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80년 오월, 시위대를 견인했던 주력부대 '전남대농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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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80년 오월, 시위대를 견인했던 주력부대 '전남대농악반'
농대 중심 5·18 열흘전 의기투합 ||5·18때 시위 선두에 섰던 농악반 ||불온한 세상 떨쳐 일어난 바람 ||5·18이후 본격적인 정비 나서 ||마을로 들어가 화순한천농악 배워||졸업생에 이어 지금가지 명맥이어
  • 입력 : 2021. 05.06(목) 16:34
  • 편집에디터

1980년 11월 1일. 전남대 농악반 추수감사제. 이윤선

징과 꽹과리, 북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전남대 정문에서 막힌 시위대는 농대 후문으로 탈출하여 유동 삼거리 금남로를 거쳐 오후 세시 경 도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약 20여 분간 농악놀이를 했다. 1980년 5월 14일, "5.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제42권 불기소사건 기록편14(2006)" 중 김양래 조서에 나오는 상황들이다. 당시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내 4개의 써클이 있었다. 4-H, 밀알, 청봉, 한농 등이다. 대표 6명으로 '농악반설립추진위원회'를 열었다. 호남혼구사에서 구입한 징과 꽹과리 등 20여종의 국악기, 의상 등도 꼼꼼하게 거론된다. '전남대농악반연혁'에는 4월 19일 발기총회, 회칙을 작성한 것으로 나온다. 김양래(임학4), 박승환(농학3), 장환(청봉회장), 정성찬(농대문예부장), 최종석(농학4), 김선출(탈반) 등의 발기인 이름이 나온다. 다시 조서 내용이다. "피의자 박관현의 범죄사실 14항 나,의 기재내용과 같은 경위로 '민족민주학생회' 반정부 시국성토 불법시위 후, 동일 18:00부터 19:00까지 가두시위로 귀교시 연일과 같은 방법으로 농악놀이를 하는 등 적극 활동하고, 동년 5. 16. 15:00경 피의자는 농악대를 인솔, 도청앞 광장에 도착 후 동교 및 재광 각 대학 시위학생 14,300여명이 합세한 시위에서 전항과 같은 농악놀이를 공연 후 동일 17:00부터 18:30까지 가두 시위시 동교생의 선두에서 농악놀이를 공연으로 시위학생의 진출을 유도 및 시민을 선동하면서 유동3거리, 중앙여고 앞을 경유 도청앞 광장까지의 가두시위에 적극 활동 하는 등 반정부 불법시위에 농악공연으로 학생 및 시민들을 선동하고 광주 폭동사태를 유발케 하는 등 피의자는 광주 일원의 안전과 평온을 저해함과 동시에 포고령을 위반한 자 등인 바..." 연이어 검거, 자수, 미 검거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름들이 주르르 나열된다. 조서는 물론 여러 구술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80년 5월 14일부터 17일까지 4일간 가장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었던 이들은 농악부대였다. 전남대 농대가 그 중심에 있었고, 조선대 등 재광 각 대학 농악대들이 연합해 뒤를 따랐다.

1980년 전남대농악반 창립과 오월에 대한 구술 좌담회. 이윤선

'전남대농악반'에서 '오월농악(오월굿)'까지

몇 주 전 전일빌딩에서 '전남대농악반창립과 오월에 대한 구술좌담회'가 열렸다. 발기인이었던 최종석, 김선출이 구술해주었다. 전남대학교농악연구회(회장 우남일)가 주최한 자리였다. 기왕의 보고서나 조서 내용에 없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5.18에 대한 많은 담론들 중 농악 이야기 자리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농악이 의미가 없어서였을까? 80년 5월 14일부터 17일까지 정작 시위대를 견인했던 주력부대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주목하는 것이 전남대농악반이다. 증언들이 많다. 당시 총학생회장이던 박관현이 주문하였다는 얘기도 있고, 그 이전부터 '탈반'을 꾸려 활동하던 김선출이 농대 한농회에 와서 제안하였다는 증언도 있다. 농대 중심으로 약 30여명 정도가 의기투합을 한 때가 5.18 약 열흘 전이었다. 광주역 앞 서울여관을 통째로 빌렸다. 30여명이 4박5일 동안 농악연습을 했다. 전남대 정문과 동문으로 시위대들이 출발할 때 선두에 섰다. 도청앞 광장에서도 누군가의 연설 시작 전에 십여 분 농악놀이로 분위기를 북돋우기도 했다. 농악 가락은 어떠했을까? 최종석의 증언에 의하면 이채, 삼채, 오방진 등 가벼운 가락들이 주류였다. 용이한 가락들로만 보면 5월 시위를 위해 급조한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일촉즉발 사회분위기가 이를 추동한 것은 맞지만 5.18 이후 농악놀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그 이전 꾸준하게 농악놀이를 배우고 전승했던 내력이 이를 말해준다. 시위의 선두에 섰던 농악반은 5.18 이후 본격적인 정비를 하면서 화순한천농악을 배우기 시작한다. 마을로 들어가 한두 달 같이 일하면서 배우는 현장학습이었다. 이후 단과대, 심지어는 작은 학과까지 농악반이 만들어져, 캠퍼스 빈 곳에는 여지없이 농악 동아리들의 북장고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월농악(오월굿)'이란 이름으로

