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차퍼(Chopper), 막심과 함께 달리다1- 러시아의 지방도로와 연방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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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국의 유라시아 탐험기
러시안 차퍼(Chopper), 막심과 함께 달리다1- 러시아의 지방도로와 연방도로
  • 입력 : 2019. 03.14(목) 13:02
  • 편집에디터

김현국의 ❲AH6, 트랜스 유라시아 2014❳

한국과 러시아를 일정 기간 오고가는데 비자가 필요 없다는 사실과 한국에서 발급받은 국제운전면허증으로 러시아에서도 운전할 수 있다는 내용의 러시아어가 나의 입을 통해 러시아 경찰에게 전달 된 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나의 여권이 내게 되돌아왔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이런 경우는 드문 일이다. 11개의 시차를 가진 커다란 땅과 180개 이상의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대륙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러시아라는 나라는 경찰의 권위에 무척 많은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지는 월급은 많지 않았다.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부족한 돈은 그들에게 주어진 힘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러시아 경찰은 뇌물이라는 것이 러시아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러시아 사람들이나 '러시아를 안다'라고 말하는 여행자들은 러시아의 교통경찰(ДПС-데뻬에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다이쩨 므네 빠잘루스타 스또 돌라롭" 이라고. 이 말의 의미는 "백달러 내세요"이다. 일단 러시아 경찰의 검문에 걸리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이유가 만들어지고 결국은 그의 주머니가 여행자의 돈으로 채워지게 된다. 1996년에 러시아를 모터바이크로 횡단하면서 검문을 통해 만났던 어느 경찰은 처음 보는 나에게 "친구"라는 말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러시아에서 현지 경찰의 권위를 알게 된 여행자에게는 상대방의 프로포즈에 대해 거절할 권리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순식간에 친구가 되었고 서로 다른 의미의 미소가 오가자마자 경찰로부터 자신의 가족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와 친구가 된 오늘이 자신의 아내의 서른두 번째 생일이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나는 그에게 적당한 선물을 현금으로 주어야 했다. 이런 것 외에도 러시아 경찰들은 많은 이야기를 여행자에게 만들어 주었다.

오늘처럼 쉽게 그리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러시아 경찰에게서 풀려나오게 된 것은 비자나 운전면허증에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다.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비자가 필요 없을 만큼 서로 가까운 친구 사이임이 나의 입과 진지한 표정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내 옆에서 함께 있음으로 힘이 되어 주었던 러시아 바이커들이 그 이유이다.

다시 모터바이크에 시동이 걸리고 '블라고베셴스크'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 막심과 함께 도심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막심이 시내에서 그에게 필요한 어떤 일을 보고 다시 왔던 길(P461번 도로)로 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가던 그의 바이크는 시내 어느 곳에서도 멈추어지지 않았다. 러시아를 횡단하는 연방도로와 만나기 위해 막심이 선택한 길은 제야 강을 따라 북상하는 루트(P468)였다. 이 길은 '블라고베셴스크'에서 152km 거리에 있는 '스보보드니'를 거쳐 러시아횡단도로와 연결되는 지방도로이다. 시 외곽의 주유소에서 막심과 함께 각자의 모터바이크에 연료를 채워 넣고 한참을 달리자 손가락으로 모터바이크의 진동이 심하게 느껴져 왔다. 주유 전에 끼고 있었던 장갑을 어느 곳에 벗어 놓았을까 하고 나는 달리는 모터바이크 위에서 맨손을 바라보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막심은 바이크에 시동이 걸리자마자 거의 최대한의 속력으로 순식간에 저만큼 앞서서 달려나갔다. 그리고 러시아의 다른 모터 바이커들 처럼 빠른 속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나는 그의 속력에 맞추기 위해 반복해서 액셀을 당겨댔다. 계기판의 바늘이 올라갈수록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바이크의 진동을 잘 흡수해주는 장갑의 필요가 분명해져 갔지만 장갑을 어디에 놓아두었는지에 대해서는 떠오르지 않았다. 장갑에 대한 나의 생각은 더 적극적이 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등 뒤의 짐들을 하나하나 기억으로 뒤져보았지만, 여전히 생각이 나지 않았고, 나는 '주유소의 주유기 위에 올려놓고 그냥 출발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아쉬운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장갑은 러시아에 들어와 분실하게 된 최초의 물건이었다. 빽빽한 잡목 숲 사이로 난 한가롭고 구불구불한 평지의 길을 달리면서 몇 개의 시골 마을을 지나고 '제야' 강을 힐끔힐끔 보면서 나란히 달리다가 다시 잡목 숲길을 만나자 '스보보드니'라는 이름이 새겨진 표지판이 눈 안으로 들어왔다. 스보보드니는 우리에게는 '자유시'라고 불렸던 곳이다. 1921년 6월28일, 사할린의용군이 러시아 적(볼셰비키)군의 집중공격을 받고 쓰러진 곳으로 우리에게는 자유시참변으로 알려져 있다.

