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예술위해 내려놓았던 수인목판화, 지역사랑으로 다시 작업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미술
진정한 예술위해 내려놓았던 수인목판화, 지역사랑으로 다시 작업
광주 유일 수인판화 전문가 김상연 작가||7월부터 부산에서 초대전||수인판화는 동양판화의 진수
  • 입력 : 2020. 06.30(화) 17:40
  • 박상지 기자

김상연 작가가 1998년 작업한 초기 수인목판화 '봄봄'

수십번의 수정을 거친 후에야 스케치가 완성이 된다. 이번에는 스케치를 옮길 목판을 고를 차례다. 합판에서 원목, 돌배나무, 은행나무까지 목판 종류만 해도 수십가지. 목판 종류를 결정함에 있어 판화 에디션과 명암, 채도 등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가령 적은 수의 판화를 찍어낼 계획이라면 은행나무는 적당치 않다. 무르고 거친 특성 때문이다. 돌배나무는 쇠처럼 단단해 머리카락 굵기까지 음각이 가능하다. 기술적인 부분이 필요하거나 무늬를 내야 할땐 은행나무만한게 없다.

목판재료를 선택하고 나면 다음에는 판화를 찍어낼 종이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서양종이, 동양종이, 켄트지, 화선지 등 종이의 종류는 목판을 능가한다. 종이는 단단할수록 거칠단다. 그래서 순지는 거칠다. 하지만 펄프가 섞이면 부드러운 느낌을 낼 수 있다. 맑은 느낌을 표현할 때는 물을 잘 흡수하는 섬유질이 함유된 종이를 사용해야 하지만 순지의 함량이 높으면 습도 없이도 표현이 가능하다.

이름부터 생소한 수인목판화는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생소한 분야다. 제작과정이 까다로운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재료의 속성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오하이펑이 중국 수인목판화의 대가라고 한다면, 국내에는 김상연 작가가 유일하다.

전남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김상연 작가가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동양인으로 동양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는 철학을 예술적 조형언어로서 표현해 낼 방법을 찾고있었다. 심양 노신대학에서 현대 수인판화를 1년간 배운 후 다시 중국미술학원(구 절강미술학원)에서 습인 수인판화를 공부했다. 당시 중국미술계의 상황은 개방과 더불어 서양미술을 급속도로 받아들이고 전통적 방식을 무시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전통 수인판화는 어려운 기술과 습득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중국 내부에서 조차 사라져가고있는 판화기법이었다. 운좋게 그는 전통 기술자에게 2년동안 각과 찍는기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습인 수인판화 수업은 동양인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동양적 세계관을 조형화시키는 방법을 익히게 해주었어요. 중국유학은 동양인의 사고와 인식을 어떻게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무엇보다도 광주정신을 어떻게 재해석해 내고 발현시킬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주었죠. 중국유학 후 현대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유럽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이미 동양철학 안에서 현대미술까지 다 볼 수 있었거든요. "

귀국 후 광주신세계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수인목판화를 선보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작품이 판매가 되자 그는 이후 수인목판화를 하지 않았다.

"부유해지고 싶었다면 이후 계속해서 수인목판화를 했을꺼에요. 저는 수인목판화 작가로 알려졌겠죠. 그렇게 되는게 두려웠습니다. 저는 예술가로 살고싶었거든요. 예술가로서 창조, 창작을 하고 싶지 그 잉여물을 재활용 하고싶진 않았어요."

2002년 광주신세계갤러리 전시 이후 그의 수인목판화를 지역에서 감상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이후 김 작가는 지속적으로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국내외에 이름을 알리면서도 그의 정체성은 특정 장르로 모아지지 않는다. 이런 그가 다시 수인목판화를 작업하게 된 것은 지역을 향한 애정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을 작품과 상품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이곳으로 여행 온 이들의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싶어 광주, 전남 곳곳을 수인목판화에 담았습니다."

김상연 작가의 수인목판화 작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구석구석과 소쇄원, 운주사 등 광주전남 곳곳을 담아 부산으로 간다. 2일부터 31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카린갤러리에서는 김상연 작가의 개인전 '생활지음'이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김 작가의 최근작 수인목판화 뿐 아니라 그간 꾸준히 창작했 온 조각, 설치작품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또 수인목판화의 원리를 한국적으로 발전시킨 수인회화 작품도 전시된다.

박남희 평론가는 "작가는 판화, 사진, 회화의 보이는 기술적 경계를 허물고 본질적 사유에 직관하는 통로를 만들고자 수인회화를 수도없이 시도했다"면서 "물과 종이로 이뤄내는 입체적 존재감은 독특하다. 예민한 대기의 감각들이 그의 손끝에서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감각기개의 평온을 찾는다"고 평론했다.

김상연 작가가 2020년 작업한 수인목판화 '아시아문화전당'

김상연 작가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