5.18의 본격적인 시작이 5월 14일이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여기에 있다. 김선출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름다운 시위가 있던 풍경이었고 그 시위의 선두에 농악반이 있었다. 어쩌면 이들의 북장고 울림이 광주와 남도의 시공을 울리는 공명(共鳴)이었고 불온한 세상 떨쳐 일어난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공명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그래서 농악하는 것을 '울린다'고 한다. 남도천지 들에서 바다에서 아니 역사 이래 한반도의 시공을 가르며 쇠와 가죽을 울리고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세상과 공명하여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도모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나이 40을 불혹이라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엉거주춤 40주년을 보내버린 지금 다시 오월을 맞는다. 불혹이라니 대체 무엇에 혹하지 말며 무엇을 흔들림 없이 지켜가야 할 것인가. 40년이 넘은 지금, 재학생들의 동아리는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농대를 중심 삼았던 전대농악반은 졸업생들에 의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각 대학의 이른바 풍물패들도 사라졌지만 오월풍물단, 4.19풍물단, 굿스쿨 등 여러 단체들과 문화재로 지정된 각양의 농악들이 전승 재구성되고 있다. 감히 '오월농악' 아니 '오월굿'이란 이름을 붙이는 이유랄까. 고대로부터의 사회사적 뿌리를 갖는 농악일진대, 그것이 세상과 공명하여 5.18의 아름다운 울림을 낳았을 것인데, 과연 우리는 그 본질과 확장에 대해, 그리고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 지금 어떤 변화와 비전으로 우리사회의 공명을 준비하거나 펼쳐가고 있는 것인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불혹이란 오로지 세상과 더불어 공명하는 것을 이르는 언설일 뿐이다. 고목 스러진 자리, 씨앗들 뿌려져 새로이 나무 자라고 더 울창한 숲이 된다. 오월농악(오월굿)이란 이름을 붙이며, 가신님들 영전에 다시 옷깃 여민다. 비로소 남도 산하 아름답게 울리던 굿 소환하니 어찌 기쁘니 아니한가.

남도인문학팁-전남대농악반의 사회사적 뿌리

1960년부터 1973년까지 광주농고와 전남대 농대에서 농악을 가르쳤던 이주완(1910~1973)이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그가 이끄는 전남농악대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1964년) 했다. 관련 정보는 표인주 외 공저, <이주완의 풍물굿과 이경화의 예술세계>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농업 관련 써클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던 농대라 오래 전부터 농악에 큰 비중을 두었던 것. 그뿐일까. 혼란스럽던 유신 전후, 남도에는 많은 민주인사들이 내려와 사회운동을 했다. 예컨대 1974년 민청학련사건 이후 해남에 내려와 있던 작가 황석영, 시인 김남주는 물론 이대출신 탈춤반 '한두레', 전남대와 조선대의 탈반 출신들이 만든 '광대', 야학 등 무수한 운동가들과 모임들 말이다. 이들에 의해 민요, 연극, 열사가 등의 판소리, 마당극, 특히 풍물로 호칭되는 농악이 연희되었다. 전후 맥락을 보아하니 이 풍경은 동학농민전쟁에 가 닿는다. 그들 또한 징과 꽹과리를 울리면서 압제와 부조리한 세상을 징치하고자 했다. 그뿐일까? 설령 이름은 다르고 형태나 구성은 달랐겠지만, 연말연시의 의례에서부터 농업과 어업의 각종 두레, 혹은 임진왜란, 삼국전쟁 등으로 거슬러 오른다. 아니 어쩌면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울리던 북소리와 쇠소리로 거슬러 오를지도 모른다. 감히 이름붙이는 오월농악(오월굿)은 그렇게 장구한 뿌리를 가지고 탄생하였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전남대 농악반 연혁표지. 전남대농악연구회 제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