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모터바이크 축제1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김현국의 유라시아 탐험기
러시아의 모터바이크 축제1
탐험가 김현국의 “AH6, Trans Eurasia”Series
  • 입력 : 2018. 12.06(목) 10:43
  • 편집에디터

그들은 나를 명예시민이라며 내 몸에 아르세니예프라는 이름을 별명으로 새겨주었다.

환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온 그의 이름은 '세르게이'. 나는 흙탕물로 뒤덮인 상의와 바지를 그가 볼 수 있도록 내밀었다. 그리고 여행자에게 절실한 것이 숙소임을 표현했다. 나의 필요와는 전혀 무관한 것 같은 답변이 그로부터 돌아왔다. 오늘부터 바이크 축제가 열린다며 내가 원하면 그곳에 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축제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자신이 약간 흥분해 있었다. 나는 "그래"라고 맞장구를 치면서도 다시 한 번 숙소가 우선순위임을 전달했다. 그는 내게 텐트가 있냐고 물어왔고 나는 달네레첸스크에서 구입한 방수 침낭으로 그의 시선이 향하도록 제스처를 취했다. 침낭 위에 실린 가방 안에 텐트가 들어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다시 '이 지역에서 열리는 가장 큰 바이크 축제다' 라며 바이크를 타고 온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축제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 된다는 듯이 현재 내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나를 대신해서 판단을 내려주었다. 그곳까지의 거리는 35km 정도 되는 거리라고 말을 이어갔다. 낯선 곳에서 홀로 있는 내가 처음 만난 사람의 말대로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러시아의 바이크 문화에 대해 알고 있었고 1996년에 모터바이크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면서 만난 러시아 사람들에 대해 익숙해져 있었다. 그들의 바이크 축제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가는 것인가'라는 나의 물음에 그는 자신의 보스의 차를 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가 바이커인데 그가 너를 데리러올 수 있는지 전화로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15분 정도가 지나자 호텔 건물의 모퉁이로부터 모터바이크 한 대가 들어왔다. 세르게이와 긴 머리의 바이커는 각자의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그들이 나누는 인사를 통해 서로가 처음만난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르게이의 친구가 바쁜 일이 있어 자신의 동료를 내게 보낸 것이다. 나와도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신뢰가 가는 얼굴이다. 나는 바이커 '이반'의 뒤를 따라 쉽게 시외로 빠져 나왔다. 여름별장들이 무리를 지어있는 곳을 지나 조금 더 달리자 자그마한 아파트촌이 나오고 우리는 이곳의 상점 앞에서 멈추었다. 이반은 페트병 맥주와 만두와 양배추와 감자와 토마토 등의 음식재료를 구입했다. 비용을 분담하려하자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표정을 짓는다. 나는 물 한 병과 아이스크림 두 개를 구입했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잠시 뒤 다시 시동이 걸린 모터바이크를 타고 이십여 분을 달리자 우리는 비포장도로로 들어서게 되었다. 푸른 하늘 아래 뿌연 흙먼지 속을 통과하자 숲과 강 사이의 넓은 공터에 다다랐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백대가 넘어 보이는 모터바이크들은 일렬로 나란히 공터의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반의 바이크는 속력을 줄인 상태로 공터의 가장자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곳에 다다르자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났다. 공터와 숲 사이에는 작은 도랑이 있고 몇 개의 통나무가 도랑을 건널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나무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 숲길로 들어서자 다시 작은 공터가 나왔고 우리의 바이크는 이곳에 세워졌다. 모터바이크 위의 짐을 풀고 이반이 지정해준 자리에 텐트를 세우기 시작했다. 눈을 공격하고자 하는 벌레들이 내 머리 위에 모여든다. 빠른 속도로 세워진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벌레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기장을 쳤다. 짐들을 한쪽으로 몰아놓고 침낭을 펼쳐놓은 다음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갈로 쪽으로 이동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축제장에는 클럽 별로 각 각의 텐트촌이 곳곳에 만들어져 있고 그곳에는 오픈된 방갈로가 한 채씩 있었다. 방갈로 안, 긴 식탁 위에는 보드카와 홍차가 놓여 있었고 마당에는 드럼 통 위에 놓인 커다란 밥솥에서 기름밥(플롭)이 익어가고 있었다. 내가 멈추어 서자마자 벌레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벌레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말과 함께 나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고 그들은 웃으면서 벌레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약을 바르면 된다며 뿌리는 약을 내게 건네주었다. 모기약과 같은 스프레이로 샤워하듯이 몸에 마구 뿌려대자 독한 약 냄새가 코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라리 벌레에게 노출되는 것이 더 낳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름밥이 내 앞에도 놓였다. 그리고 선택의 여지가 없이 보드카 건배 제의가 들어왔다. 여행지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매우 경계해야 할 사항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손님이 주인공이 되어 받게 되는 건배 제의는 어찌 거절할 방법이 없다. 취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다. 먼저 만남의 반가움과 초대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가 담긴 인사말을 건네고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는 술잔을 향해 시선을 주지 않았다.

