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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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격리
  • 입력 : 2020. 09.10(목) 13:26
  • 편집에디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까마귀 모른 식게

우리 집 제사상이나 차례상의 구성은 늘 본상과 정체모를 상, 그리고 성주상 등이었다. 물상들에 대한 지각이 생긴 후였을 것이다. 어머니께 정체모를 상에 대해 여쭸다. 작은아버지 말씀을 하셨다. 혼인하지 못한 채 돌아가신 내력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늘그막에 나를 낳으셨으니 1900년생인 작은아버지를 내가 알 리 없었다. 아버지는 동생을 잃고 수년간을 자다가 울고 자다가 울고를 반복하셨다 했다. 친형제라지만 무엇이 그토록 아버지를 애달프게 하였을까? 작은아버지는 도회지에 나갔다가 돌아오자마자 격리되셨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병막이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어떤 전염병이었던 모양이다. 거적과 마람(이엉)으로 둘러친 병막에서 얼마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바람 숭숭 뚫린 거적때기, 죽은 자들을 뉘는 초분 같은 병막에서 홀로 겪었을 스무 살 남짓 총각의 쓸쓸함, 어떤 수사를 동원한들 그 절대고독을 형용할 수 있으랴. 혼인하지 못했으므로 형인 아버지가 동생의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제주도에서는 이를 '까마귀 모른 식게'라 한다. 제주도 무가 '차사본풀이'에서 까마귀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존재다. 까마귀도 모르게 조용히 지내는 제사라는 뜻이다. 한센병을 포함한 온갖 역병에 대한 대응이나 처방은 격리에 방점을 두었던 것 같다. 그 대표적인 것이 소록도처럼 하나의 섬에 환자들을 가두거나, 병막을 설치해 격리하는 방식이다. 처방만 달라졌지 지금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대면을 강조하는 것도 사실은 간접적인 격리방식의 하나다. 심각한 역병에 그나마 격리조치를 할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랄까.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 다수가 피해를 입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경신대기근이다.

환경위기 시대와 카니발리즘

어떤 사건이든 전조(前兆)가 있다. 뒷간에 가기 전 방귀가 나오는 이치다. 조선왕조실록에 전하는 경신대기근 환경변화는 거의 재앙에 가깝다. 해와 달이 불길한 무리들을 쏟아내더니 지진, 장마, 폭풍, 철을 무시한 우박, 해일, 흉작은 물론 별들이 서로 엉켜 날아다니며 하늘을 어지럽혔다. 곧이어 역병이 돌아 조선을 휩쓸어버렸다. 한반도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소빙기(小氷期, Little Ice Age)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칼럼에서 그 많던 청어들이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면서 소개했다. 영어사전에는 역사시대에 산악빙하가 신장한 시기라고 설명한다. 16세기 말에서 시작되어 1560년, 1750년, 1850년쯤에 빙하가 최대가 되었다. 1580년대를 전후한 시기는 소빙기의 제2차 한랭기가 시작되던 시점이다. 14세기 혹은 15세기부터 19세기 중후반까지 이어지는 소빙기 안에서도 온난과 한랭한 기후의 주기적 변동이 있었다. 가장 전형적인 소빙기를 나타내는 17세기 소빙기는 그 중에서 제2차 한랭기에 속한다. 강강술래 놀이 중의 하나로 등장하는 청어가 급속하게 사라진 이유도 이 소빙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조선의 초가집, 기와집 등 한옥의 온돌 확산에 따른 구조적 변경도 이 시기에 일어난다.

