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박 중독자' 증가하는데 관리센터는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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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광주 '도박 중독자' 증가하는데 관리센터는 폐쇄?
사행사업 매출 ↓ 예산 삭감 ‘나비효과’||한도관 위탁지역센터 축소·폐쇄 계획||광주·전남센터 한해 이용자 700여명||도박 중독 진료 매년 상승세 ‘엇박자’||“전문센터 없으면 지역민은 어디로”
  • 입력 : 2020. 10.15(목) 18:26
  • 곽지혜 기자
15일 광주 북구 용봉동에 위치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광주전남센터 입구에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위탁지역센터 폐쇄 및 통폐합 조치에 반대하는 성명문이 붙어있다.
"도박 중독을 흔히 고혈압이나 당뇨에 비유하죠. 평생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광주·전남을 통틀어 지역민의 도박 문제를 전문적으로 돕는 곳인데… 없어지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죠?"

15일 광주 북구 용봉동에 위치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광주전남센터에서 만난 구모(48) 씨는 4년째 이곳에서 도박 중독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올해 초부터 센터에서 '회복자 인턴' 과정을 수행하며 과거 자신과 같이 중독에 빠진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다.

구씨는 "광주도박관리센터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도박을 접했다는 구씨는 지난 30여년간 사행성 도박에 빠져다가 끊었다가를 반복해왔다.

군대를 다녀온 후부터 부모님 밑에서 장사를 시작하며 남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리기도 했지만, 모두 도박에 탕진하고 결혼 후 경마로 7억원의 빚을 만들고서야 아내 손에 이끌려 도박문제관리센터를 찾게 됐다.

구씨는 "도박 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시작점은 내가 중독이라는 부분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며 센터에서 도움받은 수많은 부분 중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이 가장 뜻깊었다고 꼽았다.

그는 "도박 중독이라고 하면 일단 남들의 인식이 너무 좋지 않다. 저도 제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엄청난 죄책감을 갖고 있었지만, 내 의지로 끊어내지 못하는 것이 도박 중독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문인력과 기관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족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도박 중독 증세와 죄책감을 센터에서는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부분이 구씨에게는 인생을 바꾼 계기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앞으로 구씨 같은 도박 중독자들에게 손을 내밀 기관이 광주에서 없어질지도 모른다.

병·의원 외 지역민의 도박 중독 문제 해결을 위해 운영되는 유일한 국가 기관인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광주·전남지역센터가 폐쇄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13개 위탁지역센터 협의회에 따르면 최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2019~2023) 수정안을 발표하고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이를 수용했다.

수정안에는 영리목적의 개인상담기관과 정신과 진료지원 확대를 주요 골자로한 13개 위탁지역센터 구조의 폐쇄 및 축소계획이 담겼다.

한도관은 국내 도박중독 예방·치유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복권과 경마 등 합법적인 사행산업 사업자로부터 순매출액의 0.35%를 징수해 도박중독 예방치유부담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합법 사행사업장들이 잇따라 문을 걸어 잠그며 징수했던 예방치유부담금도 절반으로 줄어들자 어처구니없게도 지역 센터 축소 카드부터 꺼내 들었다.

문제는 지역에서 도박중독자의 발생 비율은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광주전남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이용자 수는 2016년 590명, 2017년 644명, 2018년 680명, 2019년 732명, 2020년 9월 기준 583명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광주전남센터는 현재 9명의 전문사례관리자가 한 명당 100명 이상의 회복자를 관리하고 있다.

광주전남센터 관계자들과 회복자들은 "전남센터를 별도로 설립하고 인력을 충원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센터를 폐쇄한다니 믿을 수가 없는 조치"라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 도박과 청소년 도박 문제가 더욱 수면 위로 오르는 시점에서 지역 도박관리 전문기관을 없애는 것은 현장과 행정의 분명한 엇박자"라고 입을 모았다.

만약 센터가 폐쇄하거나 축소한다면 불이익은 온전히 지역민이 책임져야 한다.

한은경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광주전남센터장은 "국가기관을 없애고 지역 도박 중독 관리를 민간에 이전시킨다는 것인데 도박 중독은 장기적으로 최소한 1년 이상의 서비스가 필요한 부분이고 한두 번 상담받아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 센터장은 "도박 중독은 재정·자녀 등 가족 서비스·재발·자살 위기 등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모든 서비스가 종합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데 민영화로 개인당 한 상담에 얼마씩 돈을 지불하는 형태로는 지역민들의 건강을 지킬 수가 없다"며 "국민의 정신건강 서비스를 민간으로 이관하는 나라는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도박 중독 전문 기관의 궁극적인 목표는 회복자들이 사회에 복귀하고 해당 지역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어디까지일지는 알 수 없으나 도박문제로 힘들어하는 지역민 한분 한분의 손을 잡고 끝까지 그 잡은 손을 놓지 않는 이 일을 묵묵히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