나를 데려온 이반은 상의를 입지 않은 맨몸의 상태이다. 그의 애인 역시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 차림의 상의를 입고 있다. 이 숲속에서 아담과 이브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연인이다. 러시아 바이커들은 각자의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의 애칭으로 일상에서도 자주 사용되어진다.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말을 듣고 우리는 큰 공터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무대가 세워져 있고 사회자가 올라가 있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지고 록 가수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모터바이크 문화는 1960년대에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1980년 대 초반, 소련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던 록 콘서트에 자주 출몰해 가수들을 구타하던 보수적 청년 폭력집단(류베르이)으로부터 록 가수를 보호하기 위해 모터바이크를 타고 등장하던 시기부터 러시아의 모터바이크 문화가 시작된다. 미국에서 들어온 러시아의 모터바이크 문화는 1989년에 '심야의 늑대'라는 이름을 가진 최초의 바이크 클럽을 만들어낸다. 러시아 일반인들은 바이커들을 록 음악 향유자라고 생각한다. 바이커들의 긴머리(혹은 민머리)와 가죽재킷과 가죽바지, 문신, 거친 은 장신구가 로커들과 비슷하다. 음악이 바이크 족들의 정체성 형성에 많은 역할을 했다. 주류가치에 도전하는 반사회적 행동이 그것이다. 당시 사회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집단인 바이커들에게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러시아 바이크 문화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심야의 늑대'의 강령에는 '우리는 정교회와 우리의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 로고에는 늑대와 성경구절이라는 서로 상이한 기독교문화와 이교도적인 전통이 존재한다. 성경구절은 이들이 러시아정교와 관련 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주류가치였던 소련 시절의 무신론에 대한 저항성을 가진다. 기독교에서 늑대는 선한 양을 물어가는 악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늑대는 기독교문화에 대한 저항성을 가진다. 고대 러시아 사회에서는 청소년기의 남성들이 모성의 공간인 가정을 나와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 혹독한 고문과 같은 의식을 치룬 뒤 성인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들이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 늑대복장으로 무리를 지어 다니며 온갖 일탈 행위를 하고 다녔다. 늑대와 러시아 정교회라는 저항의 키워드가 민족적인 색채를 띠면서 현재 러시아 모터바이크 문화는 대중들의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바이크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참여가 금기시되었던 여성들에게도 바이크 문화가 개방되었다.

러시아에서 만나는 바이커들은 국적과 인종과 종교에 관계없이 모두 형제라고 부르며 이 구호에 합당한 감동과 배려의 행위가 따른다. 록 공연이 끝나자 한국에서 온 나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었다. 무대에 올라 간단히 인사를 하고 '할아버지와 수박'이라는 노래를 약간 거친 목소리로 부르고 내려왔다.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아르세니예프'시에서 온 바이크클럽 멤버들은 모두가 상체를 맨몸으로 노출시키고 있었다. 나는 이들과 더욱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르세니예프는 연해주를 개척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탐험가이다. 나는 그가 펴낸 '타이가에서의 만남'이라는 책을 번역해서 국내에 소개했다. 그들은 나를 명예시민이라며 내 몸에 아르세니예프라는 이름을 별명으로 새겨주었다. 나의 모터바이크에 대한 제원을 듣고서 그들은 역시 바이크에게도 "Goose"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딱딱거리는 바이크의 배기 음이 거위소리를 닮은 것이 그 이유이다. 무대 위에서 내려온 사회자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시선과 몸을 공터 저쪽 끝으로 옮겨가도록 만들었다. 그곳에는 질퍽한 물구덩이와 통나무와 온갖 장애물들이 설치되어 있는 오프로드 코스가 만들어져 있었으며 이미 준비된 바이커들이 이 험난한 구간들을 하나하나 통과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다시 사람들이 이동했고 사회자는 암벽등반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에 서 있었다. 이곳에는 '아담'의 연인인 '이브'도 참여했다. 나의 눈에 상당한 비만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러시아 사람이라면 상당한 순발력이 있듯이 날씬한 여성임에도 상당한 근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라는 커다란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체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둘째 날에는 '러시아1'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방송국에서 촬영이 나왔고 나도 인터뷰에 초대되었다. 나는 2010년에 만들어진 러시아횡단도로의 완성으로 한국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에 이르는 길을 모터바이크로도 달릴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을 했다. 이 길로 인해 분단된 남과 북이 하나의 길로 연결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겼다. 하바롭스크로부터 4천km 거리의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온 제니스는 내가 앞으로 달려갈 방향에서 만나게 될 도시들의 바이크클럽 멤버에 대한 연락처를 내게 전달해 주었다. 자신이 담근 술(사마곤)이라며 그 맛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저녁부터 다시 록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삼십분 정도 지나자 천둥소리가 났고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텐트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비가 들어오지 않도록 덮개를 씌우고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기온이 상당히 내려갔고 추위가 느껴져 비가 내리는 텐트 밖으로 나가지 않고 침낭 위에 누웠다. 계속 내리는 비와 추위에도 불구하고 음악과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이른 아침까지 날을 새워 이어졌으며 나는 잠들었다가 깨었다가를 반복하며 누워 있었다. 삼일 째 되는 날 아침, 나는 '아무르의 시라소니'라는 이름을 가진 바이크 클럽 회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점심시간 이후부터 사람들이 일어났으며 텐트가 철거되기 시작했다. 모터바이크 위에 모든 짐이 올라가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블라고베셴스크'라는 도시에서 온 바이커 부부와 함께 짝이 되었다. 앞서서 달리는 그들의 모터바이크 뒤를 따라 하바롭스크 시내로 다시 들어왔으며 우리는 '아무르의 시라소니' 클럽이 있는 회장의 집에 도착했다.

이념보다는 바이크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성들에게도 러시아의 바이크문화가 열리게 되었다- 멋진 포즈의 여성 바이커

'아무르의 시라소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하바롭스크의 모터바이크 클럽 회장. 연륜이 느껴지는 모습에서 멋이 느껴진다.

'러시아1' 방송과의 인터뷰- 2010년, 러시아횡단도로의 완성으로 한국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의 길이 열렸다. 이로 인해 분단된 남과 북의 길이 하나로 연결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겼다.

크라스노야르스크로부터 4천km를 달려온 제니스. 내가 달려갈 지역의 바이크 클럽 멤버에 대한 연락처를 노트에 남겨 주고 있다.

축제에서 모터바이크를 통해 선보이는 묘기가 기다리고 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