기근과 역병, 기후재앙 등이 소빙기와 경신대기근에만 국한되는 것 아니다. 이 땅에 인류가 살아온 이래 크고 작은 재앙들이 끊이지 않고 지구별을 강타했다. 지난겨울 남도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농사가 걱정되었다. 농사뿐일까. 기후위기는 가이아라는 지구별의 신체리듬을 깨트려 피부가 곪고 살같이 터지는 질병으로 이어지고 있다. 눈 내리지 않는 풍경이 지시하는 전조들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19가 지구를 강타했다. 두 달 넘게 장마가 지속되며 태양조차 빛을 잃었다. 예년에 없던 장마와 태풍들이 제집 들어오듯 한다. 경신 대기근을 상고한다. 입에 담지 못할 참혹한 풍경은 마치 카니발리즘(Cannibalism)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인간이 인육을 상징적 식품 또는 상식(常食)으로 먹는 풍습 말이다. 우리야 극심한 기후재앙과 기근으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프레이저의 여러 보고들이나 바흐친이 말한 이 용어가 주는 함의를 좀 더 깊이 성찰해본다. 바흐친은 역설적으로 이 용어를 권위적이며 모순적인 기존의 질서가 폭발적으로 터지는 축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낡은 권위에 대한 비판과 해체는 결국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려는 양상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실제 카니발리즘의 공격적인 성격이 미개인들의 식인풍습에 한정되는 개념일까를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경신대기근에 죽어나간 사람들의 지형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사회적 폭력에 대항하기 힘든 자들이 결국 식인의 표적이 되거나 대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본 지면을 통해 다산 정약용이 기록했던 처녀풍(處女風) 즉 소금비(鹽雨)나 진도지역의 도깨비굿에 대해 소개를 한 바 있지만, 여성, 어린이들을 포함한 노약자들이 속했던 피해자의 위치는 역사 이래 크게 바뀌지 않았다. 경고한다. 사회적 격리, 비대면을 방해하거나 저해하는 무리들, 특히 종교집회를 빌미 삼는 사이비집단들은 부디 이성을 찾기 바란다. 방해의 피해를 우리 공동체의 사회적 약자들이 고스란히 안게 되기 때문이다. 카니발리즘의 역설은 이 약자들이 들고 일어서는 도깨비굿에 가 닿는다. 건전하고 상식 있는 사회는 이미 초분 같은 병막을 준비하고 있다. 격리를 방해하면 그들을 격리시키는 것이 상식이다.

남도인문학팁

경신대기근

경신대기근은 1670년 경술(庚戌)년부터 1671년 신해(辛亥)년에 일어난 기근(饑饉)으로 두 간지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18대 현종 때 일이다. 역병이 돌고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참상이 발생한다. 코로나19사태를 두려운 마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경험이라고나 할까. 조선왕조실록 현종실록의 기록들이 끔찍하다. "기근이 이미 극에 달하여 살해하고 약탈하는 변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만 무덤 도둑에 있어서는 전에 듣지 못하던 일입니다. 보성군의 교노(校奴) 일명과 사노 최일과 남원부의 어영군 김원민과 사노(私奴) 철석 등이 남의 고장(무덤)을 파 옷을 벗겨서 버젓이 팔다가 시신의 친척에게 발각되었는데 추위에 다급하였기 때문이라 하며 군말 없이 자복하였습니다." 입을 것이 부족하여 무덤을 파고 죽은 자의 옷을 벗겨 팔았다는 것 아닌가. 전쟁기에 죽은자들의 이불을 걷어내 빨아서 다시 사용했다는 구술보다 참혹한 풍경이다. 이 참상은 급기야 잔혹스런 풍경을 향해 달린다. 제주 목사 노정이 기근에 대해 치계한다. "본도에 굶주려 죽은 백성의 수가 무려 2천2백60여인이나 되고 남은 자도 이미 귀신꼴이 되었습니다. 닭과 개를 거의 다 잡아먹었기 때문에 경내에 닭과 개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이어서 마소를 잡아 경각에 달린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니, 사람끼리 잡아먹는 변이 조석에 닥쳤습니다." 현종실록 19권 4월 3일의 참혹한 보고서다. 어디 제주뿐이겠는가.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기후재앙, 가뭄, 홍수, 지진, 태풍, 역병이 확산되고 전국은 죽은 자의 시체로 덮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삶아먹었다는 보고가 올라올 정도로 천륜과 인륜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조선인구의 10%에 달하는 150~200만 명이 죽어나갔다.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참 지혜다. 경신대기근이 저편에 있다면 이편에 코로나19의 전조가 있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기후변화와 폭염에 대비하기 위한 에너지니가 외치는 다섯번째 소원' 캠페인에서 에너지시민연대 회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오랜 가뭄으로 메마른 땅에 가축들이 뼈를 앙상하게 드러낸 채 죽어있다. 뉴시스

지난 8월 9일 영산강 대홍수로 전남 나주시 다시면 죽산들이 이틀째 침수돼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