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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단오떡

게재 2020-06-24 13:00:01

민경숙 명인의 의례음식 상차림
민경숙 명인의 의례음식 상차림

오월 오일 수릿날 아침에

"오월(五月) 오일(五日)애 아으 수릿날 아약(藥)은 즈믄  장존(長存)샬 약(藥)이라 밥노이다 아으 동동다리"

저 유명한 고려가요 월령가 <동동>의 '오월령' 대목이다. "오월이면 오일에/ 아 수리날 아침 먹는 약술은/ 천년을 길이 사실/ 약이라 드리옵니다/ 아으 동동다리"로 풀이한다. 많은 사람들이 단오를 설명할 때 인용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단오를 '수리날'이라 불렀음을 알 수 있는 자료다. 왜 단오가 수릿날인가? 이에 대해 명료한 답변을 해준 사람은 아직 없는 듯하다. 수많은 설들이 있을 뿐이다. '수리'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독수리다. 참수리, 흰꼬리수리, 검독수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몸이 크고 힘이 세며 끝이 굽은 부리와 굵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다. 하늘 높이 날기 때문에 '높다'라는 뜻을 포함한다. '정수리', '수리봉' 등의 호명이 이를 말해준다. 김선풍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을 집필하면서 고(高), 상(上), 봉(峰), 신(神)을 의미하는 옛말로 풀이해두었다. 산봉우리든 신격이든 모두 높다는 뜻이므로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의 '수리'와 통한다. 수릿날을 신의 날(神日) 혹은 상일(上日)이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또 빈번하게 인용하는 자료가 삼국유사 문무왕 법민조다. 단오를 민간에서 '술의(戌衣)날'이라 했다는 기록 때문이다. '술의'와 '수리'가 발음상 비슷하다. 같은 어원을 가진 말일까? '술의'가 우리말로 달구지라는 뜻이라는데, 단오에 만들어 먹는 수리치떡이 달구지의 바퀴처럼 생겼다 해서 생긴 말이라 한다. 좀 궁색한 설명으로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오의 출처를 여기에서 찾기 때문에 특별한 이설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백설기떡에서 수리치떡까지

수리치 혹은 수리취떡의 본말은 술의취고(戌衣翠糕)다. 떡에 박은 떡살무늬가 수레바퀴 모양을 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술의'가 달구지를 '취'가 푸른색이라는 뜻이니 바퀴모양을 한 푸른색의 떡이다. 이를 차륜병(車輪餠), 수리떡, 단오떡 등으로 부른다. 고(糕)는 치거나 빚어서 만든 가루떡 혹은 가루를 반죽하여 엿물을 바른 밤톨만한 떡을 말한다. <규합총서>의 백설고(白雪餻) 설명을 보면 깨끗하게 씻은 멥쌀 한 되, 찹쌀 한 되, 안약초, 연육, 검인 넉 냥을 곱게 가루로 만들고 사탕가루 한 근 반을 섞어 찌면 극히 아름답고 이롭다 하였다. 시루떡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백시리, 흰무리를 뜻하는 백설기의 출처가 고(糕, 餻)등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겠다. 하지만 '고' 보다는 일반적으로 '병(餠)'이란 용례가 많다. 어쨌든 수리치떡의 '취고'가 푸른색의 떡이니 백설기와는 의미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어린아이 삼일상에 흰쌀밥과 미역국, 백설기만 올린다. 생명의 탄생과 흰색의 순수 혹은 순결을 뜻하기 때문이다. 삼칠일 동안 금줄을 치고 산모와 아이를 보호하거나 백일의 백설기를 가족끼리만 나누어먹는 풍속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백일이나 돌이 되면 푸른색의 나물을 올리고 백설기 외에 붉은 팥고물 찰수수경단, 오색송편 등을 만든다. 비로소 떡에 색깔을 입히고 오방의 의미들을 부여하기 때문이니 순수에서 복잡한 세상으로 나온다는 뜻이겠다. 단오의 수리치떡에서 푸른색을 주목할 이유가 여기 있는 듯하다. 푸른 잎 창포물에 머리를 감거나 멱을 감는 이유 말이다. 신윤복의 그림 '단오풍정'이 이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창포잎이 칼날처럼 생겨서 나쁜 것을 몰아내고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재액초복(災厄招福)의 절기 뜻도 있으려니와 남자들이 창포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니거나 여자들이 비녀 대신 꽂고 다녔던 풍속의 출처이기도 하다. 그런데 남도지역에서는 수리취보다는 쑥이나 모싯잎, 익모초 등의 용례가 많다. 왜 그럴까?

