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면 불안·고통"… 트라우마 시달리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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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버스 타면 불안·고통"… 트라우마 시달리는 시민들
붕괴영상 본 후 심리불안 호소 ||358명 상담 요청해 127명 받아 ||“정부차원 심리치료 지원 필요”
  • 입력 : 2021. 06.16(수) 17:29
  • 박수진 기자

"붕괴 사고 영상이 머릿속에 사라지질 않고 속이 답답합니다. 버스 타는 거 자체가 두렵고 무섭습니다."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지구 건물 붕괴 참사로 슬픔에 잠긴 광주 시민들은 이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로 고통을 겪고 있다.

사고의 피해자와 유가족 뿐 아니라 이를 지켜본 광주시민의 일상 속으로 '참사 후유증'이 번지고 있다.

특히 운림 54번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는 승객들은 참사 이후 극심한 불안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출·퇴근를 위해 10년간 운림 54번 버스를 이용해온 김지수(36·여)씨는 참사 이후 버스를 타는게 고통스럽기만 하다. 버스를 타면 머리 위에서 뭔가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다.

김 씨는 "버스를 탄게 무슨 죄가 있나요? 매일 운림 54번을 타는 데, 사고 난 날 그 시각 버스를 탔더라면 하는 생각에 아찔해진다"며 "출퇴근할 때 붕괴 사고 현장을 보게 되는데,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호소했다.

김 씨와 같이 불안을 호소하는 승객이 늘면서, 54번 버스 이용객은 40% 가량 줄었다.

사고 피해자나 유족, 현장에서 끔직한 사고를 목격하진 않았지만 붕괴 블랙박스 영상을 본 시민들도 간접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언제라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주변을 더 유심히 살피게 되고 극도로 예민해진데다가 건물이 붕괴되는 꿈까지 꾸는 등의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이용균 (33)씨는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나"며 "붕괴된 건물 잔해가 지나가던 버스를 덮치던 광경이 계속 떠올라 잠까지 설치고 있다"고 했다.

사고 현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 씨도 "광주에서 사고가 발생한 뒤로는 수시로 공사 현장을 살펴보게된다. 겉으로는 안전해보여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붕괴 사고 이후 트라우마 상담을 요청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광주시는 심리회복지원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운영, 피해 유가족, 생존자, 현장 목격자, 일반시민 등을 대상으로 심리지원에 나서고 있다.

현재까지 시민 358명이 트라우마 상담을 신청했고, 127명이 상담을 받았다.

성주연 광주시 재난심리지원센터팀장은 "참사 직후에는 경황이 없었지만, 사고 수습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심리 불안 증세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면서 "유가족과 목격자 외에도 영상을 통해 사고를 접한 시민 상당수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붕괴사고를 접한 시민들의 '간접 트라우마' 도 반드시 치료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겪은 붕괴사고에 대한 슬픔, 분노, 불안감 등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가중됐다고 진단했다.

이미나 광신대 복지상담융합학부 교수는 "코로나 시기로 개인적 불안이 커져 있는 상황에서 직접 목격이나 피해를 받는게 아니여도 심리적으로 트라우마가 커진다. 심리적 충격으로 불면증과 불안감, 절망감, 무기력 등이 발생하다"고 말했다. 이어 "심할경우 일상생활까지 어려워진다"며 "주변에서 관심을 갖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번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 치료에 심리지원 전문인원 확충 등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나 교수는 "사고의 피해자와 유가족 뿐 아니라 이를 지켜본 일반 광주시민의 고통도 크기 때문에,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고 일상의 회복을 돕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심리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suji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