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불효네요" 한 유족의 눈물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사회일반
"끝까지 불효네요" 한 유족의 눈물
“침수 당시 아무런 대처도 없었다” ||상처 끌어 안고 유골함 집에 모시기도||추모관 측 늑장 대처에 피해 유족들 ‘분노’||장례식장 리모델링 후 추모관 사용 논란도
  • 입력 : 2020. 10.21(수) 18:01
  • 최원우 기자
지난 8월 광주의 한 추모관에서 침수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유족 이모씨가 자신의 부친의 유골함을 집에서 보관하고 있다.
"제대로 된 장례도 못 치러 드렸는데… 이런 일까지 당하니… 그저 아버지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납니다."

21일 오전 10시께 어렵사리 만난 이모씨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곧바로 눈물을 글썽였다.

이씨는 지난 8월7일부터 쏟아진 폭우로 인해 광주 북구에 소재한 A 추모관에 안치한 아버지의 유골이 침수 피해를 입은 뒤 유골함을 집으로 가져와 직접 유골을 말린 유족이었다.

18평 남짓한 작은 집에서 홀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이씨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탓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장례식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추모관에 안치했었다"라며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 보니 매일 추모관을 방문했었다"고 말을 이었다.

이씨는 "하필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바람에 그날 딱 한 번 못 갔는데 추모관이 침수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라며 "돌아가신 아버지께 끝까지 불효네요"라고 당일 추모관을 가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묻자 이씨는 "침수피해를 알리는 문자를 받은 뒤에서야 추모관으로 발걸음을 향했지만, 추모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하로 향하는 계단까지 물이 차 있었다"라며 "출동한 경찰의 도움을 받아 유골함이 안치된 곳까지 가보려 했지만, 전기시설이 끊어진 탓에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실제로 침수피해가 발생한 지난 7일 추모관 지하 1층 전부가 물에 잠겼고 지하 천장 벽면도 내려앉았다. 또 침수로 인해 전기시설이 끊기면서 한동안 수습작업이 지연되기도 했다.

이에 추모관에 모인 유가족들은 양동이와 바가지 등을 이용한 배수 작업을 직접 진행했고, 무릎 높이까지 물을 뺀 이후에야 유골함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씨도 이날 유골함을 수습했지만,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씨는 "집에다 유골함을 두는 것은 우리나라 정서와도 안 맞고 매일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돈을 내면서까지 유골함을 추모관에 맡겼었다"며 "사고 이후 우울증약을 복용 중이며 유골함을 집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씨는 "침수피해 원인이 밝혀지고 심적으로도 안정될 때 아버지를 땅이나 수목장에 맡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씨 뿐만이 아니다. 침수피해를 입은 유가족들은 트라우마와 홧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사고 당일 추모관의 대처에 대해 강한 불만과 의구심을 표명하고 있다.

먼저 추모관 침수 당시 침수피해 상황은 추모관 측이 아닌 한 유족에 의해 공개됐다.

며칠간 쏟아진 비에 침수를 우려한 한 유족이 추모관을 방문해서야 추모관 지하가 침수된 것을 발견했고, 침수를 알리는 글과 사진을 SNS에 올림으로써 이를 본 유족들이 하나둘 추모관으로 모이며 침수 사실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유족 정모씨는 "추모관 측에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고 추모관에 몰려든 유족들이 항의하자 침수 12시간이 지나서야 간단한 문자로만 침수 사실을 유족들에게 알렸다"라며 "이마저도 지하 1층이 아닌 1층 신세계관이 침수됐다고 문자를 보내 유족들에게 혼선을 줬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에 의하면 추모관 측의 문자를 받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하 1층 추모관은 이미 지하 천정까지 완전히 침수된 상태였다.

추모관 측의 안일한 사고 대처도 문제가 되고 있다.

유족들은 침수피해를 알리는 것은 둘째치고 유족들이 바가지와 양동이를 이용한 배수작업을 할 동안에도 추모관 측에서는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유족 김모씨는 "유족들이 물을 뺄 때 추모관 측 관계자들은 위층에 있었으면서도 사고장소에 나와보질 않았다"라며 "유족들이 찾아가자 추모관 관계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고 유족 측이 항의하자 도망가려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해당 건물은 침수피해가 예견된 건물이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고 추모관은 설립 전 장례식장으로 이용됐었는데, 해당 건물을 구매한 현 추모관 측이 겉모습만 리모델링 해 운영해왔다는 것이다.

확인해본 결과 A 추모관은 과거 지하 1층부터 3층까지의 장례식장이었으며 증축을 통해 5층 규모의 추모관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조사결과 이번 침수피해 발생 원인은 지하 벽면에 설치된 환풍구를 통해 물이 들어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하에 마련된 추모관에 환풍구가 있다는 것은 습기가 찬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조사단은 "추모관은 유골함을 진공처리해 습기가 들지 않도록 보관하는 것이 원칙인데 환풍기가 있다는 것은 습기가 있거나 아니면 원래 있었던 환풍기를 제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 유족은 "추모관 측에서는 그저 뼛가루일지는 몰라도 우리에겐 아버지고 어머니며, 가족이고, 인생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다"면서 "제대로 준비 되지 않은 채 운영해 놓고 사고가 터진지 80일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해당 A 추모관에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최원우 기자 wonwoo.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