논농사 권역의 추석과 밭농사 권역의 단오

설날, 단오, 추석을 삼대명절이라 하고 한식을 포함해 4대명절이라 한다. 단오가 그만큼 중요한 명절이란 뜻이겠다. 흔히 단오의 유래를 굴원(BC 343~278)으로 해석한다. 초나라 왕이 굴원의 간언을 무시하고 진나라에 들어가 죽임을 당하자 양쯔강 멱라수에 몸을 던졌다는 고사에서 비롯한다. 굴원의 시신을 물고기가 먹지 못하게 '쭝쯔(粽子, 종려나무 잎에 싸서 만든 떡)'를 만들어 강에 던지던 풍속이 전래되었다나. 중국에서는 지금도 단오의 대표음식이다. 댓잎이나 갈대잎을 삼각형으로 만들어 찹쌀밥을 싸고 붉은 대추, 팥소, 고기 등을 넣어 찐 찹쌀떡이다. 일본도 치마키(ちまき)나 떡갈나무에 찰떡을 싼 '가시와모치(柏餅)'가 있다. 모두 굴원을 기리기 위해 먹는 단오절 풍속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우리는 단옷날 수리취떡을 해 먹는다. 굳이 굴원을 들먹이지 않고도 우리 나름의 전통과 풍속을 해명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로 한정해서 말한다면 단오는 북쪽에서 발생하거나 확대된 명절이다. 남쪽 지방의 추석에 견주어 내가 해석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단오가 음력 5월 5일이니 밀, 보리 등의 밭농사 수확기와 겹친다. 추석은 벼농사 수확기와 겹치니 쌀농사 권역에서 발생해 확대된 명절이다. 쌀과 밀보리를 주식 삼았던 남도지역의 환경을 연상해보라. 밀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를 하는 이모작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가. 모내기를 마치고 나선 풍경을 근간삼아 단오를 해석하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법성포 단오제의 맥락을 허투루 삼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고대로부터 대표명절이 되었으니 유네스코에 지정된 강릉단오제에 견주어 모자람이 없다. 다만 절기의 출처를 해명한다는 뜻이다. 개취, 떡취, 산우방(山牛蒡) 등으로 불리는 수리취의 출처를 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과문하여서인지 남도지역에서 수리취를 재배한다는 정보는 접하지 못했다. 대신 사용하는 쑥과 모싯잎, 익모초 등의 유래가 더 깊기 때문이다. 영광을 중심으로 전국화된 모싯잎떡이 그 한 증거일까?

단옷날 쑥떡 찌고 천년주를 빚어보리

고려가요 동동의 가사 중 단오에 만들어 먹는 술과 음식은 주로 쑥과 익모초 등으로 해석한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쑥이 대표적일 것이다. 단오뿐만이 아니다. <지봉유설>에 송사(宋史)를 빌어 말하기를, 삼월 삼짓날(上巳日)에 청애병(靑艾餠)을 으뜸가는 음식으로 삼는데 이것은 어린 쑥잎을 쌀가루에 섞어서 찐 떡이라 했다. 푸른 쑥떡이니 푸른색을 모토삼은 수릿날의 떡으로도 안성맞춤이다. 단오를 중오절(重午節), 천중절, 오월절, 단양절이라고 하는 것은 양의 기운이 가장 왕성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음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절기가 동지다. 태양을 토대 삼는 24절기에서 하지가 대칭되지만 단오 또한 동지에 대응하는 절기다. 달을 토대 삼는 삭망(초하루와 보름) 절기와 더불어 삼짓날, 단오, 칠석, 중구절 등 홀수가 겹친 절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도 유사하다. 각각의 날에 그 절기에 합당한 떡을 만들어 조상들을 기억하고 후손들의 미래를 염원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특히 쑥은 재액의 상징으로 여겼던 식물이다. 남도의 씻김굿에서 맑은물, 향물, 쑥물로 망자의 혼을 씻는 의례도 이 재액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위장병, 소염, 지혈, 설사예방 등에도 약효가 높다는 점 불문가지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나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유두(流頭)도 단오와 흡사한 절기다. 남도 출신이라 그런지 내 어렸을 때만 해도 단오보다는 유두, 백중이 설날과 추석에 못지않은 명절이었는데 이제는 그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시대가 되었다. 단오에는 여러 약초를 넣어 만든 청량제 제호탕을 만들어 먹거나 옥추단을 만들어 허리에 꿰어 차고 다니기도 하고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는 '나무시집보내기'를 한다. 연인의 입술을 상기시키는 앵두로 화채를 만들기도 하고 창포물을 이용해 술을 빚기도 한다. 단오를 맞아 고려가요 동동을 떠올렸던 이유랄까. 수릿날 아침에 먹는 떡과 술이 천년을 장존할 약이라지 않았는가? 수리치떡이라 호명되는 모싯잎이나 쑥떡이 그 약일 것이요 창포물 풀어 빚은 술이 이른바 천년주이지 않겠는가. 소망컨대 영광의 모싯잎떡처럼 불로장생의 천년주를 빚을 이 누구 없을까?

