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매미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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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매미에 대한 명상
  • 입력 : 2020. 07.15(수) 16:35
  • 편집에디터

김인관, 유선도《화훼초충화권축》중, 지본수묵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는 매미가 큰 나무에 앉은 듯한 느낌이었다. 또 공중으로 내던져진 고무공 같은 느낌이기도 했었지. 하루에는 몸집이 클 뿐 아니라, 마음도 시원시원한 여자였다." 후루야마 고마오의 매미의 추억(セミの追憶) 중 '프레오8의 새벽'의 한 대목이다. 소설의 화자가 하루코라는 위안부와 하룻밤을 지내며 안았을 때의 감정을 묘사했다. 큰 나무에 앉은 매미 혹은 공중으로 내던져진 고무공 등의 묘사를 포함해 제목 '매미의 추억'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연구자들이 채 읽어내지 못하는 행간의 의미들 속에 혹시 매미의 거듭남 같은 은유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위안부 하루코의 잃어버린 조국과 이차대전이라는 환경 속에서 마치 카프카의 벌레처럼 도륙당하고 버림받은 실존의 문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올 수도 없는 절대적인 고독 따위에 대한 전복이나 갱생 말이다. 하루코라는 캐릭터로 대신하고 있는 위안부들의 삶을 카프카의 벌레 혹은 이미 죽어 나무에 매달린 '오쟁이쌈' 같은 주검에 비유할 수 있다면 왜 이 이야기의 제목을 매미로 삼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매미는 이런 우화(羽化) 후의 탈피와 껍질에 대한 지극한 은유들로 가득 차 있다.

왕의 모자 익선관(翼善冠)과 매미의 오덕(五德)

그래서였을 것이다. 예로부터 매미의 오덕을 칭송해온 이유 말이다. 중국 진나라 육운이 늦가을 매미를 주제로 쓴 한선부(寒蟬賦)에 나오는 내용이다. 일덕(一德)은 매미의 머리가 관(冠)의 끈이 늘어진 형상(形象)이니 배움의 문(文)이 있다 한다. 이덕(二德)은 매미가 오로지 맑은 이슬만 먹고 살기에 깨끗함의 청(淸)이 있다 한다. 삼덕(三德)은 매미는 사람이 먹는 곡식(穀食)을 먹지 않기에 청렴함의 렴(廉)이 있다 한다. 사덕(四德)은 다른 벌레들처럼 굳이 집을 짓지 않고 나무에서 사니 검소함의 검(儉)이 있다 한다. 오덕(五德)은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고 틀림없이 울며 절도(節度)를 지키니 믿음의 신(信)이 있다 한다. 우리나라 또한 '문, 청, 렴, 검, 신'의 매미 오덕을 군자의 도리로 삼고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의 덕목으로 삼았다. 벼슬아치들이나 조정의 신하들, 심지어 임금까지도 곤룡포로 정장할 때는 익선관(翼善冠)을 썼다. 만 원짜리 지폐 세종대왕의 모자도 익선관이다. 이를 매미관이라고 하는 까닭은 이 관모의 출처를 매미로 삼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동방의 소공이라 호명되는 방촌 황희가 받은 시호 '익성(翼成)'도 단순한 새의 날개가 아니라 매미의 오덕과 연결된 일종의 매미의 날개로 해석해야 맞다. 매미 나아가 그 날개가 어쨌기에 오덕을 가진 곤충으로 추앙되거나 임금이 쓰는 모자로 상징되었던 것일까? 고려시대 왕의 상복 오사모(烏紗帽)에서 조선시대 익선관까지 비교해 생각해보면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진나라 육운은 여러 가지 특성을 들어 다섯 가지의 덕이 있다 하였지만 그 기저에는 재생이라는 모티프가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역사 이래 하고많은 생물들 중에서 육신을 온전히 벗어내고 다시 태어나는 곤충에 주목해 온 이유가 여기 있지 않겠는가. 어디 매미뿐이겠는가, 재생과 영생에 대한 상징들은 이런 매개물들을 통하여 권좌의 욕망과 불사(不死)의 염원을 이어왔던 것이다.

