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졸업장 175건 "독립운동가 후손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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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주인 없는 졸업장 175건 "독립운동가 후손 찾습니다"
광주일고 학생독립운동 퇴학자 ||180명 명예졸업 대상자 찾았지만||후손 없어 전달된 졸업장 5건뿐
  • 입력 : 2021. 07.26(월) 17:39
  • 도선인 기자

지난 5일 이해춘 씨는 외할아버지의 광주일고(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 명예졸업장을 수여받았다.

광주일고가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가담 혐의로 퇴학당한 고등학생 명단을 확보해 지난해 10월 '명예졸업장'을 만들었지만, 175개 졸업장이 주인에게 전달되지 못한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졌다.

상당수의 의인들이 후손 없이 요절하거나 오랜 세월에 연락이 끊기는 등의 문제로 수여자 찾기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춘(62·남) 씨는 올해 3월 장흥문화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장흥 출신인 할아버지가 생전 독립운동을 한 기록이 있는데, 독립유공자로 지정이 안 되어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해춘 씨의 외할아버지 되시는 위장환 선생은 1929년 학생독립운동 가담 혐의로 광주일고에서 퇴학을 당한 후, 장흥에서 농민 계몽운동 등의 활동을 하셨습니다. 후손께서 독립유공자 신청을 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이 씨는 권유에 따라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을 진행했다. 보훈처도 위장환 선생의 광주일고 입학 및 광주학생독립운동 가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학교에 문의했고 뜻밖에 답변이 돌아왔다.

"안 그래도 지난해 위장환 선생 포함 180개 명예졸업장을 만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보관 중이니 후손께 연락을 취해 전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게 이 씨는 우연히 광주일고와 연락이 닿으면서 지난 5일 외할아버지의 졸업장을 전달받았다. 독립운동가 위장환 선생은 무려 100여 년 만에 학교를 졸업했다.

위장환 선생의 외손자 이 씨는 "장흥 출신인 할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마을에 세워진 할아버지 송덕비나 어머니가 이야기해준 내용으로만 접했다"며 "사실 광주일고와 연락이 닿아 명예졸업장을 전달받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행적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명예졸업장 수여로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이해춘 씨는 외할아버지의 광주일고(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 명예졸업장을 수여받았다. 왼쪽이 이해춘 씨.

더불어 민주당 이용빈 의원(광주 광산갑)도 명예졸업장 수여자 중 한명이다. 이 의원은 "아내의 외할아버지 이영범 선생에 대한 명예졸업장을 전달받게 됐다"며 "이영범 선생은 이미 유공자로 지정이 되어 있긴 하지만, 광주일고 졸업 여부에 대해서는 가족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연좌제가 가능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 가족들은 힘든 시대를 보냈다. 이제라도 공식적으로 졸업장을 받게 돼 기쁘다"며 "좋은 나라를 꿈꿨던 선열들의 모습을 반추하면서 명예졸업장이 서훈 문제 해결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광주일고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 맞춰 만들어진 명예졸업장을 전달받은 후손은 위 사례 포함 5건에 그친다. 아직 175개 졸업장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이번 명예졸업장은 광주일고를 졸업한 한신원 광주일고 역사서 편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4년여간에 걸쳐 광주학생독립운동 참여한 학생들의 명단을 확보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독립운동가 관련 재판기록 및 동아일보·조선일보 기사 그리고 여러 독립운동 학술지 등의 자료를 뒤지고 뒤져 확보한 이름이다.

한 위원장은 "1920~1930년대 한해에만 광주일고에 100여 명이 입학했는데 졸업자 수는 20여 명이 채 안 되는 해도 있다. 명예졸업자 대상자는 이번에 확보한 180명보다 더 많아질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1947년 광주일고에 큰불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그때 입학자 명단이 소실되면서 졸업앨범 등에 있는 명단과 비교할 데이터가 없는 셈이다"고 말했다.

우제학 광주일고 교장은 "명예졸업장 수여자를 찾기 위해 홍보 동영상을 찍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후손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학교 측에서도 한신원 위원장과 공조해 당시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통계연보를 확인해 주소를 추적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며 "독립운동가들이 일찍 요절하거나 연고자 미신청 등의 이유로 후손 찾기가 어렵다. 가정에서 가문 족보를 확인하는 등 노력을 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광주일고는 1945년 한국해방 이후 명예졸업장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수여해오고 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