남도인문학팁

광주시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 민경숙, 뭉그리떡에서 의례음식장까지

"살아생전 밥상의 멸치 한 마리가 죽어 받는 명태 열 마리보다 낫다." 화순 능주 여흥 민씨 민영대의 이야기다. 시와 예문에 능했던 민씨가 시절음식을 중하게 생각하고, 각양의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집안에 떡과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했던 배경에는 여흥민씨가의 여자들이 있다. 어머니 정귀례(1924)의 법통을 이은 민경숙(1960, 광주시무형문화재 제17호), 수릿날의 쑥떡과 고려가요 동동의 천년주를 생각하다가 민경숙 명인을 만나 할아버지 민영대와 선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뭉그리떡 얘기부터 시작했다. 뱃사람들이나 일꾼들이 새벽에 일을 나가기 위해 만들어먹는 일종의 버무린 떡, 경기충청도의 예로 말하면 '해장떡'이다. 일종의 주먹밥 같은 뭉그리떡 얘기를 들어보니 고고학 유물 등에서 시루가 발굴되는 이유를 알겠다. 쌀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밥과 떡을 주식삼은 조리법의 역사가 매우 흥미롭다. 시루에 찌기만 했겠는가. 치기도 하고 지지기도 하며 삶기도 하는 떡의 종류가 헤아리기 어렵다. 시루떡, 떡살문양을 새긴 절편, 화전, 경단 등이 그 중 하나다. 떡의 역사만 다루어도 책 몇 권이 부족할 것이다. 민경숙 명인이 외할아버지의 음식 법통을 잇게 된 것은 시댁 광산김씨가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통과의례 음식과 궁중음식을 익히고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남도음식을 선양했던 또 하나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출산 전후 삼신상(三神床)은 물론 백일상, 돌상, 생일상, 책례(책거리 음식), 관례(성년례), 혼례, 폐백, 이바지, 회갑상, 상례, 사잣상, 노제상, 제례상 등 활동해 온 전시가 즐비하다. 통과의례 음식, 이바지음식, 시절음식, 저장음식, 보약음식, 떡을 비롯해 전통주까지 다루는 범주가 광범위하다. 음식조리와 진설의 전통뿐만 아니라 관련 의례와 풍속들까지 꿰고 있다. 한 예만 소개한다. 생일날이 되면 시루구멍 메우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떡을 두 시루 찐다. 왜일까? 동네앞 점앞으로 '돈돌메'라는 개울이 흐른다. 조그만 뗏목을 만들어 떡시루를 올려 이 개울물에 떠내려 보낸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무탈하고 무병장수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쫑쯔라는 단오떡을 만들어 강물에 던지는 중국의 전통을 굳이 예증삼지 않더라도 이 헌식(獻食)이 기능하는 바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잡귀잡신뿐만 아니라 배고픈 이들에게 당도하였을 나눔의 정신이랄까. 아마도 화순지역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공생의 철학이 여기 베어들어 있지 않겠는가. 민경숙의 음식에는 갖가지 재료와 치장과 기능들 외에 이런 면면한 전통이 들어있다. 그래서다. 백종원이 종횡무진하듯 우리 전통음식에도 이제는 스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혹시 아는가? 광주에서 고려가요 동동의 천년주를 만들어낼지. 민씨가 만든 창포주를 맛볼 수 있는 날이 있으려나. 젊은 나이에 광주시지정 무형문화재가 된 민경숙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민경숙 명인이 만든 단오 제호탕
민경숙 명인이 만든 단오 제호탕
민경숙 명인이 만든 송편
민경숙 명인이 만든 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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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례음식장 민경숙
남도의례음식장 민경숙
남도의례음식장 민경숙2
남도의례음식장 민경숙2
민경숙 명인의 꽃장식떡
민경숙 명인의 꽃장식떡
민경숙 명인의 시루떡
민경숙 명인의 시루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