이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쳐 35킬로미터 정도를 더 달려 나가자 러시아횡단(연방)도로 P297(M58)가 나타났다.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스보보드니'를 거쳐 러시아횡단도로를 만나기까지 180㎞를 쉬지 않고 달려 2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모터바이크로 달리기에 불편함이 없는 러시아의 옛길을 따라 지방도를 마음껏 달려보는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 쭉 뻗어 있는 연방도로의 시원한 길을 만나자 막심의 모터바이크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35㎞를 더 달려 나가자 러시아 우주계획의 선구자이자 로켓과학자인 '치올콥스키'의 이름을 딴 자그마한 도시를 지나게 되었다.

큰 길을 만나 안정된 도로 상태를 확인한 나탈랴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사진기를 꺼내어 들었다. 막심의 등 뒤에 앉아서 그녀가 조준한 카메라의 초점은 결국, 모터바이크를 타고 달리고 있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치올콥스키로부터 53킬로미터를 더 달려 나가자 도로의 공사구간이 시작되었다. 공사 중인 대륙횡단도로를 우회하는 자그마한 길로 연결이 되었고 우리는 이 길을 따라 '쉬마놉스크'라는 자그마한 도시를 통과하게 되었다. 대륙횡단도로를 벗어나면 러시아의 길은 대부분이 비포장도로이다. 도심 안에는 곳곳에 포트 홀과 흙먼지 길이 이어졌다. 뿌연 먼지 속에서 막심은 길을 잃었다. 그의 모터바이크의 속력이 줄어들면서 우리는 서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작은 도시를 벗어나 다시 포장되어 있는 대륙횡단도로와 만나자마자 서로 간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나는 도로 위에서 표지판이 나오거나 인상적인 풍경을 만날 때면 모터바이크를 반복적으로 멈추고서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기록을 위해서는 멈추어진 모터바이크가 한쪽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양쪽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텨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핼맷을 벗고 눈앞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플라스틱 쉴드에 기스가 나지 않도록 모터바이크의 적당한 곳에 걸어놓는다. 10초 혹은 길어야 1분 정도 걸리는 사진 촬영을 위해 빠른 속력으로 달리는 바이크를 순간적으로 멈추고,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헬멧을 벗고 앞에 놓인 배낭을 열어 사진기를 꺼내고 촬영 후에 다시 집어넣는 행위를 온종일 반복하는 것은 무척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막심은 자신의 모터바이크를 멈추고 어디에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기다리지 말고 계속 달리라는 나의 말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모터바이크의 계기판 바깥쪽으로 설치된 바람막이에 의지해 머리와 자세를 낮추고 속력을 높였다. 일차적으로 바람을 걸러주는 바람막이 때문에 핼맷 안에서 느끼는 소음이 현저하게 줄었다. 나는 다시, 달리는 모터바이크 위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과정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의 모터바이크의 속력이 높아지고 막심과 나란히 달리게 되자 우리에게 대형트럭들이 추월당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바람벽을 달고 달리는 거대한 트럭이 두려웠다. 바람벽에 밀려 모터바이크가 순간적으로 기우뚱거리거나 옆으로 밀려날 때면 깜짝 놀라면서 속력을 줄였다. 그 사이 막심의 모터바이크는 앞서서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아직도 나는 러시아의 도로나 모터바이크에 적응되지 않은 상태였다. 속도를 더욱 줄여 도로 옆으로 만들어져있는 공터에 모터바이크를 멈추고 바이크에 실린 짐을 살펴보았다. 가끔 보이는 공터에는 화물 트럭이나 자동차에 이상이 있을 때, 차체 밑으로 들어가 긴급 정비할 수 있도록 차를 올려놓을 수 있는 구조물이 있었다. 바이크의 짐을 다시 고정하고 출발하려는 순간에 커다란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차의 창문이 열리면서 중년의 남자 얼굴이 내 눈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내게 "네가 '킴'이니"라고 부르며 확인했다.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는 나의 질문에 트럭 운전사는 내게 살짝 화를 내듯이 말을 이어갔다. 