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파 생채기 낫기도 전에 또 눈… 전남 농가 '몸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 정치

한파 생채기 낫기도 전에 또 눈… 전남 농가 '몸살'

나주 산포면 고추·배추 농가 가보니
난방기 고장·수도 동파 등 냉해 야기
수막시설도 무용지물… 땅까지 '꽁꽁'
"50년 만 처음… 변덕 날씨 밤잠 설쳐"

게재 2021-01-18 17:03:25
18일 전남 나주시 산포면 덕례리의 한 하우스 시설 내부에서 한 농가 주민이 최근 냉해로 바싹 말라버린 고추나무를 덤덤히 바라보고 있다.
18일 전남 나주시 산포면 덕례리의 한 하우스 시설 내부에서 한 농가 주민이 최근 냉해로 바싹 말라버린 고추나무를 덤덤히 바라보고 있다.

"눈 좀 그만 오면 쓰겄어.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 죽겄는디 하우스가 통째로 꽁꽁 얼어서 굶어 죽게 생겼당께."

최근 50년 만에 전국을 덮친 기록적인 한파로 인해 애지중지 키우던 작물이 줄줄이 얼어 죽어 나가면서, 대부분 농사를 업으로 삼는 전남지역 농민들의 얼굴에 주름만 그득해지고 있다.

18일 찾은 나주시 산포면 덕례리 유촌마을.

농가 대부분이 하우스 시설을 이용한 농사를 짓는 곳인 만큼, 마을 어귀에 다다르기도 전부터 들판에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비닐하우스가 무리 지어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 한파와 폭설의 영향 때문인지 하우스들은 멀리서 보기에도 온전하지 못한 상태인 것들이 많았다. 날카로운 칼에 찢기기라도 한 듯 비닐에 구멍이 마구 뚫린 것부터 문짝이나 철골이 찌그러져 기울어진 하우스도 있었다.

그나마 상태가 성한 하우스에는 내부에 남아있는 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부직포나 방수포로 구멍 난 곳을 칭칭 감아 놓기도 했다. 군데군데 밭이랑에는 폐비닐을 수거해 쌓아놓은 무더기가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유촌마을 농가 주민 중에서는 대규모로 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는 이장 김칠성(50)씨. 8년 전 다사다난했던 도시생활을 마치고 귀촌해 쭉 농사를 지어왔다는 김씨는 "이런 한파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김씨는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나도 하우스 대지 3000평 중 1200평 정도를 설 대목쯤 수확하려고 놔뒀는데, 일년 고추 농사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고 했다.

마을에서만 농가 54곳 중 30여 곳이 냉해를 입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김씨는 "마을 전체로 보면 2만여 평 중 최소 절반 이상이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며 "강추위에 난방기와 수도가 동파되면서 고추나무는 물론 땅까지 얼어버렸다. 수막시설까지 얼어버려 먹통이 된 탓에 피해가 더욱 커졌다"고 했다.

김씨는 손해를 조금이나마 줄여보고자 그나마 얼지 않은 고추를 하우스 곳곳에서 골라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죽어버린 고추나무를 함부로 처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다음 농사 계획에도 차질이 크다.

김씨는 "고추 다음에 쌈배추, 봄배추, 봄무 순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아직 피해 조사가 끝나지 않아 죽은 고추나무를 처리하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나는 재해보험을 들어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보험을 들지 않는 고령의 농민들이 많아 마을 전체적으로 답답한 실정"이라고 했다.

고령에 인구도 적어 인력난에 시달리는 농촌인지라, 그나마 성한 작물을 수확하고 뒷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인부를 써야 하는 현실도 녹록지 않다.

베트남 출신 인부 웨이씨는 "유촌마을에 자주 와서 농사일을 도왔다. 최근 작물을 정리하고 뒤처리하는 일을 줄곧 하고 있다"고 했다.

인근의 배추밭 상황도 처참했다. 냉해 이후 농민들이 소매를 걷고 배추를 정리한 상황이었지만, 하우스 바닥에는 못 잡아도 절반이 넘어보이는 배추 이파리들이 틈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널브러져 있었다.

한 마을 농민은 "김장용으로 심은 배추인데 쌈배추만도 못하게 줄어든 것이 많다"면서 "땅이 얼어버려 지력도 약해질 가능성이 커 다음 농사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나주시는 현장 조사를 돌며 피해 정도를 파악 중이다. 이례적인 한파에 피해 지역이 적지 않아 조사를 완료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린다고 했다.

나주시 관계자는 "대략적으로 파악된 바에 따르면 나주에서는 고추·딸기 등 냉해 면적이 5.1㏊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현장 조사를 서둘러 다음 주께 정확한 통계를 낼 예정이다"면서 "지역 농민들에게도 한파나 적설을 대비해 긴급 안내문자를 돌리는 등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