오래된 기다림의 끝, 찰나 같은 지상의 삶

매미의 일생에 대해서는 수많은 정보들이 넘친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간추리기 힘들만큼 다양한 정보들을 갖고 있기도 하다. 대개 3년에서 17년까지 땅 속에서 준비를 했다가 땅위로 올라와 고작 보름에서 한 달을 살고 죽는다는 설명이 주류다. 정보의 출처에 따라 달리 나타나지만 지구에는 대략 3,000여 종에서 4만 여종이 넘는 매미가 산다. 우리나라에는 940여 종의 매미가 알려져 있다. 참매미와 유자매미는 약 5년을 주기로 땅에서 나온다. 미국의 남부 매미는 7년에서 13년, 미국 중서부의 매미는 17년을 주기로 땅에서 나온다. 땅으로 나온 수컷 매미는 암컷과 짝짓기를 하고나서 죽고 암컷은 알을 낳고 죽는다. 그 기간이 열흘 혹은 보름에서 한 달이다. 우리나라 말매미의 경우 6년여를 땅속에서 기다리다 지상에 오르면 고작 10여일을 살다가 죽는다는 보고가 있다. 적게는 3년, 많게는 17년을 캄캄한 땅 속에서 이른바 다시 태어날 날을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종족 보존을 위한 전술이 이들의 진화를 결정하였을 것으로 설명한다. 천적으로부터 생명을 보존하는 패턴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3대에 걸쳐 대륙과 바다를 여행하는 나비는 물론 7년여를 인내하고 준비했다가 비로소 지상에 오르는 죽순과도 다를 바 없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 그리 울고 여름 내내 천둥장마의 비바람을 견뎌야 하는 문학적 수사가 달리 회자되었겠나.

매미의 일생, 탈바꿈이라는 낱말의 시작

어미 매미가 나뭇가지 구멍에 알을 낳는다. 알들은 몇 주 후 애벌레로 부화하여 땅으로 내려간다. 땅 속 40㎝ 정도에 구멍을 파고 자리를 잡으면 나무뿌리의 액을 빨아먹으며 길고 긴 기다림의 잠을 잔다. 매미들은 인고의 시간 동안 지상의 날들에 대해 어떤 꿈들을 꾸는 것일까? 어미와 아비 매미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흙 속에서 애벌레가 되어 지상의 나무로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지상의 시간이 길지 않음을 수억 년의 기억 속에 상속해왔을 것이니 한순간이라도 허투루 보내지 않을 것이다. 말매미의 경우 나무로 기어 올라가면 3시간 만에 탈바꿈을 한다. 먼저 머리와 가슴이 빠져나오고 다리를 빼낸다. 이어 굳은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날개가 커지고 몸에서 검은 빛이 나타난다. 벗어놓은 허물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알맹이 벌레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옛 사람들이 매미의 탈바꿈한 허물을 보고 무엇을 상상하였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거의 온전하고 완벽하게 자신을 벗어던지는 형국이랄까. 그래서다. 나는 매미의 탈바꿈을 비로소 죽어 다시 태어나는 의례라고 풀이해왔다. 초분과 진도지역의 '오쟁이쌈'에 매미를 비유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온전히 자신을 죽이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 완벽하게 자신의 형상을 벗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매미 허물을 뜻하는 다양한 이름들, 선태, 조갑, 선각, 고선, 조료퇴피, 선퇴각, 금우아, 즐즐피, 최미충각, 즐즐후피, 즐즐피, 지료피, 열피, 마아조피 등을 주목한다. 성질이 차서 두드러기, 경풍 따위의 한약재로 쓴다. 일반적으로는 매미허물, 매미껍질 등으로 부른다. 이 중 선퇴(蟬退)나 선의(蟬衣)라는 이름이 흥미롭다. 모두 우화(羽化)한 껍질을 설명하는 방식인데, 매미가 탈바꿈할 때 벗은 허물, 매미가 벗어놓은 옷이라는 뜻이니 우화(寓話)이고 은유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선의(蟬衣), 아프락사스의 새인가 선녀의 옷인가

매미의 우화(羽化)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이다. 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되는 것을 우화라 한다.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는 일을 우화등선이라 한다. ≪진서(晉書)≫의 <허매전(許邁傳)>에 나오는 말이다. 벌레에 날개가 돋으니 날개돋이요 껍질을 온전히 벗어놓으니 탈바꿈이다. 허물을 벗고 나오는 것이 갱생이고 거듭남이며 재생이고 부활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비유해 말하면 번데기의 성충은 물론이요, 하늘로 올라가는 신선이 다르지 않다. 본디 먼지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니 말이다. 날개를 가졌으니 창공을 나는 새요, 하늘로 날아오르니 솟대 위의 인신가교(人神架橋) 곧 신조(神鳥)다. 매미가 껍질을 벗고 날개를 달기 위해서 많게는 17년을 기다려야하지만 온전히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자신을 죽여야 한다. 매미가 벗어던진 옷, 매미의 허물이 온전한 그의 형상 그대로임을 주목하는 이유다. 수년 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문구가 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전해준 쪽지 말이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헤르만헤세의 소설을 통해 익숙해진 신의 이름, 아프락사스의 새를 진도 관매도 해송숲의 오쟁이에 덧입혀 소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껍데기, 그 병을 깨고 날아오르는 선의(蟬衣), 선녀의 날개옷을 주목했을 사람들을 묵상한다.