막심이 너에 대해 걱정하면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너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화물트럭운전사인 자신을 통해 막심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위치에 대한 소식을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50㎞를 앞서가고 있는 막심과의 거리를 알려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출발하려는 나에게 그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암스테르담이 목적지라는 말을 전했다. 다시 육로를 통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돌아올 것이라는 말에 그는 호감을 보인다. 러시아의 바이커 중에 트럭 운전사들이 많다. 당연히 도로 위를 달리면서 트럭과 모터바이크가 서로를 위협하거나 경쟁하는 경우가 러시아에서는 거의 없다. "안녕하시오"라는 예상 밖의 한국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놀랍고 반가운 표정으로 나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보내자 그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에 한국인이 많다며 '시베르 카레이쯔'(북한사람)들이 벌목과 광산에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일하고 있는 곳은 '틴다'라는 곳이다. 야쿠츠크로 이어지는 교차로가 있는 스코보로디노에서 190km 거리에 있는 울창한 침엽수림 지대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러시아의 길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트럭운전사들이다. 지역별로 반경 3,000km 정도의 이동 거리를 가지고 매일 달리기 때문에 도로 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 환하다고 보면 된다. 그는 북한에서 파견한 해외 근로자들이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3,000km의 '치타'까지 진출해 있다고 나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이곳에서 100km쯤 되는 곳에 트럭운전사를 위한 숙소와 음식 있는 카페가 있다는 말까지 덧붙여 주었다. 모터바이크에 먼저 시동이 걸렸고 조금 늦게 출발할 것이라는 트럭운전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주유소에서 받은 영수증에 주행거리를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다. 현재까지 527km를 달려왔다. 계속되는 야영과 콘테이너에서의 불편한 잠자리와 부족한 수면으로 인해 몸이 몹시 피곤했다. 트럭 운전사가 가르켜 준 따뜻한 잠자리의 숙소를 상상해보지만 오늘 나는, 막심과 나탈랴와 함께 야영을 하기로 했다. 아마도 막심은 나를 기다리면서 적당한 야영장소를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상체와 헬멧을 쓰고 있는 머리를 바이크의 바람막이 아래로 내려 모터바이크의 속력을 높였다.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제야강을 따라 치올콥스키까지 올라가는 지방도로 P468

막심과의 라이딩 1일 차-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스코보로디노까지 630km

한적한 시골 길가에서 만나는 정비소- 자동차 타이어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쉬노몬타쥐'와 차량견인과 관련되어 있는 '에바쿠아토르'가 건물에 새겨져 있다. 러시아 횡단도로의 포장율이 높아지면서 펑크와 관련된 단어들은 줄어들고 차량견인과 관련된 단어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정비소 내부

P468 지방도로를 벗어나 다시 만난 P297러시아연방도로- P297 혹은 M58도로는 하바롭스크에서 치타까지 약 2,200km 구간을 의미한다

주유소-2010년, 러시아연방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차량의 이동량이 늘어나고 자동차 물류회사가 등장했다.

'펙'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동차 물류회사

주유소 직원- 카운터 위에 가솔린의 옥탄가와 가격이 적혀있다

현지인들이 길 위의 상점에 내어놓는 지역의 물건들

길을 달리다보면 불에 탄 숲의 흔적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산불 예방과 관련된 이미지

주유하는 아가씨

도로 공사 중임을 알리는 표지판

시골 식당의 인상 좋은 여인들

여행자의 식사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