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괄 콘텐츠 디렉터 김홍탁의 '인사이트'> 착한 기업이 좋은 기업의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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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칼럼
총괄 콘텐츠 디렉터 김홍탁의 '인사이트'> 착한 기업이 좋은 기업의 잣대
  • 입력 : 2021. 05.30(일) 15:11
  • 편집에디터

김홍탁 총괄 콘텐츠 디렉터

남양유업이 사모펀드에 운명을 맡기고 1964년 창립 후 57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새로운 경영진이 회사의 미래를 기획하겠지만, 창업 이후 3대째 이어온 역사는 일단 막을 내린 것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제품 기업으로 갓난아기의 주식에서 청소년과 성인의 건강을 지키는 부식을 공급했던 역사가 마감된 것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남양유업의 몰락은 제품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시장 판도의 변화가 있어 경영에 타격을 입거나 원료를 공급하는 낙농업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최고경영자의 갑질, 악행 은폐, 언론 조작 등 기업경영의 윤리에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남양유업 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효과가 있다는 뉴스보도는 치명적이었다. 타는 장작에 기름을 부었다. 자중해도 모자랄 판에 왜 그런 자충수를 두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되지만, 위기관리 능력에 손쓸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남양유업 사태는 최근 강화되고 있는 기업의 ESG경영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입증한 사례다. 그 중 윤리경영이 으뜸 잣대로 자리한 거버넌스(Governance)의 지침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 것이다. '잘 살아보세, 막 달려보세!'로 요약되는 1960~70년대 대한민국 개발독재 산업화 시대의 옷을 아직도 입고 있었다. 당시는 일단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기에, 질좋은 제품을 양산하는 것이 기업평가의 우선 순위였다. 그러나 지금은 질좋은 제품은 기본이고 착한 기업인지 아닌지가 기업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가 됐다. 비재무 분야의 기업평가에서 기존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은 잘하면 더욱 격려해주는 당근 정책이었다. 그러나 ESG는 수행하지 않으면 채찍을 맞게 된다. CSR엔 기업의 가치가 달려 있지만, ESG엔 기업의 존망이 달려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여기 러닝슈즈 한 켤레가 있다. 이전엔 신발의 기능, 가성비, 디자인이 구매의 관건이었다. 이에 덧붙여 지금의 소비자들은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졌는지를 따진다. 나아가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어도 그 신발이 제3세계 아이들의 노동력 착취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지구에서 영원히 퇴출된다. 소비자들이 봐주지 않기에 기업은 숨을 데가 없다. 특히 MZ세대들은 지속가능 브랜드에 더 민감하다. 2015년 닐슨 리서치 자료에 의하면 20세 이하의 소비자 중 지속가능 브랜드를 구매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비율이 75%였다. 2020년 자유기업원에서 실시한 대한민국 대학생 1009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ESG상품을 구매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60.9%였으며 주식 거래를 할 때도 ESG 등급이 우수한 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삼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80.3%였다. 가성비가 최우선인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일부 '나를 따르라!'를 외치던 자수성가 경영자들이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던 것이다.

대한항공 사례도 유사하다. 티켓팅에서 보딩을 거쳐 기내에 머무는 전 과정에서 대한항공 승무원의 서비스는 세계 최고다. 그러나 대한항공 오너 가족들이 줄줄이 포토라인에 섰던 것은 그들의 갑질 때문이었다. 직원에게 막말하고, 협력사 직원에게 물건 던지고, 사무장의 태도가 마음에 안든다고 항공기를 회항시킨 무지하고 무례한 태도가 화를 자초했다. 물론 본인들은 그게 무슨 문제냐고 판단했을 터이다. 경영자의 미천한 윤리의식이 기업가치에 치명타를 입힐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세상은 바뀌었는데, 본인만 안바뀐 것이다.

친환경 경영(Environment)의 잣대 역시 엄정하다. 석유화학이나 철강과 같은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은 영업이익보다 탄소세 부과 액수가 더 커질 수 있다. 뼈빠지게 일해 번 돈을 고스란히 세금으로 바치는 형국이 곧 닥칠 것이다. 국제협약에 의한 결정이니 OECD 국가인 우리가 빠져 나갈 방도도 없다. 이미 환경부에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실현을 공식 선언했고 그에 따른 이행 계획을 발표했다. 기업의 시스템과 인프라를 친환경으로 바꾸지 않는 한 생존할 방법이 없다.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기업의 피를 바꿔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는 이제 '주주이익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중심축이 바뀌었다. 이해관계자란 주주는 물론 회사 직원, 외부 협력업체, 정부 자치단체 NGO 등의 관련기관, 그리고 소비자를 아우르는 총체적 개념이다. 각 기업에선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 걸쳐 있는 모든 관계망을 건전하고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제 윤리경영에 문제가 생겨 60년 가까이 된 기업이 사모펀드에 회사를 팔거나, 기업 총수 일가가 포토라인에 서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제품이란 기업의 좋은 생각이 담긴 제품을 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ESG #남양유업의 교훈 #윤리경영 #착한기업이 좋은기업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