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미술의 눈으로 사진 예술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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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동시대미술의 눈으로 사진 예술을 바라보다.
  • 입력 : 2019. 05.14(화) 16:28
  • 편집에디터

전북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Gelatin Silver Print 50.8×60.96cm 1997

전남 강진군 대구면 Gelatin Silver Print 60.96×50.8cm 1991

DramaSet_Camera Obscura_#6_130x87_Inkjet print_2017 (1)

DramaSet_Camera Obscura_#8_87x130_Inkjet print_2017

VacantRoom_Camera Obscura_3번방-나주시 중앙동 114-2_inkjet print_50×76cm_2015

현재 우리 지역에서 진행되는 <오상조 사진전>과 <조현택 사진전>을 통해 오늘날 사진 예술이 우리 세상을 포착해내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미술과 사진이 동시대 미술과 사진으로 발전하는 데 서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이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다가가는 두 가지 방식 – 역사성의 포착과 이미지의 합성

광주시립사진전시관 <오상조 – 설화의 풍경>전 2019.3.2. - 5. 26.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잃어버린 대상을 찾아서 – 그리고 상실은 욕망이 된다>전

2019. 3. 30 – 6. 26.

서구에서 미술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된 것은 19세기 사진의 등장에서 비롯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은 실물과 같이 생생하게 그리는 것이 목표였다. 미술이 이와는 다른 목표를 찾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진의 등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의 등장이 '보이는 세계의 정복'이라는 르네상스 이후 600년간의 서구 미술의 목표를 해체시켜버렸다. 그 이후의 현대미술가들은 미술이라는 활동이 새롭게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말하면 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고민의 결과가 현대미술의 양태이다. 현대미술가는 결국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창안하여 미적 세계를 제시하거나, 혹은 세상을 새롭게 보도록 유도하려고 했다.

현대미술 패러다임에서 동시대미술 패러다임으로 변화한 것도 어느 정도는 사진 복제 기술 덕분이다. 사진 복제 덕분에 동일한 이미지가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컨대 코카콜라 이미지를 복제한 앤디 워홀의 <코카콜라> 작품은 실제 코카콜라 이미지와 시각적으로 동일하지만, 두 이미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슈퍼마켓의 코카콜라와 달리, 앤디 워홀의 <코카콜라> 작품은 미국 소비사회의 풍요로움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제가 기술적으로 자유로운 오늘날에는 미적인 스타일의 창안이 아니라 자신의 주제에 적합한 매체와 스타일을 찾는 것이 핵심 문제가 된다. 이것은 후에 언급하겠지만 동시대 사진 예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진이 미술 패러다임의 변화에 영향력 행사한 것처럼 미술도 사진을 바라보는 시각에 커다란 변화를 야기했다. 19세기에 눈에 보이는 세계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발명된 사진은 현실의 정확한 기록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이 되기를 꿈꾸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사진은 미술이 18세기에 했던 것처럼, 예술로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게 된다. 그 시도는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사진 매체의 순수성과 고유성을 주장함으로써 사진 예술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방식이다. 역사적 혹은 개인적인 기록이라는 측면을 배제하고 오로지 사진 이미지의 형식적 요소를 강조하여 사진 예술로서 위상을 주장하는 방법이었다. 다른 하나는 사진만이 줄 수 있는 재현의 특성을 강조하는 방식이었다. 사진의 대표적인 특징인 '왜곡 없는 현실 재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사진 예술의 위상을 주장하는 방법이었다.

한국에서는 후자의 방식으로 사진 예술의 위상을 주장하였다. 1960년 이후 사진 예술은 미술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으로 사진만이 제공할 수 있는 '왜곡 없는 현실의 재현' 속에서 그 지위를 확보하려고 했다. 이때의 사진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스트레이트 포토'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80년대 중반까지 대세로 이어졌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사회구조의 변화, 이에 따른 산업화와 전통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실을 포착해내려는 시도가 주를 이루었다.

80년대 후반 이후에는 사진의 새로운 시도가 등장한다. 현실의 사실적 재현보다는 자아 표현에 중점을 둔 사진 작품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들은 합성 사진 또는 콜라주 기법 등 다양한 기법을 이용하여 세상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이 출현하게 된 배경은 동시대미술 패러다임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진 이미지 자체는 물감, 돌, 흙 등과 같은 전통적 매체와 마찬가지로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효과적인 매체로 이용된다. 90년대 후반에 이르면 사진 예술로서 독자성을 지키려는 폐쇄적인 태도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 이제는 회화이든 사진이든 세상과 소통하려는 매체 중 하나가 되며, 이 매체들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지의 문제는 소통의 적합성에 달려있다.

1990년대와 2010년대에 각각 활발히 작업한 오상조 작가와 조현택 작가는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사진 매체를 이용하고 있다. 두 작가의 공통점을 이야기하자면, 두 작가 모두 비가시적인 존재에 효과적으로 다가가는 수단으로 사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상조 작가는 스트레이트 기법을 이용하여 특정 지역의 유구함과 역사성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고, 조현택 작가는 사진이미지의 합성을 통해 지나간 과거의 소중함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오상조 작가는 여러 지역에 남아있는 당산나무, 향토 유물, 불상 등 우리 문화의 상징들을 흑백 사진 이미지로 포착한다. 그의 작업은 시대와 역사의 기록 작업이면서, 동시에 이것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보여주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인 <당산나무 시리즈>에서 당산나무는 그 마을의 구심점이자 그 구성원들의 희망의 집약체라는 점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해당 피사체를 배치한다. 당산나무를 전경에 놓고, 당산나무의 줄기 아래에 마을을 멀리 위치시킴으로써 그 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오상조 작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화면의 배치와 명암 등을 세심하게 조정하여 그 지역의 고유한 역사성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현택 작가는 부재하는 과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외부의 빛을 이용하고 있다. 그는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자신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는 오래된 빈방을 이용하여 커다란 '카메라 옵스큐라'(암상자)를 만든다. 바깥의 풍경이 작은 구멍의 통해 빈방에 거꾸로 투사된다. 작가는 빈 방에 거꾸로 투사된 이미지를 사진기로 찍어서 그 이미지를 바로 고정시킨다. 옵스큐라 이미지는 사진기처럼 현재의 순간을 고정시킨다는 은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빈방에 옵스큐라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은 곧 사라질 빈방에서 보이는 과거 흔적과 현재 순간이 중첩되면서, 감상자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 존재와 부재의 의미를 성찰하도록 만들고 있다. 두 작가의 사진 작업은 사진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이를 통해 자신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른 동시대미술과 동일한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민한 (조선대학교 교수, 미학)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