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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말라죽는 벼알… 새까맣게 타는 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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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말라죽는 벼알… 새까맣게 타는 농심

전남, 이삭 ‘흑·백수 피해’ 심각
잦은 태풍 영향으로 쭉정이 뿐
“30년 농사에 이런 피해는 처음”

게재 2020-09-15 17:01:57
3차례 태풍으로 전남 농가가 흑·백수 피해에 몸살을 앓고 있다. 15일 영광군 염산면 송암리 한 주민이 흑수 피해을 입은 벼이삭을 살펴보고 있다.
3차례 태풍으로 전남 농가가 흑·백수 피해에 몸살을 앓고 있다. 15일 영광군 염산면 송암리 한 주민이 흑수 피해을 입은 벼이삭을 살펴보고 있다.

 농심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잇따른 태풍 때문이다. 전남지역에서는 모진 비바람을 이기지 못한 벼 이삭들이 검게 또는 하얗게 말라 죽는 흑·백수 피해가 심각하다. 가을걷이 시기가 다가왔지만 들녘은 일렁이는 황금빛 대신 검게 타죽은 벼 이삭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참담한 심정입니다. 어젯밤 마을주민들이 단체로 약을 쳤습니다. 죽어가는 논밭을 조금이라도 살려보겠다고요."

 영광군 염산면 송암리 신대마을 이장 유상국(45)씨가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그는 차마 타죽은 들녘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들녘은 벼알이 하얗게 쭉정이만 남아있거나, 검붉게 변하면서 싸라기만 남았다. 볍씨 속이 텅 비어 손으로 만지자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흑·백수 피해다. 흑수는 어느 정도 익은 벼알이 바람에 부딪혀 검게 변하는 현상이고, 백수는 벼알이 여물기 전에 수분이 증발해 하얗게 마르는 현상을 이른다.

 올해가 최악이다. 6~7월에 최저기온이 17℃까지 떨어지는 이상저온이 발생하더니, 8월 초까지는 집중호우를 포함한 긴 장마가 이어져 벼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기온이 낮고 비가 많이 내릴 때 생기는 도열병이 심했고, 저기압을 타고 중국에서 날아온 멸구와 혹명나방도 들끓었다. 태풍 '마이삭' 때는 벼가 쓰러지기도 했다. 태풍도 세 번이나 들이닥쳤다.

 유상국 이장은 "30년간 농사를 지었지만 전체 논의 80% 가까이 흑·백수 피해를 본 적은 처음"이라며 "할 수 있는 게 없어 방제약을 4번이나 살포했지만 속절없이 죽어가는 논밭을 바라보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신대마을은 지난 7월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논밭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주민들은 쓰러진 벼를 다시 세우며 노심초사했지만, 타들어 가는 농심을 비웃듯 태풍이 세 차례나 할퀴고 지나갔다. 태풍 '하이선'이 상륙했을 때 바닷물이 둑을 넘어 논밭으로 쏟아졌다. 결국 농사를 완전히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유 이장은 "농민 대부분이 임대로 빚을 져가며 농사는 짓는 처지여서 암담하기만 하다"며 "풍년 농사는 고사하고 그나마 남아있는 벼 이삭도 상품성이 전혀 없어 자식 같은 농작물을 사료용으로 내다 팔아야 할 처지"라고 했다.

 이곳 신대마을은 매년 특등에서 1등미를 생산하는 질 좋은 쌀로 명성이 높다. 그러나 흑·백수 피해를 이겨낸 벼들 역시 상품성이 떨어져 제값을 받을 수 없다. 공공비축미 매입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 이장은 "1년 농사가 완전히 물거품이 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그나마 남아있는 벼 이삭 역시 일반미곡상에 출하도 어려워 지금은 정부 공공비축미 매입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