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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학생회에 등장한 '십자가 밟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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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학생회에 등장한 '십자가 밟기'

사회부 양가람 기자

게재 2021-03-04 15:54:40
사회부 양가람 기자
사회부 양가람 기자

후미에(踏み絵)는 일본 에도 시대에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려 사용했던 방법이다. 연초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 혹은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작은 동판을 밟고 지나가도록 강요한 다음, 밟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사람을 신자로 간주해 처형한 종교 탄압이다. 이러한 '십자가 밟기'는 후대에 들어 개인의 사상을 조사하거나, 어떠한 사안에 반대하는 자를 가려낸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개인의 기본권이 최우선적으로 보장되는 오늘날에도 '십자가 밟기'는 존재한다. 지난해 12월 꾸려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는 학생회 간부의 신천지 포교 활동 논란 등으로 해체 결정을 내렸다. 이어 열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는 '후보자 정보 공시제도'가 전국 대학 최초로 마련됐다. 후보자의 지지 정당과 종교를 미리 공개해 4월 보궐선거에서는 특정 정당과 종교의 침투를 막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전학대회에서 만장일치로 탄생한 '후보자 정보 공시제도'는 현대판 '십자가 밟기'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종교와 지지 정당을 밝히도록 강요해 개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탓이다. "과거부터 신천지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진 만큼, 유권자들이 원하는 대표자의 이미지엔 신천지가 적합하지 않다고 봤다. 후보자 정보 공시제도는 공적인 자리인 총학생회장을 뽑는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총학 관계자의 설명은 해당 제도에 '특정 종교 배제'라는 혐의를 더욱 강하게 씌운 셈이다.

'후보자 정보 공시제도'는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 헌법 제20조 1항의 '종교의 자유'는 △종교를 믿느냐의 여부의 자유 △종교의 선택·변경의 자유 △신앙고백의 자유 △고백을 강요받지 않을 자유 △신앙여부에 따라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 자유로 세분화 된다. 즉, 해당 제도는 본인의 종교를 공개하지 않을 '소극적 신앙고백의 자유'를 침해한 '십자가 밟기'나 다름없다.

학내 자치기구인 대학 총학생회는 다양성을 포섭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개인의 사상과 신념이 소수의 입장일수록 더욱 보호받아야 하는 만큼, 대표자 출마 전부터 특정 종교와 정당을 배제하려는 태도는 무자비한 '십자가 밟기'다. 일부 학생들이 우려하는 총학생회장 지위를 활용한 포교 행위, 정당 활동 등은 문제가 된 후에 제재 혹은 탄핵해도 된다.

전남대를 포함한 상당수 대학에서 총학생회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누군가는 '학생 목소리를 대변할 창구의 부재'를 우려했고, 누군가는 '새로운 구조와 방식의 청년 목소리 대변 기구를 고민할 시기'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어떤 모습의 청년 자치기구가 꾸려지게 될 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십자가를 밟지 않아도 되는, 소수의 목소리도 지워지지 않는 건강한 소통 창구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