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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창·조재호> 교사 배이상헌과 섹스(S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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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창·조재호> 교사 배이상헌과 섹스(SEX)

조재호 초등학교 교사

게재 2021-04-18 14:08:12
조재호 초등학교 교사
조재호 초등학교 교사

2019년 여름부터 2020년 겨울까지 광주교육계는 교사 '배이상헌'사건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성평등 윤리교사는 고발되었고, 교육청에 의해서 단죄되었습니다. 무조건 패륜교사로만 몰렸던 대광여고 선생님들은 지금도 행정폭력에 항의하고 있습니다. 교사 배이상헌을 벌한 폭력의 가해자는 광주교육청입니다. 그런데 광주시민사회는 이를 옹호하거나, 방조, 침묵함으로써 적극적으로 가해자의 편을 듭니다. 교사 배이상헌이 속한 전교조의 다수 흐름은 적극 지지하였지요,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정당인 정의당도 침묵하거나 귀찮아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이는 교사 노동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실은 교사 자신들도 자신들의 노동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허둥대지요. 매년 반복되는 '성과급'사태도 이런 현실을 드러내는 극단적 단면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에게 한 평범한 교사가 겪는 일화를 전해드립니다. 이를 통해 교사 노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교사 배이상헌 사건을 기억의 어둠에 넣어두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6학년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영어에서는 어려운 문법이나, 구문은 나오지 않습니다. 영어가 친숙하고, 즐겁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이 주요 수업시간에 이루어집니다. 1단원이 What grade are you in?입니다. 몇학년이냐고 묻고 답하면서 기수와 서수의 구분을 자연스럽게 체득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원,투, 쓰리, 포....라는 기수(cardinal number)와 첫째, 둘째, 셋째...라는 서수(ordinal number)를 이해시키는 것이죠.

"퍼스트, 세컨, 써어드..."

그런데 "식쓰스.." 대목에서 어떤 남학생이 씨익 웃습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옆으로 번집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멀찍이 있는 자리도 이 웃음의 바이러스를 막지 못하네요.

무슨 의미일까요? 예! 학생들과 나는 그 의미를 다 알고 있어요. 그 학생은 섹스(sex)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학생이 떠오른 의미가 다른 학생들로 다 번진 것이구요. 13세 학생들에게, 그런 반응은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교사인 내가 그때 떠오른 것은, 파닉스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올해는 알파벳만 보면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모든 학생들에게 심어주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웠거든요.

이 기회를 이용하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웃음을 짓던 아이는 알파벳은 알아도 단어를 읽지 못합니다. 그래서 s는 '스', e는 'ㅔ' x는 '엑쓰'...라는 아주 원초적인 파닉스라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 어휘를 통해 영어에서는 이 어휘가 '남녀구분'을 뜻하는 것이며, 여권(passport)에서 남녀구분을 뜻할 때 sex : male, female이 써 있다는 지식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더 나아가, 남녀구분 조차도 너무 분명하게 할 수 없는 다양한 성들이 존재한다는 글로벌 문화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성과 관련한 차별은 정당하지 않다는 사회적 사건들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변희수 하사 사건을 이야기 하면서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곤욕을 치릅니다. 교사 배이상헌 사건을 통해 목격 했거든요. 이런 류의 수업이라도 학생 혹은 학부모가 '고발'하면 교사는 처절하게 당하더군요. 성평등과 학생자치를 위해 평생 헌신한 명예는 산산조각 나고, 그가 몸같이 여겼던 전교조와 진보진영 단체들의 동료들은 등을 돌립니다. 저는 그럴 용기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듯합니다. 교과서에 나온 글자들을 음성으로 바꾸는 흉내를 내면서 수업을 할 듯 합니다.

폭력은 타인의 노동에 대한 몰이해에서 생깁니다. 교사는 안정적인 직장이고, 놀고 먹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한국 사회에서는 널리 퍼져 있죠. 권력은 이를 이용해 "저 사람은 학생을 성희롱했다" 혹은 "저 사람의 억울함 호소는 신성한 학생을 2차 가해하는 것이다"며 단죄합니다. 교사 노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노동이요, 감정노동이며, 매우 정교한 노동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교사 배이상헌 사건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한발짝이라도 전진합니다. 몰이해와 편견에 맞서 교사 노동의 이해가 가능하도록 교량역할을 할 시교육청이 오히려 교사를 물어뜯는 생선가게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