남도인문학팁

진도지방의 오쟁이쌈

진도지역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죽으면 '오쟁이쌈'을 했다. 졸저 ??산자와 죽은자의 축제??(민속원, 2018. 3)에 소개했던 풍장(風葬)의 한 내용이다. 2017년 본지를 통해서도 언급하였으나 보완해두고 공부자료로 삼는다. 초분(草墳, 二次葬制의 하나)과 관련지어 해석하고자 했다. 오쟁이는 짚으로 엮어 만든 작은 '섬'을 말한다. 아이의 주검을 오쟁이 안에 담아 해안의 장송가지에 매달아두는 장례법이다. 일종의 풍장(風葬)이다. 이를 진도지역에서는 '오쟁이쌈'이라고 했다. 왜 오쟁이에 담아서 육중한 해송의 가지에 걸어두었던 것일까? 이것은 왜 초분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진다. 여태껏 사람들에게 물어왔다. 하지만 속 시원하게 답변을 해주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는 망자가 초분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그것뿐일까? 그렇다면 망자는 왜 초분해주기를 원했을까? 나는 오랫동안 주검 처리하는 예법과 방식들에 대해 특히 아이들의 주검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주목해왔다. 아이들의 경우 항아리 등에 넣어 돌로 묻어두는 형태가 보편적이다. 남도말로 '독장' 혹은 '독담'이라 한다. 이 논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마한지역의 옹관(甕棺)으로도 이어진다. 한자문화권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에 널리 연행되었던 방식, 큰 항아리에 시신을 안장하는 고대로부터의 장례법들이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장례법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도대체 무엇일까? 죽은 아이들에게 지상의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매미가 탈바꿈을 하고 죽는 찰나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다시 부화한 알들은 애벌레가 되어 지하로 들고, 어떤 이들은 천사의 날개옷을 빌려 하늘에 오른다. 어쩌면 백년일지도 아니 천년일지도 모른 길고 긴 잠을 청한다. 하지만 영원히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병을 깨고 오르는 아프락사스의 새처럼 한 생애의 풍경을 깨트리기만 하면 된다. 이전의 자신을 온전하게 벗어버리는 매미처럼 말이다. 지상의 날들이 닷새면 어떻고 하루면 어떤가.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아이를 오쟁이에 매단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본다. 단 하루가 아니라 단 한순간만이라도 죽은 아이가 다시 태어나거나 거듭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애틋한 마음들이 해송숲의 오쟁이 장례 풍경을 만들어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와 문화와 문명 아니 시공을 넘고 상상을 넘어 그 어떤 수식으로 설명한다 해도 상통할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인류의 소망이지 않겠는가. 여름이 가기 전에 얼마나 많은 지하의 매미들이 지상으로 올라올지, 그래서 내 귀청을 뜯으며 울어댈지 이제 그 많은 탈바꿈과 거듭남과 재생과 부활의 사건들을 묵상할 시간이다. 이제 장마 끝나 여름 깊을 것이니 오랜 세월 기다렸던 매미들 지상으로 올라오겠다.

심사정, 화훼초충도-한국민속예술사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선, 송림한선도, 간송미술관 소장

매미 애벌레가 땅속에서 기어나와 꽃잎이 떨어진 참나리 꽃대를 붙잡고 머리와 몸이 옥색 빛을 띄며 허물을 벗고 있다. 뉴시스

매미 애벌레가 땅속에서 기어나와 꽃잎이 떨어진 참나리 꽃대를 붙잡고 머리와 몸이 옥색 빛을 띄며 허물을 벗고 있다. 뉴시스

매미의 유충이 땅속에서 나와 나무에 기어 올라 허물을 벗으며 우화(羽化) 하고 있다. 뉴시스

매미의 유충이 땅속에서 나와 나무에 기어 올라 허물을 벗으며 우화(羽化) 하고 있다. 뉴시스

매미의 유충이 땅속에서 나와 나무에 기어 올라 허물을 벗으며 우화(羽化) 하고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