의 잎을 먹기 때문일 것이다. 해발 천 미터 이상의 침엽수림 지대가 서식처다. 북한 쪽에 많이 있다는 뜻인데 남한의 강원도, 경북, 충북 등지의 높은 산에도 서식한다. 자기 영역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지만, 설령 밖으로 나갔다가도 정확하게 제 위치로 돌아온다. 교감의 감각이 발달해있기 때문이다. 벼랑 위에 있는 적을 인지하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각이 계곡의 물을 통해 반대편 산꼭대기에 이른다. 땅과 바다 특히 물에 대한 감각이 최고의 경지에 있다고나 ...
2023.01.12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